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cocoyang Dec 20. 2023

문신 2

한 달 배워 가지고서야 어디, 겨우 물에 뜨고 이제 자유형 팔 돌리기할 때쯤

열심히 발차기를 하면서 가는데 뭔가 한쪽 발에 묵직함이 느껴지면서 제대로 앞으로 나아갈 수가 없었다.

어렵게 한발로  서 보니 그 뽀빠이 문신의 코치가 내 발을 붙잡았던 것이었다.

원래 꼭 필요한 동작만 물 밖에서 가르쳐 주고 말도 별로 없었는데

물속에 들어와서 그것도 내 발목을 잡다니...

순간 치밀어 오르는 화에

"아! 뭐예요?"라고 한 것 같았다.





이내 코치는 머쓱해지며 발목에 한 게 뭐냐고 물어보는 것이었다.

발찌라고 하니까 자기는

발찌도 처음 보고 발찌라는 이름도 처음 듣는다며 몇 마디를 하는데

물안경을 벗은 얼굴을 본 게

그때가 처음이었다.

다시 물에 떠서 발차기를

하면서 가는데

온통 내 머릿속에는 그 순진하게 말하던 하얀 얼굴로 가득했다.

문신을 한 남자가 왜 순진하게 느껴지는지

도통 모를 감정에 이상했다.




내가 다니던 대학은 남녀공학이었다.

온갖 종류의 생물들과

4년이 지나다 보니

주위의  애들이 다 찌질하다고 생각했었고

동아리 선배도 과형들도 동기들도

그저 그런..

나의 남성관이 언니 덕분에

좀 일찍 발달을 해서

얼굴이 너무 잘 생겨도 싫었고

말을 아주 잘해도 싫었고

똑똑해서 사물을 정확히 표현하거나 상황을 정확히 이해해고 판단하는 건 더 싫었다.

나랑 사귀는 남자는 적어도 그렇지 않아야 자격이 있었다.

어느 대학엘 갔어도 똑같았을거다 아마

그래도

더 공부해서 더 나은 대학을 갔어야 했다고 후회를 했었는데...

아니었다.  학교에는 애초에

없었던 거였다.

처음 말하는 느낌만으로도  알 수 있는 운명 같은 사랑은

여기 이곳 수영장 새벽반에 있었다.



스포츠센터 새벽반에는

부지런한 어머님들도 많았는데 운명처럼 발목을 잡힌 날

새벽반 반장님이 나에게

코치님하고 오늘 점심 먹기로 했다며 알려주셨다.

정말로 두근거리는 마음은 점심까지도 주체가 되지를 않았는데

이미 그의 문신은 너무나 귀여운 마스코트의 캐릭터였고

이 떨림은 그가  나한테 찍혀있는 게 확인되는 증거였다.




나는 꽤 내 삶을 주체적으로

사는 편이었다.

중3 때 공부 좀 잘한다는 친구들은 인문계 고등학교 진학을 위해

열공할 때

엄마 아빠의 소원인 4남매 대학졸업의 꿈에 찬물을 끼얹으며

내가 했던 말이 기억난다.

그때 그 말을 하고  엄마한테 죽을 뻔했다.

"나는 상고에 갈거구 대기업 사장님 비서가 돼서 빨리 돈 벌고 싶다고 공부하기 싫다고"

아직도 후회되는데 사장님 비서 소리는 뺐어야 덜 맞았을텐데...ㅋㅋ

죽을 때 죽더라도 하고 싶은 말은

세 치 혀로 뱉고야 말았으니까 그때는 .





그런 나한테 걸렸으니

코치는 이미 나한테는 내게 와야만 하는 남자가 된 것이었다.

무슨 자신감인지

내가 그렇게 생각하면 그렇게 된다는 ...


반장님이 말한 고깃집에 약속시간보다 일부러 조금 늦게 갔었다.

그래야 그의 곁에 앉을 수 있을 테니까

난 그의 옆에 앉았고

젓가락질 하는거 밥먹는 거 말하는 거 이런 거 저런 거에 대한 검증을 하려 했었다.

어느 한 부분이라도 내 맘에

걸리는데가 있는지

대부분 싫어지는 포인트가 밥을 먹어보면 알기 때문에

아주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었다.

근데 단점을 찾을새도 없이

그의 모든 행동들이 순진한 매력 펀치로 나를 강타하고 있었다.

나중에 "예쁜 여자를 만나려면

내가 먼저 찍지만

그녀가 내게 오게 한다"라는

우리 아들의 영업 비밀을

들은 적이 있는데

어쩜 유전자의 힘은 비껴가지를 않는지...ㅋㅋ  나도 그랬다.

그가 네게 오게 했고 그가 내게 왔다.

우리는 카페에 가고

술도 마시고

자주 만나면서

어느새 하루도 안 보면

죽을 거 같은 사이가 되었다.

나의 촉은 완전히 맞아서

그는 순수 그 자체의 순진 남인 데다 말을 잘 하는 기술이 없어서

너무 좋았고

외모는 얼굴 아래 만 퍼펙트했고

동서남북 상황 파악을

잘 못해서 좋았고

처음 말한 주제로 다시

돌아올 수 없었으며

주관이 뚜렷하지 않았고

남의 말에 많이 휘둘렸었다.

완벽하지 않은 매력,

모든 게 갖춰진

내가 찾던 완벽남이었다.

대학은 중퇴를 했다지만

우리 부모님께는 중요한 지 모르지만 나한테는 오히려 좋은 점수를

받는 포인트가 되었다.

그렇게 그를 가지고

결혼을 하게 되었을 때

나는 그에게 이런 말을 했었다.

"자기가 먼저 내 발목을  잡아서

나도 잡았다고"

내 인생의 영업 비밀은 그는 죽을 때까지 몰라야 한다.... 자기야 지금도 사랑해...


이전 03화 문신 1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