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리랑카 13] 잠실나루 작전

스마트폰 두고 스리랑카 여행기: 캔디에서 기차 타고 하푸탈레로 이동하기

by 삼콩

저녁시간엔 숙소에서 푹 쉬기로 했다. 내일 기차로 장거리를 이동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내일 하푸탈레로 간다. 버스보다 이동 시간이 오래 걸리지만 대부분의 여행객들은 이 노선을 기차로 움직인다. 캔디-엘라 노선은 스리랑카에서 가장 아름다운 기찻길로 유명하기 때문이다. 인터넷 검색창에서 ‘스리랑카 여행’을 치면 나오는 초록빛 차밭과 깊은 계곡 사이를 붉은색 기차가 천천히 가로지르는 풍경은 이 구간에서 찍혔을 확률이 크다. 많은 사람들이 이 기차를 타기 위해 스리랑카에 온다고 할 정도로 상징적인 관광코스다. 나는 설레는 마음으로 배낭을 쌌다. 이제 모든 게 완벽했다. 단 하나, 내 손에 기차표가 없다는 것만 빼고.


스리랑카 기차는 1등급, 2등급, 3등급으로 나뉘어 있다. 1등급 칸에는 에어컨이 있다. 2등급과 3등급은 둘 다 에어컨이 없다. 2등급 좌석은 우리나라 기차의 좌석을 생각하면 된다. 3등급 좌석은 딱딱한 나무 벤치와 비슷하다. 벤치 하나에 세 명씩 무릎을 붙여 옹기종기 앉는다. 이 중 온라인으로 예매가 가능한 좌석은 1등급뿐이다. 2등급과 3등급 기차 티켓은 미리 살 수 없다. 1등급 기차 티켓은 한 달 전에 풀리는데, 성수기에는 표가 풀리자마자 마감이 되는 경우가 잦다. 따라서 대부분의 여행객은 기차표를 예매하지 못한 상태로 스리랑카로 온다. 2등급 좌석도 예매나 현장구매를 할 수 있다고 듣긴 했지만, 실제로 표를 구했다는 사람을 만난 적이 없다.


대부분의 여행객들은 이동하는 당일 기차역에서 입석 표를 산다. 입석 표의 가장 큰 특징은 ‘판매 개수의 제한이 없다는 점’이다. 이 말은 무조건 표를 살 수 있다는 말이기도 하고, 내가 타는 기차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탈지 모른다는 뜻이기도 하다. 붐비는 시간에는 가끔 사람들이 입구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거나 심지어 천장으로 올라가 있는 장면이 연출되기도 한다.


캔디에서 하푸탈레까지 기차로 다섯 시간이 걸린다. 보통 연착을 포함하면 여섯 시간이 넘게 걸린다고 한다. 여섯 시간 입석은 빨리빨리와 효율성의 한국인으로서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우리는 작전을 세웠다. 캔디역에서는 사람이 많이 탈 것이기에, 한 정거장 전인 페라데니야역에서 기차를 타기로 했다. 서울로 치면 잠실역에서 사람들이 몰리기 전에 잠실나루역에서 미리 타는 작전이다. 이 역시 빨리빨리와 효율성의 민족인 한국인의 어느 블로그 글에서 찾은 방법이다. 우리는 빨리빨리 문화의 장점을 찬양하며 잠들었다.


아침이 밝았다. 우리는 캔디 호수를 바라보며 마지막으로 조식을 먹었다. 날이 무척 밝았다. 이른 시간이었지만 식당에는 사람들이 꽤 있었다. 모두 아침 기차를 타고 떠나는 여행객들이다. 그중 혼자 식사를 하고 있는 한 여자분과 말을 트게 됐다. 혼자 여행 중인 그녀도 우리와 같은 기차를 탈 예정이었다. 그녀 또한 우리와 같은 걱정을 하고 있었다.


“앉아서 갈 수 있을지 걱정이에요.”


