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폰 두고 떠난 스리랑카 여행기: 엘라의 유명 관광지 둘러보기
오전 요가수업을 마치고 엘라의 유명한 관광지인 나인아치브릿지 향했다. 나인 아치 브릿지는 기차가 지나가는 다리인데, 말 그대로 아홉 개의 아치가 있는 다리이다. 아치가 늘어진 다리 위를 기차가 천천히 지나가는 모습이 SNS에 퍼지며 유명 관광지로 자리 잡았다.
숙소에서 나인아치브릿지까지 가기 위해서는 30분 정도 걸어야 한다. 숙소에서 출발하기 전 종이 지도에 위치를 꼼꼼하게 표시했다. 하지만 도착하기까지 시간이 훨씬 많이 걸렸다. 걷는 도중에 어느 카페에 앉아 낮잠 자고 있는 아기 고양이를 만났기 때문이다.
도저히 발을 뗄 수 없게 만드는 귀여운 모습에 어쩔 수 없이 카페에 들어가 홍차를 한 잔 마시고 말았다. 아기고양이는 총총 뛰기도 하고 신발끈을 가지고 장난을 치기도 하며 우리를 카페에 한참 잡아두었다. 자리를 뜰 때쯤엔 따뜻했던 홍차가 미지근하게 식어 있었다.
그렇게 한참을 고양이와 놀았더니 배가 고팠다. 내친김에 밥을 먹고 다음 기차를 보기로 했다. 길을 걷다 만난 로컬 식당에서 베지테리안 커리 정식을 먹었다. 우리로 치면 기사식당의 백반 같은 느낌이다. 야채가 신선하고 매콤 짭조름한 간이 입맛에 맞아 그릇을 싹 비웠다. 마음껏 한눈팔 수 있고 배고프면 언제든 먹을 수 있는 여유가 만족스럽다.
다시 느긋하게 걷다 보면 산길이 시작된다. 곳곳에 붙어있는 기차 시간표를 이정표 삼아 걸음을 옮겼다.
도착해 보니 사람들이 바글바글 모여 있었다. 모두 기차를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이다. 기차는 역시 스리랑카답게 연착됐다. 기찻길 역 노상 카페에 앉아 홍차를 한잔 더 마셨다.
'언젠간 오겠지, 뭐.'
한국에서는 절대 지닐 수 없는 여유로운 마음가짐이다. 끊임없이 울리는 스마트폰 알람도 없고, 빽빽한 일정도 없다. 아홉 개의 아치가 있는 멋진 다리와 기차보다 더 특별한 건 지금 이 순간의 느긋함이 아닐까 싶다.
얼마쯤 지났을까. 기차가 경적소리를 내며 다가왔다. 정식 기차역은 아니지만, 기차는 나인아치브리지에서 10분 정도 멈췄다. 포토 타임을 위해서다. 다리에서 기차를 기다리던 사람들도, 기차 안에 타고 있는 사람들도 모두 나와 사진을 찍었다. 다들 기차에 매달려 사진을 찍는 모습이 귀엽게 느껴졌다. 나도 사진을 한 장 남겼다. SNS에서 봤던 아름다운 사진은 건질 수 없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기차에 함께 대롱대롱 매달려있기 때문이다. 잠시 후, 경적 소리를 울리며 기차가 떠났다.
기차를 보낸 우리는 엘라의 또 다른 유명 관광지인 리틀아담스피크로 향했다.
'리틀’ 아담스피크는 진짜 아담스피크와는 다른 관광지다. 진짜 아담스피크는 스리랑카 중남부 고산 지대에 있는 성스러운 산이다. 정상에 있는 거대한 발자국 모양의 바위 자국이 이 산을 신성하게 만든다고 한다. 이 발자국을 놓고 해석이 분분하다. 불교에서는 부처님의 발자국, 힌두교에서는 시바 신의 발자국, 이슬람교와 기독교에서는 아담의 발자국이라고 믿는다. 엘라에 있는 ‘리틀’ 아담스피크는 해발 약 1100m 미터의 상대적으로 아담한 산봉우리다. 정상의 모양이 오리지널 아담스피크와 닮았다고 해서 ‘리틀 아담스 피크’라는 별명을 갖게 되었다. 등산 난이도가 낮고 접근성이 좋아 오히려 더 많은 관광객들이 찾고 있다.
리틀 아담스 피크로 가는 길에는 넓게 펼쳐진 차밭을 지난다. 걷다 보면 코코넛을 파는 좌판과 간식을 파는 상점을 만날 수 있다. 타밀족 여인들도 만날 수 있다. 머리에 천을 두르고 알록달록한 사리를 입은 그녀들의 허리에는 몸보다 큰 바구니가 있다. 여행객이라면 타밀족 여인들과 사진을 찍을 수 있는데, 사진을 찍고 나면 소액의 팁을 건네는 게 매너다. 이 ‘모델 알바’는 그녀들에게 꽤 중요한 부수입원이라고 한다. 팁을 건네며 복잡한 심정이 밀려왔다. 타밀족 여인들의 고된 노동과 거친 노동환경을 관광 콘텐츠로 소비하는듯한 죄책감이 들었다.
다시 한참을 걸어 리틀 아담스피크에 도착했다. 웅장한 장면이 펼쳐졌다. 세상의 끝에 선 느낌이었다. 산꼭대기에서 옆 산봉우리와 언덕 아래의 마을이 펼쳐졌다. 바람이 강하게 불고 있었다. 해 질 녘의 으스스한 분위기와 강풍이 만들어내는 을씨년스러운 분위기가 멋을 더했다. 자연의 거대한 힘을 느낄 수 있었다. 고등학교 문학 시간에 배웠던 미적 범주의 하나인 ‘숭고미’가 이런 걸까? 두려우면서 동시에 경외감이 느껴졌다. 나는 세상과 하나이기도 했고, 세상 안에서 아주 작은 존재에 불과하기도 했다. 해가 질 때까지 넋 놓고 360도 파노라마로 펼쳐지는 자연을 감상했다.
여유가 있는 하루였다. 길 가던 고양이가 귀여우면 한참을 놀아줄 수 있었고, 출출하면 아무 식당에 들어가 배를 채울 수 있었다. 기차가 연착돼도 짜증이 일지 않았고, 오래오래 질릴 때까지 풍경을 바라볼 수 있었다. 관광지에서 볼 수 있었던 멋진 장면들도 인상적이었지만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진정한 여유로움과 느긋함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