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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ocoyang Dec 20. 2023

갑이된 자매














나는 한 살 차이가 나는 언니랑

다섯 살 아래의 여동생이랑

이렇게 딸 셋의 둘째이다.

제일 위로 유일한 남자 ...오빠가 항상 우리의 모든 것 위에 군림했었다.

아들 하나 더 낳아야 한다는 엄마의 일념에 번번이 찬물을 끼얹으며

우리는 줄줄이 사탕마냥 딸 딸 딸  이렇게 세상밖으로 나왔었다.



엄마의 일관된 오빠의 뒷바라지로  얼추 성적이 좋았던  

오빠의 대학 시험 100일 전인가

우리 엄마는 의사 아들 하나 만들어 보겠다고

새벽에 머리를 감고 물 한 그릇을 떠놓고 장독대에 올라가서

지극정성을 들였었다.




우리세 자매는 어느 대학에 갔는지 우리 엄마에게는 그리 중요치 않았다.

다 오빠가 공부하는 분위기를 잘 만들어놔서 니들도 따라 잘한거라고 말했었다.

거저 큰 거지 사실. 알아서 큰 거지. 각자 동생 알아서 잘 챙기고

바쁜 우리 엄마는 항상 오빠만 챙겼었다. 그래서인지 우리는 항상 엄마가 옆에 있어도 그리웠다. 지금은 진짜 곁에 안 계셔서 그립지만...




우리 식구들 중에 제일 존재감 없었던 건 나였다. 진짜 존재감이라곤

밥 먹으면서 조잘거리다 혼날 때 말곤 딱히 생각나지 않는다.

성격도 무난하고 생김새도 이쁘지도 않았고 주위로부터 튈 수 있는 건 나에겐 하나도 없었다.

반대로 언니는 뉘 집 자손인지 엄마 아빠의 예쁜 것만 닮아서

가만히 있어도 그 예쁨이 하늘을 찌르고 있었으니까

나는 태어날 때부터 불공평의 늪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었다.




언니가 대학 다닐 때 나도 대학에 다니고 있었는데

미모로 장착된 언니의 거미줄에 스스로 옳아 메고 들어온 남자들을 보며

모태솔로인 나는 항상 그들을 찐따라고 말했었다.

언니로 인해 나의 남성관에 큰 영향을 입은 건 확실해 보였다.

그때부터 모든 남자들이 다 쪼다 같아 보였으니깐.




막내는 여리여리하게 팔다리가 길쭉길쭉 태어났는데

나중에는 나보다도 훨씬 커서 항상 나를 위에서 내려다 봤다.

4남매를 다 대학에 보내야 한다는 우리 엄마 아버지의 일생의 목표를 성취하기 위해

막내가 고3 이었을 때는 나는 거의 막내 공부를 위해 내 인생 따위는 없이 살았었다.

다행히 막내도 대학이라는 데를 가서 부모님의 소원이 이루어지려고 할 때쯤

엄마가 아프기 시작했었다.

공부하라고 공부만 하라고 하더니 ...

막상 힘든 공부 다하고 대학 가서 시간도 많이 있는데 ...

엄마와의 나머지 시간은 온통 병원에서의 기억밖에 없다는 거...

우리엄마는 무엇때문에 산거야 라는 질문만 수없이 했었다.


엄마가 돌아가시고 한참이라는 시간이 지나서 다 결혼하고 살때쯤인가

언니가 목에 뭐가 생겼고 갑상선암 진단을 받았다.

너무 속상하고 놀라서 눈물이 막 나왔었는데

착한 암이라고 하더니 수술 후 잘 살고 있다.  그렇게 1호 갑이 탄생하고

우리 엄마 뱃속에서 천원짜리 줄줄이 사탕처럼 나왔듯

갑상선암도 2호 3호 그렇게 걸렸고 그렇게 그날 이후로 우리는 갑자매가 되었다. 갑상선암의 갑이지만 우리들중 그 누구도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 크면서 단련된  차별과 자립의 끝에 우뚝서있는 갑자매만 존재할뿐이다.

사는것도 갑 먹는것도 갑 씩씩한것도 갑 만나면 누가하나 뻗어야 그치니까 갑중의 갑이다.

갑상선암의 갑은 우리자매에게는 사는 의지의 갑이며 사는방법의 갑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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