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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조 Apr 06. 2024

여행 가고 싶어서

트라우마 극복기

집이 아닌 다른 곳에서 자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일단 잠자리가 바뀌면 쉽사리 잠에 들지 못하고 잠이 들더라도 꼭 새벽녘에 혼자 깨어나 뒤척이고 있다.


학창 시절, 수학여행을 갔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새벽녘 가장 먼저 잠에서 깨어났고  모두가 자고 있는 고요한 순간이라 움직이면 안 될 거 같은 마음에 정자세로 누워 눈만 가만히 감고 있었다. 옆에선 잠들어 있는 친구들의 숨소리가 들린다. 왜 그때 그 숨소리에 나는 서글픔이 차올라 집에 가고 싶었을까?


지금도 나는 여행을 가도 1박만 하는 것을 좋아하고 아무리 길어도 2박으로 끝내려고 한다. 또한 갑자기 즉흥으로 아무 곳이나 들어가서 자는 걸 정말 극혐하고 꼭 미리 계획하여

예약해 둔 곳으로만 다니는 편이다.


또한, 나는 펜션이나 모텔이나 숙박업소에 있는 이불을 사용하지 않는다. 그리고 더럽다고 느껴지고 그렇게 보이는 곳은 가지 않는다. 반면 이런 나와는 달리 그냥 눈에 보이는 아무 곳이나 가도 잠만 잘 자는 황남편과 나에게 이 일이란 결혼 초반, 심각한 논쟁거리였다.


그렇지만 내가 이렇게까지 깔끔? 유난?을 떨게 된 이유가 분명히 황남편에게도 있다는 것, 절대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


때는 우리 아들이 돌 지날 때쯤이었나? 아마 그 언저리였을 것이다. 낚시하는 걸 좋아하는 황남편은 방갈로를 예약했다는 후배 가족과 함께 여행을 가자고 했고 나는 방갈로가 어떤 곳인지도 모른 채 가자고 하니 따라나섰다.


방갈로가 어떤 느낌인지 전혀 몰랐지만 적어도 내가 서있는 이런 곳은 아니길 바랐다. 좁고 그런 건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위생상태가 최악이었다. 이불엔 죽은 벌레들이 셀 수 없이 많이 붙어 있으며 생리 피도 이불에 막 묻어있는데....

어우 지금 생각해도 인상이 구겨지며  토 나올 거 같다.


더 신기한 건 그 상태임에도 아무도 개의치 않아 한다는 것이었다. 나는 그곳에 있는 일분일초가 최악이었고 정말 끔찍, 끔찍!! 했다


다행이라고 하기도 싫지만 다행인 건 아들의 블링캣을 간 게 천만다행이었다는 것이다. 아들을 그 더러운 이불 위에서 재우지 않아도 된다는 그것이 내 유일한 위안이 되었고 아들 옆으로 맨바닥에  팔을 베개 삼아 누워있던 나는 다신 이런 곳에 절대 오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그 뒤로도 이 정도로 심각하진 않았지만 황남편에게 숙소 예약을 맡기면 이런 일이 종종 일어났고 그럼 서로 싸움밖에 나지 않으니 숙소 예약을 내가 맡아서 하게 되었다.


나에게 맞춰 주면서도 황남편은 불만이 많았다. 하룻밤 자는 건데 굳이 그렇게 더 비싼 곳에서 자야 하는 건지 아무 곳이나 들어가서 잘 수 있어야지 너무 유난 떤다고 하면서 말이다


그의 생각도 맞는 말이지만 사람마다 성향이 다르고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도 다 다른 것이 아닌가? 그리고 나처럼 원래 예민한 사람이며 그렇게 크게 데고 나서 어찌 보면 날뛰면 더 날뛰었지 어떻게 수그러든단 말인가-


그 충격적인 이불 상태를 보고 난 후부터였을까? 어딜 가든 잠자는 곳이면 무조건 집에 있는 가장 작다고 생각하는 이불을 챙겨 다니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행동은 황남편과 나와 의적 절한 보이지 않는 적절한 선을 지킬 수 있는 방법이었다.


짐이 많아지고 부피가 늘어나도 이불을 챙기고 나서부턴 조금 숙소가 더러워도 내 이불이 있다는 것에 안심할 수 있었고 싫은 내색과 불평불만도  덜 하게 되었으니 말이다-


앞에서 황남편도 크게 한몫했다고 책임이 있다고 했고 그것이 정말 맞는 말이지만 그렇지만, 언제나처럼 황남편은 나에게 모든 것을 다 맞춰준다. 미안하고 고맙게도


처음엔 잠만 자는 곳에 크게 돈을 쓰는 것에 대한 불만이 가득했던 황남편도 점점 스며들어 이젠 호텔이든 펜션이든 숙박시설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고 확인을 한다.

우린 그렇게 점점 그 중간 어디쯤에서 이제 서로가 오히려 서로에게 맞추고자 배려하게 된 것이다.


그 방갈로 사건이 잊히진 않겠지만 조금씩 옅어져 가나 싶었는데 다시 생각이 났다. 여행이 가고 싶어졌다. 그래서 다시 생각이 깊게 들었나 보다.


눈이 부시게 활짝 피어난 벚꽃들을 보며 놀러 가고 싶다는 마음이 든 것도 있지만 나에게 여행은 오히려 마음이 지칠 때 숨 트이고 싶을 때 더 생각나는 편이다. 몰랐다 가슴이 트이고 숨통이 트이는 느낌이라는 것을


작년 새해맞이로 속초에 갔다. 개운하게 자고 일어났다고 일어났지만 그날도 이른 시간, 동틀 무렵이었다. 고개를 돌리면 하늘을 볼 수 있는 침대에 누워 조금 꼼지락 거리니 큰 창 밖에서 새빨간 해가 천천히 떠올랐고, 그 빛이 우리 숙소에 들어오면서 공기마저 붉게 물들어 가는 그 순간의 마음과 숨통이 트이는 느낌을 잊을 수가 없다.


그 빛의 찬란함이 잊히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힘들 때 한 번 쉬며 유연하게 넘어가고 싶음이 느껴질 때 그럴 때 나는 여행을 찾는 것일까?


사는 게 퍽퍽해 여행도 가지 못하는 나의 상황을 보고 있자니서러움이 밀려오기도 하지만 그렇지만, 그동안 다니며 위로받았던 여행들을 떠올리자 다시 앞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마음을 도와준다는 것을 알아버렸다.

그래서 나는 다시 여행을 찾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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