이곳에 처음 입사하고 여기저기 떠돌아다니며 정해지지 않은 일들을 배우면서 몸도 마음도 어지럽고 혼란스러웠다.
여태껏 규모가 작은 곳에서 일해서 그랬는지 어쨌는지 몰라도 항상 정해진 나만의 자리에서 내가 해야 하는 정해진 일들만 했었기에 정말 대조되는 이 상황 속 혼돈스럽지 않을 수 없었고 모든 업무들이 아예 처음 접해보는 일들이라 더욱 여러므로 복잡했다.
한 달 즈음 지나니 대충 돌아가는 상황을 알게 되면서는 자존감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다들 한 자리씩 맡은 곳이 있었고 다들 각자 자리가 있었다. 치약, 칫솔을 놓을 수 있는, 누가와도 일어나지 않아도 되는 자기만의 자리! 하다못해 나는 그 작디작은 소지품조차 놓을 수 있는 자리가 없었고 자연스레 앉을 수 있는 의자는 어디에도 없는 상황이었다.
내가 그곳에 있을 이유가 없었다.
내가 있어야 할 이유가 느껴지지 않았다. 나를 굳이 뽑은 이유를 알지 못했다. 그냥 잡 심부름시키려고 뽑은 건가? 아니면 그냥 지금 나의 쓰임처럼 정해진 자리 없이 땜빵의 사람이 필요했던 걸까?
그런 생각을 품고 있던 중 이곳 입사 전 타이밍이 맞지 않아 면접을 보지 못했던 소아과에서 면접 제의가 왔고 심각하게 고민했지만 결국 그 면접은 보지 않았다.
이곳의 출퇴근 시간에 벗어날 수 없었으니... 단지 그것뿐.
그래, 그럼 이제 이곳에 남기로 했으니 땜빵이든 나발이든
주어진 일을 일단 배우는 것이 먼저라 생각했고 맡겨진 일 그날그날 최선을 다해 터득하고 해결하며 해나가는 것에 집중하기로 했다. 당연히 매일 까이고 부족했지만-
그러던 중 2개월 차 되었을 때 팀장님이 나를 부르셨고 스케줄표를 짜고 계시다면서 나보고 외과를 맡아서 해보라는 것이다.
외과든 뭐든 일단 과 하나를 맡아서 한다는 것에 너무 기분이 좋았고 설레었다. 혼자! 드디어 나만의 자리가 생기는구나!
알겠다고, 감사하다고 인사하며 나왔고 머릿속으론 혼자 맡아서 하는 그날을 그려보며 인수인계받는 그날이 기다렸다.
인수인계받던 그날이 선명히 기억된다. 선명한 의미론 두 가지가 있는데 드디어 눈치 보지 않고 앉을 수 있는 나만의 자리, 나만의 의자가 있다는 것, 그리고 그 밑에 치약 칫솔, 파우치를 넣을 수 있었던 것. 그리고 외과 원장님이 9월 말까지만 하고 그만두신 다는 말을 들었던 그 두 가지의 상황-
그렇다. 과를 맡자마자 전해 들었다.
나만 몰랐지 뭐, 이미 암암리에 대부분 사람들이 알고 있는 사실이었고 나는 그걸 첫 과를 맡은 시작 순간에 끝을 듣게 된 것이다.
그래도 바보같이 어쨌든 내가 혼자 하는 시간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좋았고 그 순간은 마냥 좋았다.
그러나 하루 이틀 지날수록 자괴감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9월 말이면 외과라는 과가 없어진다는 것인데.. 그럼 나는 다시 떠돌이가 되는 것이고 근데 나는 그동안 부인과를 배우지도 못하고 내 시간과 에너지를 외과에만 쏟아야 한다는 것인데 뭐 하는 거지? 싶은 다시 그때 처음 원점으로 돌아가는 건가? 싶은 생각이 마구 차올랐으니...
또다시 자리 없는 떠돌이가 된다는 것에 제일 마음이 괴로워졌다. 다시 내 치약 칫솔은 파우치는 옷 갈아입는 지하 옷장으로 가겠구나..
모두가 다 맡은 담당이 있으니 나는 아마.. 데스크, 그 가운데 앉아있다가도 누구라도 오면 일어나야 하는 그 가운데 그 자리가 내 자리로 될 것이라는 현실에 과연 내가 이곳에서 버 수 있을까? 진지하게 생각해 보게 되었다.
왜냐, 그 가운데 자리는 같이 있으면 제일 괴로움 고인 물 그 사람과 항상 함께 있어야 하는 자리니깐-
솔직히 이렇게 적고 있는 지금도 아무 자신이 없다..
그러나 방과샘과 며칠 전 점심시간, 커피타임을 가지며 이야기를 나눴는데 적어도 1년은 해봐야 하지 않을까?
그리고 여러 곳 옮겨보고 해 봐서 알지만 어딜 가나 이상한 사람은 다 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라는 것.
또 서로 이야기하며 얻은 것은 일과 사적인 감정은 분리해야 한다는 것.
나는 그게 왜 이렇게 어려운 것일까? 너무 어렵다.
한 치 앞도 모르는 게 인생이라지만 일단 내가 맡은 곳이 없어진다는 것은 확정이고 내가 떠돌이 되는 것도 확정이고 내가 갈 곳이 없다는 것도 그렇다고 내가 갈 곳은 그 가운데라는 것도 확.. 정인 거겠지?
그렇지만 이렇게 마인드를 바꾸면 어떨까?!
이곳에 너무 전부를 쏟지 말면?! 하루 에너지를 다 쏟고
찝찝한 기분으로 퇴근 후 일기를 쓰다 내 감정을 보게 되었다
내 문제는 직장과 삶을 분리를 시키지 못하고 있다는 것!
직장이 전부가 아니고 그곳에서 꼭 모든 것을 승리해야 인생을 승리하고 행복한 것이 아니겠만 나는 목숨 걸고 잘 해내려고 애를 쓰다 못해 발광을 하고 있었다.
그러니 조금 좌절되고 소외되는 거 같으면 모든 게 다 끝난 것처럼 절망스럽고 우울모드에 바로 빠져버리게 되는 것을 이제야 알아냈다.
물론 직장에서 일을 할 땐 실수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서 해야 하지만 그곳은 단지 시간을 보내고 노동을 해서 돈을 받는 곳일 뿐 내 인생에 큰 가치는 없다는 것을 명심하고 내 마음을 바치지는 말자.
그럼, 훗날 자리가 있든 없든 어느 곳에 가든 그날그날 잘 때우고 잘 해결하는 하루를 보내면 시간은 공평하니 분명 조금은 수월한 직장생활을 되지 않을까? 그냥 그렇게 생각하려고 한다. 깊이 두지 말고 미련 두지 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