나는 잠깐 고민하다 우리의 비장의 카드인 잠실나루 작전을 소개해 줬다. 그녀는 아주 좋은 생각이라며 감탄했다. 그녀는 우리와 함께 이동하고 싶어 하는 눈치였는데, 마침 택시에도 한 자리가 남아 함께 가기로 했다.


기차 시간은 8시 45분이었다. 숙소 주인아저씨의 도을 받아 택시를 불렀다. 그런데 시간이 다 되도록 택시가 오지 않았다. 조바심에 카운터에 몇 번 찾아갔지만 같은 대답만 돌아올 뿐이었다.


“노 프라블럼!”


우리는 발을 동동거리며 택시를 기다렸다. 마침내 택시가 왔다. 우리는 택시 기사에게 에잇 폴티 파이브를 염불처럼 반복하며 꼭 기차를 타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택시기사는 숙소 사장님과 같은 표정을 지으며 답했다.

“노 프라블럼!”


하지만 도로 상황에는 문제가 있었다. 출근 시간대라 길이 막히기 시작했다. 애가 탔다. 이렇게 기차를 놓쳐 하루를 날리고 싶지 않았다.


결국 우리는 예정된 기차 시간보다 늦게 역에 도착했다. 하지만 기차를 놓치지는 않았다. 기차가 연착되었기 때문이다. 나중에 알게 된 건데, 스리랑카 기차의 연착률은 거의 100%에 달했다. 기차가 연착되지 않길 바라는 것보다 조금만 연착되길 바라는 게 더 현실적인 바람일 정도다. 숙소 주인아저씨와 택시 기사는 이런 상황을 모두 알고 있기에 그렇게 느긋했던 것이다.


연착한 기차를 기다리며 함께 택시를 타고 온 동행과 통성명을 했다. 그녀의 이름은 파다우, 네덜란드에서 왔다. 일을 그만두고 혼자 스리랑카를 여행하는 중이었다. 애완동물을 키운다는 점, 요가에 관심이 많다는 점 등 관심사가 맞아 대화가 잘 통했다. 이야기꽃을 피우다 보니 한 시간이 금방 지나갔다. 기차가 도착했다. 우리가 상상하지 못한 모습으로.


기차에는 통로와 입구까지 사람이 꽉 차 있었다. 앉아서 가기는커녕 기차에 발도 못 디딜 판이었다. 배낭을 멘 우리는 기차에 오르지도 못하고 발만 동동 굴렀다. 기차가 출발하려고 경적을 울렸다. 다행히 스리랑카 현지인들이 입구를 터줘 겨우 기차에 탈 수 있었다.


그날 기차에서 현지인들이 외국인을 배려해 주는 모습을 몇 번 봤다. 여유 있는 공간으로 갈 수 있도록 길을 터주거나, 앉아 있는 승객이 곧 내린다며 자리에 앉을 수 있도록 도와주기도 했다. 심지어 어떤 할아버지가 건장한 청년에게 자리를 양보해 주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스리랑카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약자에 대한 배려심을 가지고 있다. 거리의 동물들, 여성, 노인, 외국인을 배려하는 모습이 자연스럽고 섬세했다. 나는 스리랑카 사람들의 배려심이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여유가 있을 때 남을 배려하는 건 쉽지만, 숨도 쉬기 힘든 만원 기차 안에서 남을 배려하는 건 쉽지 않기 때문이다.


페라데니아에서 출발한 기차는 캔디 역으로 향했다. 블로그에서 읽었던 ‘잠실나루 작전’이 아주 틀린 건 아니었다. 캔디 역에 도착하자 많은 사람들이 내렸다. 내려야 하는 승객들과 타야 하는 승객들이 뒤섞이며 기차 안은 혼란 그 자체였다. 어떤 승객은 아직 멈추지도 않은 기차의 창문 틈으로 자신의 가방을 밀어 넣기도 했다. 빈 좌석을 선점하기 위해서였다. 이 번잡함을 틈타, 우리도 좌석 한 개를 얻게 됐다. 한국에서 손쉽게 KTX를 예약할 때는 몰랐던 소중한 좌석이었다. 우리는 30분씩 번갈아가며 자리에 앉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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