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리랑카 18] 본고장이 아니어도 괜찮아

스마트폰 두고 떠난 스리랑카 여행기: 엘라에서 친구와 요가하기

by 삼콩

하푸탈레를 떠나 엘라로 향하는 날이다. 아침부터 비가 추적추적 내렸다. 비 오는 차밭을 바라보며 조식을 즐긴 뒤 기차역으로 향했다. 하푸탈레는 마지막 순간까지 우리에게 여유를 선물했다.

기차역에서는 여유를 너무 많이 선물 받아 문제가 됐다. 기차역에 도착하니, 오전 10시 기차가 오후 1시 30분으로 연착됐다는 안내글이 쓰여 있었다.


'한 시간 이동하기 위해 세 시간 반을 기다리라고?'


한국인의 성질머리로는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스리랑카 사람들은 표정의 변화 하나 없이 기차역에 불상처럼 앉아있었다. 꿈쩍 않고 세 시간을 기다릴 기세다. 저들에게는 짜증이 없나? 신기하기만 하다.

K-인내심이 금세 고갈된 우리는 툭툭을 타고 넘어가기로 했다. 역전에 있던 툭툭 기사와 흥정을 했다. 장거리를 뛰는 툭툭 기사님의 표정이 밝다. 기차 연착이 그에게는 호재였나 보다.

중간에 과일가게에 들러 과일도 한 보따리 샀다. 신기해 보이는 과일들이 많았다. 사탕수수 나무 조각도 있었다. 한 조각 골랐더니 씹어먹을 수 있게 나무껍질을 깎아 주셨다. 맛이 너무 궁금해 툭툭 안에서 사탕수수를 잘근잘근 씹어 먹었다. 한 입 베어 물면 ‘와자작’ 하는 소리와 함께 사탕수수 줄기가 씹힌다. 널빤지를 씹는 식감이지만, 씹다 보면 단물이 입 안 가득 퍼진다. 판다와 원시인, 그 중간의 무엇이 된 것 같다. 열심히 씹다 보니 툭툭은 어느새 엘라에 도착했다.


엘라는 스리랑카 남부 고원지대에 위치한 산악 마을이다. 작은 마을이지만, 스리랑카에서 가장 유명한 관광지 중 하나다. 가이드북은 엘라를 ‘초록빛 가득한 차밭 언덕, 한적한 카페와 로컬 레스토랑, 느긋한 여행자의 쉼터’ 같은 키워드로 소개하고 있다. 여행자는 슬로 트래블을 즐길 수 있는 숨은 보석 같은 마을을 상상하게 된다. 나도 그랬다.

그러나 엘라에 가 보면 깨닫게 된다. 그런 설명은 몇십 년 전 버전이라는 걸. 현재 엘라는 완벽한 관광 도시가 됐다. 조용한 로컬 마을이었던 이곳은 외국인 관광객들을 위한 카페, 바, 음식점, 기념품샵이 가득 찬 떠들썩한 핫플이 됐다. 트래킹 코스 중간중간 상점, 기념품 가게, 돈을 받고 사진을 찍어주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 엘라는 인프라가 잘 갖춰진 핫한 여행지를 찾는 여행자에게는 반갑고, 숨겨진 보석을 찾는 여행자에게는 실망을 안겨줄 여행지가 됐다.


IMG_2830.JPG 창밖으로 근사한 풍경이 펼쳐지던 엘라의 한 레스토랑


IMG_2832.JPG 음식도 고급스럽고 맛있다


저녁은 기차에서 만난 네덜란드 친구 파다우와 함께 하기로 했다. 헤어질 때 친구와 what's app 아이디를 교환했다. 나는 스마트폰이 없어 친구의 스마트폰으로 연락할 수 있었다.

파다우와는 이후에도 인연이 닿아 일정을 쭉 함께하게 된다. 사랑스러운 파다우와의 동행은 이번 여행의 즐거운 추억이 됐다. 만약 친구의 스마트폰이 없었다면, 기차에서 헤어질 때 우리의 인연은 끝났을 거다.

우리가 함께 들은 요가 수업 역시 스마트폰을 통해 신청할 수 있었다. 구글에서 마음에 드는 요가원을 찾아, 왓츠앱 아이디로 연락하면 쉽게 예약할 수 있다. 여행을 떠나기 전에는 스마트폰에 대한 부정적인 인상만 가득했는데, 여행을 하며 스마트폰의 편리함에 대해서도 절실히 느낄 수 있었다.


요가 수업은 나쁘지 않았고, 특별하게 좋지도 않았다. 지난번과 마찬가지고 하타 요가 수업이었다. 하타 요가는 전통적인 스타일로, 음양의 조화를 중요시한다. 우리가 스리랑카를 여행하며 체험했던 모든 요가 수업은 하타 요가 기반이었다. 그 이유는 두 가지 측면에서 찾을 수 있다. 첫째로는, 요가의 본고장인 인도와 스리랑카가 지리적으로 가깝다는 거다. 따라서 인도의 전통 요가인 하타 스타일이 유입되기 쉬웠다. 둘째로는, 요가가 스리랑카에서 주류로 자리잡지 못했다는 거다. 스리랑카는 테레다와 불교 국가이다. 불교도 요가를 수행의 일부로 받아들이긴 하지만, 요가는 힌두교에서의 중심적인 수행법이다. 거기에다 포르투갈, 네덜란드, 영국의 오랜 식민 지배 기간 동안 요가와 같은 ‘전통 수행’은 더욱 비주류로 밀려났다. 스리랑카의 역사 속에서 요가가 발전할 기회는 많지 않았다. 따라서 대부분의 요가원에서는 가장 전통적이고 기본적인 하타 스타일을 가르치고 있다. (하타 스타일이 나쁘다는 건 아니다!)

마이너 문화임에도 불구하고 스리랑카 관광 도시에는 모두 요가원이 있다. 숙박과 식사를 결합한 요가 리트릿 센터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왜일까? 외국인 관광객 중심의 힐링 문화 때문이다. 외국인들, 특히 서양인들이 스리랑카를 여행할 때 그들의 머릿속에는 신비로운 아시아 여행에 대한 몇몇 이미지가 있다. 대자연 속에서의 요가 체험도 그중 하나일 것이다. 그들은 남인도와 스리랑카의 문화를 세세하게 구분하지 않는다.

이건 마치 동해에 놀러 와 조개 구이를 먹는 관광객들과 같다. 나는 강릉에 살고 있는데, 주말이면 도시 곳곳이 관광객들로 붐빈다. 많은 관광객들이 시원한 동해바다를 본 뒤 바닷가에 온 기념으로 꼬막비빔밥이나 조개구이를 먹는다. 강릉에서는 꼬막도, 조개구이용 조개도 잡히지 않는다. 꼬막은 남해안에서 가져온다. 조개구이용 조개는 대부분 중국산이지만 국산 조개 중에는 서해안 것이 많다.

그런데 요가의 본고장과 조개가 조개의 원산지가 그렇게 중요할까? 나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둘 다 그 지역의 분위기 속에서 새로운 정체성을 얻어 향유되고 있다. 여행자에게 만족스러운 경험이 됐다면 그 자체로 충분한 의미가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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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가 선생님께서는 생각을 비우라 하셨지만, 사념을 따라가다 보니 채우는 수업이 됐다. 그래도 친구들과 함께 하는 요가 수업은 즐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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