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연한 것이 아님을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 는 아프리카 속담이 있듯 정말 아이들을 키우다 보면 너무 생각 못한 예상치 못한 순간들이 발생하여 위기 순간이 항상 함께하는 거 같다.
아침, 딸아이는 일어나자마자 엄마, 엄마, 하며 나를 불렀다.
방으로 오라고 하길래 가봤더니 목 아프고 배도 두 손으로 부여잡으며 아프다는 것이다. 나는 먼저 화장실 가고 싶은 배냐고 물었다. 아닌 걸 알면서도 말이다.
제발 그 배가 화장실 배 이길 바랬던 것이다.
역시나 화장실, 그 배가 아닌 진짜 통증을 느끼고 있었다.
일단 유산균을 먹였고 기운이 없는 딸아이는 다시 방으로 들어가 누웠다.
얼마 뒤 좀 누워있더니 괜찮아졌는지 다시 거실로 나왔고, 아침밥도 먹었고 학교 갈 준비도 부지런히 하고 있었다.
끝으로 딸아이 머리 묶어주는 것으로 나는 먼저 집을 나왔고 직장에 도착하니 황남편으로부터 아이들이 무사히 등교했다는 제일 안심되는 문자를 받았다.
아침부터 느낌이 좋았다. 날씨도 따뜻해지고 미세먼지도 보통이며 반짝반짝 내리쬐는 햇빛이 그냥 기분 좋은 느낌을 받게 했다. 거기다 황남편이 아침부터 활기 있게 해야 할 일도 착착 해내고 좋아하는 냉면도 먹으러 가니 기분 좋음이 더욱 업 되었다.
그렇게 아무 걱정 없이 일을 하고 있었는데 11시가 조금 넘었었나? 핸드폰에 이상한 번호로 전화가 오는 것이다. 요즘 광고전화 선거전화가 많은 터라 아예 받지 않고 핸드폰 옆에 버튼을 두 번 눌러 아예 끊어버렸는데 곧바로 다시 같은 번호로 전화가 왔고 순간적으로 뭔가의 촉이 느껴져 바로 전화를 받았더니 황남매 초등학교 보건실이었다.
전화를 바로 끊은 것에 대한 민망함이 몰려왔지만 차분한 목소리에 보건실 선생님께선 통화가 되어 다행이하는 듯한 뉘앙스를 풍기시며 딸아이 증상에 대해 이야기를 해주셨다.
목이랑 배가 아파서 보건실에 왔는데 미열도 있다는 것.
병원에 가봐야 할 거 같은데 지금 데리러 올 수 있냐는 전화였다.
나는 근무 중이라 당연히 못 가지만 나의 믿을 구석, 황남편은 자영업을 하기에 나보단 자유로운 상황이고 때 마침 밖에 나와있던 황남편은 곧바로 딸아이를 데리러 학교에 갔고 그 길로 병원에 들렀다 집에 데리고 왔다고 했다.
황남편에게 딸아이 컨디션과 상황의 이야기를 듣고 나니 그제야 불안함이 당긴 두근거림이 멈추는 듯했다.
그러나 문제의 연속이었다. 배가 아파 설사를 하는 터라 학원을 가지 못하는 딸아이를 황남편이 출근하면서 같이 데리고 있어야 하는데 나의 퇴근시간, 6시가 넘는 시간까지 그곳에 있기엔 서로가 힘든 상황이었는데 다행히 아이들을 잠깐씩 돌봐주시는 친정 엄마가 4시쯤 딸아이를 데리고 집으로 와주셨고 그것에 또 감사했고 이렇게 문제는 넘어가는 듯했다.
그 순간 아들에게 문자가 왔다. 지금 피아노 학원을 가고 있는 중이며 지난 금요일 학교에서 수학 1단원 수행평가 봤는데 백점 맞았다는 기쁜 소식을 나에게 전해줬다.
