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 나한테 반했나?”
미케해변의 파도는 처음 만난 사람에게도 스스럼없이 말을 건다. 나는 대답하지 않고 잠시 바다를 바라본다. 키 큰 야자수 아래, 하얀 모래는 햇빛을 받아 밀가루처럼 바스러진다.
파도는 발목까지 다가왔다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물러난다.
처음엔 몰랐다.
이 바다가 얼마나 많은 이별을 삼킨 뒤에야 이토록 고운 얼굴을 갖게 되었는지를.
“그래, 반했다.”
나는 속으로 대답한다. 슬픈 파란색을 가진 네게.
베트남 다낭의 미케해변은 긴 모래사장과 부드러운 파도 덕분에, 현지인과 여행자 모두에게 사랑받는 곳이다. 하지만 내가 마주한 미케해변은 아름답다는 말만으로는 무언가 설명이 부족한 곳이었다. 이 바다는 환한 얼굴을 하고 있으면서도 어딘가 슬픈 파랑을 깊숙이 감추고 있었다. 수면 아래에는 쉽게 말할 수 없는 사연이 겹겹이 가라앉아 있었다.
미케해변의 파랑은 밝다.
그러나 그 밝음은 슬픔을 지나온 뒤에야 얻어진 색이라는 걸 나중에 알게 되었다.
새벽 다섯 시.
수평선 끝이 천천히 붉어진다. 어둠과 빛이 서로의 자리를 바꾸는 동안 하늘과 바다의 경계가 풀리듯 사라진다. 그때 사람들은 말없이 물속으로 걸어 들어간다. 누군가는 두 손을 모으고, 누군가는 음악도 없이 몸을 흔들며 각자의 방식으로 하루를 불러낸다. 아침마다 바다는 같은 자리에 있으면서도 전혀 다른 얼굴로 다시 태어난다.
아홉 달 동안의 투병으로, 해진 마음과 지푸라기처럼 버석거리는 몸을 이끌고 다낭에 도착한 첫날, 숙소 창문 너머로 바다가 보였다. 침대에서도, 주방에서도, 욕실 거울 속에서도 시야 끝마다 파랑이 걸려 있었다. 짐을 풀자마자 해변으로 향했다.
붉은 노을이 수평선을 덮고, 잔잔한 파도는 수묵화처럼 번졌다.
모래 위에는 사진작가와 신부, 신랑이 한 장의 그림처럼 서 있었다. 결혼사진을 찍는 신혼부부를 바라보다가 나도 모르게 시선이 오래 머물렀다. 설렘과 두려움이 나란히 서 있던 시절, 바다는 그때도 이렇게 누군가의 출발을 말없이 지켜보고 있었을 것이다.
이 평온한 해변은 한때, 떠나야만 했던 사람들의 바다였다.
베트남 전쟁 말기, 다낭에서 탈출하기 위해 수많은 사람이 바다로 나섰고, 끝내 돌아오지 못했다.
미케해변은 아름답지만 슬픔을 덮은 바다였다.
집으로 돌아오지 못한 이들의 넋을 위로하기 위해 세워진 링엄사의 해수관음상은 지금도 바다를 향해 서 있다. 햇빛을 반사하며 반짝이는 바다 아래에는 아직 식지 않은 고통의 기억들이 조용히 잠들어 있다.
그래서 나는 미케해변 앞에 서면 ‘평화’라는 말을 쉽게 꺼내지 못한다. 이 고요가 얼마나 많은 고통을 딛고 서 있는지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지금 눈앞에 펼쳐진 이 평화가 더없이 소중하다. 미케해변은 슬픈 파랑 위에 다시 만들어진 평화의 얼굴을 하고 있다. 무심한 파도는 수많은 단절과 이별 위에서 출렁이고 있었다.
미케해변은 하루도 가만히 있지 않는다.
새벽이면 학생들이 모래 위를 달리고, 아침에는 어부들이 밤의 시간을 건져 올리듯 그물을 걷는다. 고기가 적게 잡힌 날이면 내 마음도 함께 가난해진다.
해변 한쪽의 즉석 어시장에서는 파는 사람도, 사는 사람도 서로의 얼굴에 웃음을 얹는다. 맨발로 뛰는 아이들, 단체로 몸을 움직이는 사람들, 미케해변은 늘 누군가의 현재로 가득하다.
해 질 무렵, 바다는 다시 붉게 타오른다.
수평선 위의 해가 느릿하게 물속으로 잠기면, 사람들은 스러져가는 마지막 화려한 빛을 말없이 배웅한다. 누군가는 카메라를 들고, 어떤 이는 조용히 눈을 감는다.
미케해변은 단순한 여행지가 아니다. 지친 사람들을 가만히 품어주는 장소이자, 슬픔과 희망이 겹쳐진 자리, 상처를 품은 채 다시 살아가는 사람들의 풍경이다.
오늘도 미케해변의 파도는 아주 낮은 목소리로 내게 속삭인다.
“괜찮아. 여기서는, 너도 다시 시작할 수 있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