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범대학을 다녔던 나는 대학 졸업을 앞두고 발표된 임용고시 일정을 보고는 절망스러웠다. 아무리 인기학과가 아니다 해도 내년도 교사임용고시에 3명을 뽑는다는 것이었다. 이해할 수 없는 교육정책에 참을 수가 없었다. 우리 학교만 해도 몇 명인데 그럼 다 뭐 하라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뭐든지 하라면 하고 뭐든지 따라라 하면 따라야 하는 것인가. 시험을 준비하면서 전국에서 3명 안에 들어야 할 거라고는 생각해보지도 않았고 그럴 자신도 없었다. 또 그렇게 열심히 한 것도 아니었어서...
돌이켜본 나의 대학생활은 글쎄 참자아를 찾아가는 험난한 수련?이라고 할 수 있을까. 주변의 인물에서보다는 대학 생활 경험자체에서 느끼는 교훈들이 있었던 내 인생에서는 꼭 필요한 순간이었다.
그렇게 대학을 졸업하고 뭘 할까? 생각을 하면서도 딱히 뭘 하고 싶지도 않은 시간들이 지나갔었다. 집으로 들어가는 골목사이 샛길에 작은 점포가 있었는데 어느 날 그 점포가 눈에 들어왔다. 두세 평 정도의 작은 가게라 큰 부담 없는 월세와 방만한 운영도 커버가 될 듯한 나 만의 아지트를 만들어 돈도 벌고 시간도 보내고 여러 생각들이 스쳤었다. 그 길로 틈틈이 아르바이트해서 모은 돈과 엄마의 잔소리 먹고 받은 잔소리찬조금으로 작은 옷 가게를 시작했다. 외대 앞에 팔색조라는 늙은 총각사장 샵에서 얼마 전부터 일하던 터라 당장 때려치우고 나올 생각에 더 빠르게 진행한 것 같았다.
팔색조라는 새의 존재조차도 모르던 나는 그 사장한테서 새의 의미와 뜻까지 들어줘야 했었다. 팔색조라는 새는 하루에도 여러 번 색이 바뀐다며 모름지기 옷 가게는 팔색조의 의미가 있어야 한다며 손님의 취향에 맞춰 변해주는 서비스를 직원들에게 강요했었다. 하지만 정작 하루에도 여덟 번씩 변하는 건 팔색조가 아니라 그 사장이었다. 세상 젠틀한 것 같다가도 갑자지 센스티브해서는 지적질삼매경이다가 또 어느새 옆에 붙어있던 카페에서 책을 읽으며 커피를 즐기곤 했었으니까... 사장의 캐릭터 자체가 옷가게 이름처럼 심심할 틈이 없어 보였다.
일주일에 한 번씩 새벽에 물건을 하러 버스를 타고 남대문 시장에 갔다가 옷 몇 벌 사서는 매장에 디스플레이하고는 종일 언제 올지 모를 손님들을 기다리는 일은 생각지도 못한 피로감을 주는 일이었다. 막상 작은 가게라도 운영자의 입장이 되니까 많은 것들이 달라졌다. 진짜 엄마의 잔소리 속에 있던 얼마 못 갈 일이란 말인가...
아침일과 중에 운동을 하나 넣기로 결심하고 골목 끝에서 횡단보도만 건너면 있었던 스포츠센터에 등록을 하기로 했다. 수영을 하면 전신운동이고 집에 들어가 씻고 나오기 않아도 되고 일석이조라는 생각도 있었다. 인포에서 기초반으로 들어가게 했고 상냥하게 말해 주던 그 아가씨는 팔에 문신이 있는 선생님반이라고 설명해 주었다. 나는 몇 명 안 되는 코치의 팔뚝에서 어렵지 않게 뽀빠이가 파이프담배를 피우는 문신을 발견하고는 그반으로 가서 수영을 배우게 되었다. 수영코치는 몸에 근육이 적당히 있고 발란스도 좋아 보여 매일 보던 우리 오빠의 실루엣과 오버랩되면서 포인트를 금세 쌓고 있었다. 늘 검은색 물안경을 쓰고 있어서 그의 눈은 한참 뒤에야 볼 수 있었다. 물건을 하러 가는 날이나 안 가는 날이나 지각근성 때문에 맨날 우당탕 거리면서 수업에 늦기일 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