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리랑카 14]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기찻길

스마트폰 두고 떠난 스리랑카 여행기: 숏폼과 현실은 다르다

by 삼콩

드디어 기차는 캔디역을 출발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기차 구간’으로 들어섰다. SNS에서 스리랑카 여행을 검색하면 나오던 그 장면이 펼쳐졌다. 굽이굽이 이어지는 산등성이와 계단처럼 층층이 정리된 차밭의 짙은 녹음, 시원하게 떨어지는 폭포의 물줄기와 이따금씩 나타나는 붉은 기와지붕의 마을들. 기차의 움직임에 따라 창밖에서 한 폭의 풍경화가 나타났다 사라졌다. 그리고 곧이어 또 다른 풍경화가 나타났다 사라지길 반복했다. 화창한 날씨는 아름다운 풍경을 완성했다.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



감각적인 배경음악과 함께 여행의 하이라이트를 보여주는 숏폼 영상과 현실의 다른 점도 있었다. 영상은 일 분이었지만 우리의 기차 여행은 입석 여섯 시간이었다. 아름다운 풍경보다 더 실감 나는 건 점점 무거워지는 다리의 느낌이었다. 북적이는 기차 안에는 낯선 체취가 가득했다. 기차가 덜컹거릴 때마다 내 어깨와 옆 승객의 어깨가 겹쳤다. 민소매를 입고 있는 그의 팔은 땀에 젖어 축축했다. 도저히 지나갈 공간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잡상인들이 계속 지나다녔다. 창문을 열고 완행하는 기차 안은 후덥지근한 공기, 철커덩거리는 소리, 낯선 이국의 냄새로 가득했다. 이게 스리랑카 기차 여행의 현실이었다. 그러나 잘 가공된 매체에 익숙한 나에게는 숏폼 영상이 더 현실 같고, 실제 세계가 더 이질적으로 느껴졌다.


이게 현실!


옆에 선 일행과의 대화도 마찬가지였다. 우리는 나란히 서서 아름다운 창밖 풍경을 바라보며 드문드문 대화를 나눴다. 대화가 끊기는 순간이면 나는 일행이 사라지지 않고 계속 내 옆에 서서 존재한다는 당연한 사실에 약간 당황했다. 그러다 문득 스마트폰을 통한 대화와 오프라인에서의 대화 방식이 본질적으로 다르다는 걸 깨달았다. 온라인에서는 대화방으로 들어가 용건만 말한 뒤에 대화방을 나오면 된다. 그리고 내가 원하는 시간을 선택해 다시 대화를 이어나갈 수 있다. 말하자면 숏폼 영상의 하이라이트를 감상하는 것처럼 짧고 분절적으로 대화가 이루어진다. 하지만 오프라인에서의 대화는 물리적인 공간에 함께 실존하며 이루어진다. 대화 사이사이에는 긴 침묵과 여백이 존재한다.


분절적인 대화에 익숙한 우리는 종종 오프라인에서 직접 상대방을 마주했을 때 어색함을 느끼곤 한다. 그리고 그 어색함을 다시 스마트폰 화면을 바라봄으로써 메운다. 함께 카페에 앉아 각자의 액정을 바라본다.

덜컹거리는 기차 안에서 대화 사이에 긴 여백이 생겼을 때, 스마트폰의 액정 속으로 몹시 도망가고 싶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나는 빈 손이었다. 이 어색함은 그동안 내가 얼마나 여백과 지루함을 용납하지 않으며 살았는지 증언하고 있었다. 하릴없이 창 밖만 바라봤다.


한두 시간쯤 지나자 자리가 나기 시작했다. 우리 일행 모두는 자리에 앉게 됐다. 앉아서 여유롭게 바라보는 창밖 풍경은 훨씬 더 낭만적이었다. 여유가 생기자 잡상인들이 팔고 있는 물건에도 시선이 갔다. 그들은 간식이나 음료수 외에도 장난감이나 문구 용품도 팔았다. 그들은 버스 스탠드의 티켓 콜렉터처럼 자신이 뭘 팔고 있는지 큰 소리로 반복해서 외치고 있었다.


“쑤와리 쑤와리 쑤와리 쑤와리 쑤와리~”


‘도대체 쑤와리가 뭐지?’


나중에 검색해 보니 스리랑카어로 ‘간식’을 뜻하는 단어였다. 호기심에 땅콩 한 봉지를 샀다. 땅콩보다는 땅콩 봉투가 더 인상적이었다. 어느 학생의 수학 공책을 재활용해 땅콩 봉투를 만든 듯했다. 짭짤한 땅콩을 먹으며 수학 문제도 함께 풀었다.



자리 문제가 해결되고 땅콩까지 까먹으니 마음이 놓였다. 긴장이 풀리자 잠이 솔솔 오기 시작했다. 기차는 어느 작은 역에 정차했다. 나는 낮잠을 달게 잤다. 한 시간쯤 지났을까, 눈을 떴는데 기차는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다.

‘이게 무슨 일이지?’


옆자리에 앉은 파다우에게 정황을 물었다.


“다음 도착할 역에 문제가 생겼대.”


“얼마나 더 기다려야 한대?”


그녀는 어깨를 으쓱이며 답했다.


“몰라. 무슨 문제인지도 모르고, 얼마나 더 기다려야 하는지도 몰라.”

시선을 돌려보니 승객들이 멀뚱멀뚱 앉아있다. 다들 표정이 좋진 않지만, 누구 하나 화를 내거나 직원에게 따지지 않는다. 가만히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한국이었으면 벌써 난리가 났겠지.’


다시 30분을 기다렸다. 우리 한국인들의 인내심은 바닥났다. 나는 낮잠이라도 잤지, 뜬 눈으로 기다린 친구들의 답답함은 더했다. 친구의 스마트폰으로 목적지까지 툭툭 가격을 알아봤다. 한국 돈으로 45,000원 정도가 나왔다. 스리랑카 물가를 고려하면 큰돈이었다. 하지만 언제까지 기다려야 하는지 기약이 없었으므로, 과감히 기차에서 내리기로 했다. 네덜란드 일행 파다우는 기차에 남겠다고 했다. 아쉽지만 작별 인사를 했다.

성질 급한 한국인들은 배낭을 짊어지고 기차에서 내렸다. 정차한 지 한 시간 반이 지났는데도 우리가 가장 처음 내리는 승객인 듯싶었다. 신속한 결단을 내렸다는 우월감과 다들 인내심 있게 기다리는데 참아내지 못했다는 패배감이 함께 밀려왔다.

keyword
이전 13화[스리랑카 13] 잠실나루 작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