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색
tvN '어쩌다 어른'이라는 교양 프로에서 심리학 전공의 어느 교수가 그랬다. 심리적 고통은 교통사고를 당하는 것만큼의 아픔이라고. 살다 보면 참.. 천성이 악해서 고칠 수도 없겠다 싶은 사람을 만나곤 한다. 사회 초년생 때는 그저 넋 놓고 당한 뒤 말 못 할 시간을 보내기도 했지만, 시간이 흘러 맷집이 두둑해 짐에 따라 맞서 싸우는 법도 알게 되었다.
성선설과 성악설, 성무선악설. 나는 이 셋 중 하나가 모든 인간에게 시공간을 동일시하여 적용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 셋은 개인마다 다르게 타고나는 것 같다.
누군가 내게 와서 "OO씨는 정말 착해."라고 하면, 나는 항상 이렇게 말한다. "착하다는 건 상대적인 것이다."라고. 성악설에 의해 뼛속부터 악인일지라도 나한테 친절하면 착해 보일 수밖에 없다. 아무리 누가 와서 저 사람이 어떤 미운 짓을 했고 어쩌고 하며 색안경을 씌우려 해도 내게만 그런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면, 내 기준에서 착하다라는 결론을 내릴 수 있기 때문이다.
나의 경우 이런 경험들이 소설을 쓰겠다고 덤벼들고부터는 아주 유용한 소재가 되었다. 내가 당시에 느꼈던 불쾌함과 그들을 이해하기 위해 관찰하고 분석한 캐릭터를 활용하면 연쇄 살인마의 얼굴을 한 사이코 패스나, 정치, 경제인으로 둔갑한 소시오 패스로 묘사할 수 있으니까.
MBTI도 그렇다. 인간관계에서 한창 벼랑 끝에 몰렸다 싶었을 때 알게 된 이 이론으로, 나는 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마주하게 되었고, 비로소 인정하게 되었다. 이로 인해 줄줄이 사탕으로 분석의 끝판을 봐버린 지금, 소설 속 인물들의 캐릭터를 구축하는데 이 만한 공식이 없는 것이다.
모든 일이 그렇다. 나를 스친 무수한 일중에 쓸모없는 일은 없다.
세상을 살다 보면 백해무익하게 나를 할퀴고 지나간 흔적이 곳곳에 남아있다. 나이 들어 돌아보면 그저 코웃음만 치게 될지라도 결국 그걸 하나둘 수집하다 보면 다신 없을 대인관계의 퍼즐을 완성할 수 있게 된다.
디즈니에서 '인사이드 아웃'이라는 애니메이션이 대박을 친 적이 있었다. 슬픔이 있어야 진정한 행복을 느낄 수 있다는 공식. 인간관계 속에서 일어나는 고통이 잠깐 내 발목을 잡고 흔들어 멀미를 느끼게 할 수도 있고, 나를 둘러싼 폭주족 마냥 공포의 구렁텅이로 밀어 넣을 수도 있다.
정말이지 일상 속의 빌런은 곳곳에 매복하고 있다가 지뢰 터지 듯 뜬금없이 튀어나오곤 하니까. 하지만 기죽을 필요는 없다. 어차피 내 인생의 주인공이 나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으니까. 끊임없이 스스로를 담금질하라는 신의 계시로 받아들이자. 어차피 그들은 그렇게 지나가거나 주인공인 나에 의해 교화될 것이고, 종국에는 무릎을 꿇을 테니. 하지만 이것도 잊지 말자. 그들의 인생에선 나 역시 빌런일지 모른다는 사실을..!
※ 빌런(villain): 악당, 악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