정말 기분 좋았고 그 기분 좋음을 즐기고 있었는데 얼마 뒤 아들에게 다시 문자가 왔다. 피아노 학원에서 레슨 받았고 반주를 쳐야 하는데 하기 싫다는 것이다. 마음 다 잡고 할 거 하고 집으로 가라고 말은 했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분명 고집부리며 안 치고 버티고 있을 것이란 걸-
그 순간은 아무리 어르고 달래도 소용이 없다. 본인이 감정을 스스로 다스리도록 내버려 두어야 한다. 아들이 지금 어떤 상황인지 알기 위해 피아노 선생님과 문자를 나눴다. 아들 말대로 반주를 연습하라고 했는데 안 한다고 버티고 있지만 선생님께선 끝까지 기다려주실 거라고 하셨다.
다시 마음이 불편해졌고 아들이 여간 고집이 아닌걸 너무나도 잘 알기에 아들이 계속 버티고 앉아 있을 거라고 생각하며 내가 퇴근하며 아들을 데리고 집에 가야겠구나 생각하고 있었는데 선생님께 아들이 일어나서 다시 피아노를 치러 방으로 들어갔다는 문자를 보내오셨고 그렇게 또 한 쉬르머 놨다
그때 나는 정말 분노도 치솟았다가 답답함에 몸을 비틀기도 하며 말로는 이제 통하지 않는 것인가 생각하며 아주 짧은 사이에 여러 가지 감정으로 오락가락하고 있었다.
조금 뒤 아들이 나에게 문자를 보내왔다.
피아노 반주를 다 치고 집으로 가는 중이고 이렇게 다 치고 나오니 기분이 좋다는 내용의 머쓱함이 담겨있는 문자였다.
그 문자를 보며 한껏 치솟았던 나의 분노가 단번에 사라지진 않았지만 스스로 감정을 깨고 일어나 끝마치고 나왔고 그 안에서 스스로가 저러한 감정을 느꼈다는 사실에 아들이 기특해지기도 했으며 무엇보다 아이를 기다려주시며 상황을 좋은 방향으로 이끌어주신 선생님께 너무 감사했다.
보건실에서 전화를 받고 바로 황남편이 아이를 데리러 갔을 때 마음의 진심을 담아 한 글자 한 글자 꾹꾹 눌러 문자를 보냈다. “이 순간 오빠가 있을 수 있음이 너무 다행이고 고맙다고”
코로나19가 한창이던 시절, 경제적 상황이 어려워지자 황남편은 새벽 5시부터 나가 투잡을 뛰기 시작했다. 그렇게 3년간 대단히도 살아냈고 그럼에 지금까지 버티고 일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그때 아이들이 다니던 원에서 확진자가 발생하면 무조건 아이들을 데리고 가라고 하는데 황남편과 나, 누구도 나갈 수 없는 상황이었던 것이다.
그래도 폐쇄한다고 빨리 데려가라고 하니 방법이 없어 그나마 알고 지내던 언니네집에 잠깐 맡기고 맡기고 하는 식의 방법으로 겨우 그 순간의 위기는 해결했지만 내 마음속엔 아이들에게 미안함과 상처로 남아있다.
그 이후부턴 황남편이 낮에 아이들을 돌볼 수 있는 상황이, 친정 엄마가 아이들을 몇 시간 돌봐주니 내가 걱정 없이 일할 수 있는 상황이, 많이 돌고 돌다가 만난 너무 따뜻한 감정을 지니신 선생님들을 만나 내가 알지 못하는 우리 아이들의 상황을 돌봐주시는 것, 이 상황의 모든 것이 절대 당연한 일이 아니라는 것을 절실히 느끼며 감사함으로 살아가고 있다.
다음날까지 딸아이는 열이 나서 학교를 가지 못했지만 나는 믿을 구석인 황남편이 있어 걱정 없이 가벼운 발걸음으로 출근길에 나설 수 있었다.
아이를 키운다는 것은 절대 나 혼자만의 힘으로 나아갈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시간이 좀 지난 어느 순간이 되면 다시 나 혼자이고 지고 , 스스로 감당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변해 버린다. 그럼 또 버거워하고 힘들어하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될 때쯤 여러 사건이 일어나 나의 마음을 재정비할 수 있게 다시 한번 털어내게 해 주며 혼자 감당할 수 없음을 인정하며 그 순간을 받아들이라고 말해주는 들리지 않는 목소리를 잊지 말자고 다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