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폰 두고 떠난 스리랑카 여행기: 하푸탈레에서 보낸 하루
하푸탈레에는 정말 할 게 없는 도시다. 차밭을 바라보며 홍차를 마시거나, 마을을 산책하거나, 구름이 흘러가는 모습을 보는 게 전부다. 이 작은 마을은 ‘숨겨진 힐링 명소’로 유독 한국인 여행자들에게 사랑을 받는다.
한국인 여행자들이 하푸탈레에 열광하는 모습은 한국인들에게 빈둥거림이 얼마나 부족한지 말해주기도 한다. 한국 사회를 정의하는 형용사를 하나 꼽으라면 주저 없이 ‘빨리빨리’를 댈 것이다. 빠른 속도와 끊임없는 경쟁이 특징인 이곳에서는 모두가 무언가에 쫓기듯 달리고 있다. 여유는 사치다.
그래서 한국인들에게 하푸탈레는 특별하다. 하푸탈레는 멈춤을 허락하는 마을이기 때문이다. 마음껏 시간을 뭉개며 빈둥거릴 수 있다. 내가 사는 도시에 ‘멈춤과 비움’을 모토로 하는 카페가 있다. 카페에 들어가면 모든 전자기기를 반납하고 말도 최대한 줄여야 한다. 직원은 싱잉볼로 입실과 퇴실을 알려 준다. 자리에 앉은 손님은 책을 읽거나 글을 쓰며 자기만의 방법으로 바쁜 머릿속을 비워낸다. 요금은 일반 카페보다 몇 배나 비싸지만, 손님들의 만족도는 높다고 한다. 스마트폰을 두고 여행길에 오르는 마음도, 한국사람들이 하푸탈레를 사랑하는 마음도, 카페에 발걸음을 하는 손님들의 마음도 모두 같지 않을까. 과잉 자극이 넘치는 삶 속에서 일시 정지 버튼을 누르고 싶은 마음이지 않을까.
숙소 테라스에서 구름을 바라보고 홍차를 마시며 글을 썼다. 몇 시간 빈둥거리다 보니 무료해져 밖으로 나갔다. 하푸탈레는 걸어서 두 시간이면 다 둘러볼 수 있는 작은 마을이다. 스마트폰이 없는 내 입장에서는 이 점이 좋았다. 한 나절이면 마을 구석구석이 눈에 훤해지기 때문이다.
길가에는 아주 오래전부터 거기에 있었을 것 같은 작은 가게들이 늘어서 있다. 과일을 파는 가게에는 바나나가 주렁주렁 열려 있었다. 두 아이가 함께 걸어가는 모습도 봤다. 뭐가 그리 좋은지 저 멀리부터 노래를 부르고 깔깔거리며 웃고 있었다. 그러다 우리를 보고는 노래를 멈추고는 체면을 차렸다.
‘이미 다 들었는데.’
대단한 걸 하지 않고도 저렇게 웃고 노래하며 행복해할 수 있는 아이들이 부러웠다. 아이들은 참 대단하다. 저들에게 있고 우리에게 없는 건 뭘까?
길을 걷다 경치가 좋은 카페를 찾았다. 초콜릿 케이크와 따뜻한 홍차를 시켰다. 달콤한 케이크를 입에 넣으며 밖을 바라보니 카페 밑으로 차밭이 펼쳐져 있다. 차밭 사이사이의 좁은 흙길로 툭툭이 지나갔다. 어느 곳에 시선을 두나 모두 녹색이다. 차밭에는 전통 복장을 입은 여인들이 묵묵히 찻잎을 따고 있었다. 움직임이 적은 것 같지만 그녀들의 손은 쉴 틈 없이 움직이고 있었다. 손길을 따라 찻잎이 바구니로 들어갔다. 그녀들이 짊어진 몸보다 큰 바구니에서, 깊이 숙인 허리에서, 햇볕에 거칠어진 얼굴과 손에서 그들 인생의 고단함이 엿보인다. 타밀 여성들이다.
드넓은 차밭에서 찻잎을 따는 여인들의 모습은 아름다워 보이지만 그 안에는 타밀인들의 아픔이 서려 있다. 타밀족은 스리랑카 전체 인구에서 약 15%를 차지한다. 힌두교 중심의 소수 민족으로, 스리랑카 역사에서 오랫동안 차별받았다. 1948년 스리랑카 독립 이후 만들어진 첫 의회에서 국적을 빼앗겨 약 70만 명이 하루아침에 무국적자가 되는 일도 발생했다고 한다. 교육, 의료, 주거, 투표권 등 삶의 전반에 소외된 타밀인들에겐 차밭 노동과 같은 단순하고 고된 일만 주어졌다. 시간이 흘러 제도적인 대우는 개선되었지만, 타밀인들의 삶에는 여전히 많은 차별과 아픔이 존재한다고 한다. 그들이 종일 찻잎을 따서 번 돈은 한화로 약 2,000원 수준으로, 스리랑카 물가를 고려하더라도 생계를 유지하기 어려운 형편이다. 이에 국제사회와 인권단체에서도 지속적으로 문제를 제기했다. 2021년, 정부는 차 공장주들에게 하루 최저 임금을 약 4.000원 정도로 책정하도록 권고했다. 물가 상승률을 고려하면 여전히 낮은 수준이지만, 그래도 이를 기점으로 타밀 여성들의 삶에 조금이나마 긍정적인 변화가 일어났다고 한다.
타밀 여성들은 삶의 부조리함을 정면으로 마주하고서도 묵묵히 찻잎을 딴다. 갑자기 그녀들을 관찰하는 내 모습이 어색하게 느껴졌다. ‘역시 인생은 고통스러운 거야. 이런 상황에서도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아내는 그녀들을 존중해.’라고 생각하며 초콜릿 케이크를 입에 넣는 내 모습. 정말 이게 그들의 삶을 존중하는 태도일까? 그녀들이 딴 찻잎으로 우린 홍차를 홀짝이며 그녀들이 일하는 모습을 사진으로 담는 게? 혹시 내 마음 한구석에선 저 삶이 내 삶이 아니라는 안도감과 얄팍한 우월감이 일렁이고 있진 않은 걸까? 날이 흐려지기 시작했다.
생각이 많아져 얼른 자리를 정리하고 일어났다. 도망친 걸지도 모르겠다. 마을 산책을 좀 더 하다 숙소로 돌아왔다. 저녁 식사는 숙소에서 먹기로 했다. 여러 가지 야채와 닭고기, 계란이 들어있는 야채 수프가 나왔다. 밖에서 먹는 음식보다 간이 덜 짜서 우리 입맛에 딱 맞았다. 따뜻한 국물과 여러 야채로 속이 편안해진다. 아까의 복잡한 생각들은 금세 마음의 가장자리로 밀려났다. 인간이 이렇게 단순하다.
저녁 식사를 마치고 홍차를 한잔 더 마셨다. 한국에서는 하루하루가 숨 넘어가게 짧은데, 오늘 하루는 참 길었다. 우리는 시간을 아주 작은 단위로 쪼개는 것에 익숙하다. 하지만 시간을 긴 단위로 사용하다 보니 새로운 느낌이 들었다. 정적, 공백, 공허. 그리고 그 후에 찾아오는 여유와 편안함이 있었다. 숨 막히는 일정과 끊임없이 울리는 스마트폰 없이 하루의 온전한 주인이 된 특별한 날이었다. 시간은 하늘 위 구름처럼 유유자적 흘렀고 마음은 맑았다. 내일도, 모레도 이렇게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누가 스마트폰을 내 손에 강제로 쥐어주는 것도 아닌데 뭐가 그리 어려운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