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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뻥쟁이글쟁이 Feb 22. 2024

수니

왕년에 껌 좀 씹었지!

백만 년 전 여고시절.

교내에서  멋있기로 소문 자자한 담임선생님은

외국영화에서나  마주 할 수 있는 샤프한  외모에  일상이 늘 파격적인 행보로  최고 인기남  그 잡채였다.

대.충.  이란 단어를 너무 좋아한 나머지  아무 데나

 다  가져다 쓰며  뭐든지 대충 이어서 별명도

 대충 멋쟁이였다.

 굳센 의지와  성의만 있어도 알아볼  사람은 다 알아본다며 칠판에 필기도 휘갈겨  그린 탓

글씨인지 그림인지  대충었다.

준비물도 대충,  면담도 대충, 젤  좋은 건  숙제도 대충,

더 좋은 건 검사도 대충...뭐든 대충 통과였다.

새 학기 첫날부터 복도로  다  내보내 아니나 다를까, 대충 니들끼리  줄을 서든지 말든지

 맞춰 알아서  대~짝을  정하라 하셨다.

덩달아 대충 서로 웅성거리며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는데  이른바  일진이었던  노랑머리 순희가 하나둘셋넷~~

까치발앞사람의 어깨를  찍어 누르는 것도 모자라 목을 쭉~빼고는  소란을 피웠다.

두에게 거리두기  대상이었으나 어느 누구 하나

선뜻 말을 꺼내지도 못했다.

일진님과 같은 반이 되었으니  일 년 동안  서로 부딪치지도 말고  얽히지도  말고  하루하루 조용히

넘어가기만을  바라는 것이  니 마음,  내 마음인 동시에  모두의 같은 바람이었던 것 같았다.

혼자 수선을 떨  에서부터  빠르게 숫자를 파악하더니  , 이쯤이야, 열일곱 번째~~

 갑자기 내 앞 멈춰 새치기를 하며 무대뽀로

  자리를 잡았다.

원래 서 있던  자리의  장본인은 영문도 모른 체 밀려나 주춤거렸으나  일진님 무서워서가 아니라  아더메치유,  드러워서 참는다는 떨떠름한 포정을지었다.

잠깐 사이에 첫 시간  분위기를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은  새치기 임자가 뒤돌아보며  내게   반갑지 않은 선언을 했다.

내  짝으로   ㅇㅇ 너 당첨! 하며  씨익 옷는데

하얀 얼굴보다 더 하얀 그 애의 치아가  아침 살과

어우러져  반짝반짝 눈부셨다.

 같은 반이 된 것도  처음이고  몬 공주 판 지 유명한 일진이라는 소문과 더불어  간혹 먼발치에서나

 보았던 그 애를  바로 눈앞에서  실물영접  하는 것도  처음이었다.

 섬섬옥수가 이런 경우인가 보구나.

참. 가지런히  고른  이를 가졌.

얼굴 정말 하얗.

어랏 웃기도 잘 하네..

그 애의 첫인상,  첫 느낌이 그랬었다.

하지만  그  좋은 감정도 잠시, 이런 부류의 아이와

 잘 지낼 수 있을까  하는 살짝 두려운 마음이 앞섰다.

무대뽀에 꼴통 짓 하는 건 나도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라  울 엄마 입에 달고 살던 소리가 간 뎅이 부은 년,

쇠심줄보다 더 질긴 년.. 이었는데  내 앞에  강력한 존재가 나타나다니 기부니가 몹시 언짢았다.

 이게 대체  무슨 상황 인가 싶고  솔직히 도망가고 싶다는 생각만 가득했다. 

내 의지와는 아무런 상관없이 선택의 여지도 없이

내가 왜  ???  아니  왜 나를???

날라리아 공주님들과는  정말 엮이기 싫은데

 아이고 하늘이시여..왜 제게  이런 시련을 주시나이까 .  성경시험도  있는 미션스쿨이니 만큼  늘 만점인

성경점수를 앞세워  기도라도  하고픈 심정이었다.

백 점짜리의  기도니 당연히  들어주시는 거죠?

이 아이와 절대 짝이 되고 싶지 않은  일종의 소심한 반항과 더불어 ,작은 소망을 담아서였다.


저. 저 저기요,  일진님,

대체 누구 허락하에  나를  짝으로 찍으셨나이까.


교내에서 이름하야 깻잎소녀로  나름 유명했던 순희

거의가  양갈래  곱게 땋은  깜장머리인 것과는 달리

유난히 하얀 얼굴에 노랑머리로  낯선 이방인 같았.

