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리랑카19] 킴정은에서 부산행까지

스마트폰 두고 떠난 스리랑카 여행기: 엘라에서 한류 체감하기

by 삼콩

우리는 저녁을 먹기 위해 기찻길 근처의 레스토랑으로 향했다. 캔디 숙소에서 만나 함께 기차를 탔던 파다우와 함께하는 저녁이었다. 레스토랑은 스리랑카 음식 전문점이었는데, 납작하게 만들어 구운 파라타와 여러 반찬들이 잘 어울렸다. 기차에서 헤어져 각자 여행하다 다시 만나서인지, 부쩍 파다우와 정이 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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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델란드인 파다우는 함께 타고 가던 기차가 고장나 모두 멀뚱멀뚱 앉아있을 때, 우리가 배낭을 챙겨 훌쩍 내리는 모습이 무척 인상적이었다고 했다.


“한국 사람들은 모두 그렇게 빨리 결정을 내리고 빨리 행동해?”


반대로 우리는 파다우를 비롯한 다른 여행자들이 한 시간 넘게 멈춰있던 기차 안에서 어떻게 그렇게 차분하게 기다릴 수 있는지 놀랐다. 언제 기차가 다시 움직일지, 얼마나 더 기다려야 할 지 아무도 모르는 상황에서 묵묵히 앉아있던 그들.


“그럼 유럽 사람들은 다 그렇게 잘 참아?”


우리의 질문에 파다우가 어린아이처럼 웃었다. 파다우는 40대 중반이었는데, 대화를 나누다 보면 디즈니 영화 속 공주님같다는 인상을 받게 된다. 특히 눈빛과 미소가 그렇다. 세상 풍파를 겪지 않은 느낌. 채식을 하고 동물을 사랑하는 그녀는 일을 그만둔 뒤 다른 직장을 구하기 전 혼자 여행을 왔다고 했다. 나는 그녀가 천천히 말하고, 천천히 먹고, 천천히 행동하는 게 마음에 들었다. 반대로 그녀는 우리가 빨리 파악하고, 빨리 선택하고, 신속하게 행동하는 게 매력적으로 느껴진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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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을 먹고 있는데 개 한 마리가 꼬리를 흔들며 식당 안으로 들어왔다. 개가 테이블 사이를 돌아다녀도 아무도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이따금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개를 바라볼 뿐이었다. 개에게 무관심한 손님도 많았지만 아무도 쫒아내지는 않았다. 나는 남은 치킨을 개와 함께 나눠 먹었다.



다음 날, 일출 요가 수업에 가기 위해 일찍 일어났다. 엘라에서는 툭툭 값이 너무 비싸 항상 걸어 다녔다. 다행히 도시는 걸어 다니기에 충분히 아담한 크기였다. 여느 때처럼 종이 지도에 요가원의 위치를 표시해 나왔다. 하지만 밖이 너무 깜깜해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친구의 스마트폰 지도의 도움을 받았다. 나 혼자였다면 무조건 길을 잃었을 것이다. 스마트폰의 친절한 GPS와 손전등 기능의 도움을 받아 겨우 제시간에 도착할 수 있었다. 요가 수업은 나쁘지 않았다. 자연과 호흡할 수 있어 좋았다. 깜깜할 때 시작한 수업이 마칠 무렵엔 반짝이는 햇살이 우리를 비추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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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업이 끝난 후 아침을 먹을 수 있었다. 요거트와 과일이 예쁘게 나와 먹고 가기로 했다. 망고는 달콤했고, 요거트에는 온갖 좋은 씨와 가루들이 다 들어 있었다. 아침을 먹으면서 함께 수업을 들었던 분들과 이야기를 나눴다. 유럽 각지에서 모인 여행자들이었다. 인도에 몇 달 지내다 넘어온 분도 계셨고, 스리랑카를 몇 달 동안 천천히 여행하고 있는 분도 계셨다.


이탈리아 출신의 여행자가 서울과 부산에 다녀온 적이 있다며 한국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슬로바키아에서 왔다는 앳된 MZ 여행자도 서울에 두 번 다녀왔다고 했다. 케이팝 팬이라고 한다. 그러자 굉장히 말이 많던 스페인에서 온 여행자가 자신은 부산행 영화를 좋아한다며 영화 줄거리에 대해 일장연설을 늘어놓았다. 그들은 아침 식사가 끝날 때까지 한국의 음식, 영화, 드라마, 노래에 대해 이야기 나눴다. 그 장면을 지켜보는 나는 이게 꿈인가 싶었다.


약 15년 전, 내가 갓 성인이 되어 해외여행을 열심히 다니기 시작하던 시절이었다. 한국 출신임을 밝히면 사람들은 항상 이렇게 묻곤 했다.


“북한? 남한?”


어느 나라에 가도 중국과 일본은 알지만 한국은 모르는 사람들이 많았다. 사우스 코리아보다노스 코리아와 김정은이 훨씬 유명했다. 몇 년쯤 지났을까. 동남아에 쇼핑몰에서 한국 노래가 나오기 시작했고, 몇 년이 더 지나자 베트남 현지 친구들이 나에게 한국 드라마를 추천해 주기 시작했다. 또다시 몇 년이 지난 후 남미여행을 하며 수많은 BTS 팬들을 만났다.


그리고 지금 먼 남인도의 땅에서 여행자들이 한국 문화에 대해 토론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한류가 한 계단 더 높은 곳으로 올라왔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이제 어딜 가도 김정은의 국민이 아님을 증명하지 않아도 된다. 문화의 힘은 얼마나 강한가. 나도 모르게 어깨가 으쓱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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