학교 육성 위원이었던가 암튼 치맛바람 거세게 휘날리는  극성엄마를 두었던  외동딸 순희

주변 남학교와의 미팅이란 미팅은 죄다 주선하며

어느 학교 누구누구랑 어쨌다더라... 하는  소문의 주인공이자 공식  불량감자였다.

교칙에 어긋나는 행동으로 걸려도 그 애의 엄마가

한번 떴다 하면  대자보가 아닌, 호랑이 학생과장의

 머리 쓰담쓰담훈계조치로 만사  오케이였.

하루가 멀다 하고 밥 먹듯 사고도, 말썽도 많은 탓에 자주 목격되던 순희엄마는  풍채도 좋고 인물도 좋고, 금붙이를 주렁주렁 늘어뜨린 부티나는  차림새였다.

운동장 안 까지 고급세단이  촥 가로질러  기사가 열어주는 문으로 위풍당당 내리는 모습은 그 시절

진귀 구경거리에 속했다.

 당시  떠도는 소문에는 순희의  노랑머리원래

 색이 노랗다거나 얼굴이 하얘  더 노랗게 보인다거

쪼매 노는  공주님들 입에서는 맥주에 담구어 탈색한 거라는 제일 유력한 근거가 떠돌기도 했다.

멀리서도  눈에 확 뜨이는  은행잎 인 듯 은행잎  색을 닮은 깻잎머리 그 애의 감출 수 없는  트레이드 마크였는데  순희엄마와 학생과장의 면담이 목격되고 얼마간은  머리가 검은색으로 탈바꿈하는 마술을 부렸다.  애교 부리려고 애교머리인지  그  애교머리 한가닥도 안 내려오는 실핀의 위력을 과시하기도 했다.

  교내, 외 안팎으로 분주하게 사고를 치며 왕년에 껌 좀 씹던 순희는 돈 있고 빽 있는 엄마를  가진 덕에  아무도 머리털 하나 못 건드리는 막강한 존재였다.

억세고 드센 데다 거칠게 없는 행보의 여장부  타이틀을 거머쥔 순희엄마는 일찌감치 이혼의 대가로 받은  돈을

 일수놀이에 투자하며  남대문 시장을 주름잡던

 큰 손이라고 소문이 자자했다.

그렇게  새 학기  첫날,  울며 겨자 먹기라 해야 하나,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도 못하고 싫어도 싫다 소리는 더 못하는 심정으로  거의가 꺼려하는  순희 짝꿍로 간택당했다.

그 당시 학교규정은  양 갈래 사이를 바짝 붙여   딱

다섯 번만 땋아야 하는 까다로운 원칙이 있었

앞머리를 몇 가닥 내리는  애교머리는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던 시절 ,  순희는 교묘하게  실 핀으로 고정 해  올렸다 내렸다  하는 재주를 부렸다.

교문을  나서는 동시에 퉤퉤 침 발라가며 앞머리를

이마  고정시켰고  교복치마는 서너 번씩  접어

 미니로 둔갑시키다 못해  빤쓰가  다 보일 지경이었다;

느닷없이 각 교실마다 선도부가 들이닥쳐  두발 검사를 하 날면  짝꿍이 곤란해지는 것을 사전에 방지하기 위함이었는지  눈은 찡끗, 배를 움켜쥐고 엄살떨며 

양호실로  튀주는 센스도 발휘했다.

반 학기가  지나자 이따금씩 검정에서 노랑으로 탈바꿈하는 머리 색을 제외하고는    말썽 없이

 평범한 일상을 보냈다

일진이니 깻잎이니 무성한 소문과는 달리  오히려

 남 배려도 잘하고 웃기도  잘하고  손 엄마를 닮았는지  인심 넉넉하다 못해 넘쳐나고  그냥 우리와 똑같은  또래였다.

7 공주파라는  그 세계의 일진포스는 방과 후 에나 발휘하는지 몰라도  교라는 울타리에 갇혀 있는  동안은 모든 게 다 잠잠했다.

요  날라리아 깻잎소녜가 공부를  못 하냐 하면  

만의 말씀, 만만의. 콩떡, 그것도 아니었다.

두뇌가 우수한  사립 명문대생의  단독 관리를 받는다는 소문이 자자했던 만큼 그것을 입증하기라도 하듯 부분 상위권에 안주하는 편이었다. 

시험기간에는 엎어지면 코 닿을 듯 학교 앞

십 분 내의 그 애 집으로 가 시험공부라는 명분으로

밤을 새우며 수다삼매경에 빠 헤어나질 못했다.

그 시절 대부분이 낮은 스레트 지붕이나  기와집 정도의 규모였는데 순희네 집을 처음 갔던 날,

대문 앞에서 다들 입을 벌린 체 눈이 휘둥그레지는

상황이 벌어졌다.

지대도 높은 곳에 자리해 더 높아 보이던  3층 대저택에 압도되어 선뜻 어느 누구 하나 입을  수가 없었다.

이런 곳에 사는 사람이 실제 있긴 있구나...하는 생각에 빠져있는데 이모라 불리는 (일하는)언니가  행을  반겨주었다.  형형색색 과일은 물론,  끼니마다 갓 썰은

 김치에 고슬고슬한 새 밥으로  임금님 수라상  부럽지 않은  밥상을  들이밀었다.

조림이라는 이름의 반찬이 있다는 것도 그때

처음 알았는데  선뜻 손 내밀어 먹지 못할 만큼의

귀한 것을  바라만 보았.

쭉 쭉 찢긴 몸으로  진한 간장 속에 폭 담긴 그것이  

나 잡아봐라...약올리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줄 서서  우리끼리  대충  짝을 정했던 1학기가 지나자

오는 사람 마음대로,  선착순으로  아무 데나 대충 앉으라는 2학기가 시작되었고 서로 경쟁하듯 일찍 등교하는 희귀 현상이 벌어졌다.

너, 나 할 거 없이 복도 쪽 뒷 문 바로 옆, 맨 뒷자리를 사수하기 위한  눈치작전을 펼쳐야만 했다.

집이 먼 편에 속했던 나는 꼭두새벽이면 일어나

 더 일찍 등교를 했다.

그런 날이면 그깟 맨  뒷자리가 뭐라고 마음도 바쁘고 갈 길은 더 바쁜  분주한 발걸음에 맞추듯  어떤 날은 비발디 사계가.  또 어떤 날은 요한슈트라우스 라데츠카 행진곡이 운동장 구석구석까지 경쾌하게 울려 퍼졌다.

명당자리 쟁탈전을 벌이며 새벽바람 가르는 짝꿍과는 달리  학교 바로  앞에 살던  순희는 늘 한결같이 지각대장이었고 수업시작 전 아슬아슬하게 나타나 짝꿍이 찜 해 놓은 자리에 궁둥일 들이밀었다.

메뚜기도 한 철이라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부자 엄마의 후광에 힘입어 말썽을 밥 먹듯 부리던 순희는 시간이 지날수록 깻잎을  면해가며 여고생다운

 단정함도 갖추었다.

  동대문에 단 하나뿐이던  스케이장을 함  다녔고

추운 계절엔 우리나라 최초 실내수영장이라는

 ymca 가서 자칭 인어라는 그 애한테 수영도 배웠다.

부자 친구와 더불어 계절을 거스르는 취미를 즐기며 종로의 르네상스니 명동의 필하모니 같은 클래식 음악감상실도 섭렵하던 시절이었다.

공짜 티겟도 쉽게 구하는 순희의 재주로 대학 내의 연극공연에 한동안 빠져 다니며  햄릿이나 파우스트의

또 다른 세계를 경험할 수 있었다.


서로의  일거수일투족을 훤히 꿰고 붙어 다니던

여고시절 단짝  순희는 스물한 살, 흐드러지게 목련이 피던 어느 봄날  느닷없이 결혼얘기를 꺼내더니

 재고 따지고 할 겨를도 없이 순식간에 띠동갑 남자와

결혼을 했다 .

따로 살던 부친을 만나고  오던 고속버스에서 인연이 된  남자는 80이 넘은 노모로 인해 결혼을 서두른다고 꼬드긴 모양이었다.

꽃 보다 더 이뻤던 나이,  

신부화장을 한 순희는 로마의 휴일에 나오는 여주

뺨 칠 만큼  고한 자태를 뽐며  가장 아름다운  4월의 신부가 되었다.

부케의 주인공은 당연히 순희의 둘도 없는 단짝 차지였는데 부케를 받고 빠른 시일 안에 결혼을 못하면 맨 꼴찌로 간다는 썰이 허구가 아님을 살아가면서

 몸소 체험는 과정이기도 헸다.

서두른 결혼이 무하게 순희의 시아머니는  4년여를

더 건재하신 후, 먼 길 소풍을 떠나셨고 그 김에  신랑 측 누님이 있는  LA훨 훨 날아가 버렸다.

명색이 미쿡 사는데  편지봉투에  순희라 쓰지 말고

니도 지니도 아닌 , sunni 라 써 달라던 순희.

다른 하늘 아래서 여전히 씩씩하게 잘 살고 있는 순희.

둘도 없는 내 소중한 단짝이었던  친구 순희.

그래, 넌 순희가 아니고 영원한 나의 수니야!

맥주에 담갔다 뺀 노랑머리 두발검사에 단골 고갱님이었던  바로 그 수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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