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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아들만 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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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llo Earth Mar 16. 2024

자세히 보아야 알 수 있는 것

봄 기운 만끽하러 사춘기 자녀와 밖으로 나가봅시다!

주말이지만 큰 아이 치과 예약 때문에 부지런 떨다보니 치과 치료가 끝났어도 아직 아침이네요.

집으로 돌아와 어디 갈까 하다가, 봄 기운을 느끼려면 산으로 가야 한다며 아이들을 산으로 이끌어봅니다.


원래 자연을 좋아하기도 하고, 코로나 시기 우울증의 기억 때문인지, 큰 아이는 밖으로 나가는 걸 무척이나 좋아합니다.


반면, 작은 아이는 집돌입니다. 아직 우울증이라는 게 뭔지도 모르거니와, 집에서 보드게임이나 종이접기를 하고 싶은 마음이 큰 것 같아요.


작은 아이가 집만 좋아하는게 못내 걱정인데요.

다행히 요즘 작은 아이와 보드게임을 하며 부쩍 친해진 큰 아이가 집에만 있으면 우울증 걸린다며 작은 아이를 설득하네요.

(큰 아이에게 우울증의 기억은, 이제 편하게 말할 수는 있지만, 되돌아가고 싶지는 않은 기억이거든요.)


아빠는 출근이라 엄마와 아들 둘이서만 뒷산으로 향합니다.

집에서 직접 만든 엄마표 샌드위치와 과일도 챙겨갑니다. 원래 밖에서 음식을 먹으면 뭐든 맛있으니까요. 원래는 아이들이 직접 만들어가곤 했는데, 오늘은 특별히 봐주기로 합니다. 두 형제의 보드게임시간이 너무 예뻐보여서 방해하고 싶지 않았거든요.


겨우내 많이 못 갔던 뒷산에 오르자니, 억지로 끌려나온 작은 아이가 더 흥분합니다. 카메라를 든 형아 따라 저도 카메라를 갖고 가겠다기에, 이제는 형아가 쓰지 않는 디지털 카메라를 쥐어주었거든요  원래 가기 전엔 가기 싫다가 막상 나오면 무척이나 즐거워하는 작은 아이의 습성도 있지만, 오늘은 저도 탐사대원이 되었다는 기쁨도 한 몫합니다. 다행이에요. 휴...


뒷산 등산을 채 시작도 안 했는데, 벌써 큰 아이가 뭔가를 발견합니다. 원래 관찰력이 워낙 좋아서인지 평범한 자연 속에서도 늘 뭔가를 발견하 설명해주길 좋아하는데요.

이번에도 생태 해설가를 자처하며, 엄마와 동생을 상대로 열심히 해설을 해줍니다.


왼쪽에 보이는 아이는 노랑쐐기나방의 고치인데 만져보니 꼭 열매 껍데기처럼 꽤 단단합니다. 나방이 되어 날아가고 남은 껍데기네요. 그리고 오른쪽은 광부벌레가 잎을 갉아먹은 흔적입니다. 이파리 안쪽을 돌아다니며 이파리를 갉아먹는 모습이 굴 속을 파내려가는 광부같다고 해서 광부벌레라고 불린다고 하네요.


그냥 지나쳤으면 모르고 지나갔을 사소한 이파리 한 장인데, 큰 아이의 설명을 들으니 새롭게 보입니다.

노랑쐐기나방고치(왼) 광부벌레가 잎을 갉아먹은 흔적(오)
자연은 관심 없는 사람에게는 아무것도 보여주지 않지만, 관심과 사랑을 주는 사람에게는 아낌없이 보여줍니다.


냉이와 쑥이 지천인 뒷산. 초입에 있는 정자에 앉아 집에서 가져간 샌드위치를 맛나게 먹습니다. 배가 고팠는지 아이들이 허겁지겁 맛나게도 먹네요. 배가 부른 큰 아이가 갑자기 어딘가를 가리킵니다. 오색 딱따구리라는데 '어디?' '어디?'만 반복하다보니 결국 어디론가 포르르 날아가는 뒷모습만 보고 끝이 납니다.


그 모습을 본 큰 아이가 답답했는지 탐조가들 사이에 떠돈다는 우스개소리를 들려주네요.


엄마. 탐조가들 10명이 탐조를 하러 떠나면 어떤지 알아? 한 두 명은 새를 찾고, 두 세 명은 찾은 새에 대해 열심히 설명을 한대. 그럼 나머지 대여섯 명 정도는 '어디?' '어디?' 하다가 끝난다던데 엄마를 보니 알겠어.

흥. 결국 엄마가 못 알아봤다고 흉보는 거잖아. 쳇!

아깝지만 알록달록한 뒷모습만으로 만족해야 하는 엄마입니다.


샌드위치로 배를 채우고 다시 산을 오릅니다.

큰 아이가 익숙하게 우리만의 탐조 스팟에 가더니 이번엔 뱁새 둥지를 발견하네요.

오목눈이의 둥지(왼) 그루터기에 남아있던 굳지 않은 수액(오)

아마도 버려진 둥지인 것 같다는 큰 아이.

가만 생각해보니 예전에도 이 곳에 왔을 때 본 것 같기도 합니다. 수풀이 우거진 여름에 올 때는 찾기가 쉽지 않지만, 이렇게 나뭇잎이 다 떨어지고 앙상한 가지만 남은 지금은 관심 갖고 찾으면 상대적으로 쉽게 보이거든요.


숲을 오르는 동안 참 많은 동식물을 볼 수 있었습니다.

어치, 냉이, 쑥, 살짝 핀 개나리, 오목눈이 무리들과 박새, 직박구리, 곤줄박이, 오색 딱따구리, 까치 등등.

아는 만큼 보이고, 자세히 보아야 알 수 있는 신비로운 자연의 세계.

계절마다

봄이 와서 그런지 종알거리는 새소리가 반갑습니다.


그냥 오르면 한 시간 정도 걸리는 길인데, 이리저리 둘레둘레 관찰하면서 가다보니 시간은 배가 걸리네요. 그래도 급한 일 없으니 쉬엄쉬엄 갑니다.

뒷산은 남산으로 연결되는데요.

늘 남산은 버스로 오르곤 했는데, 기분이 좋은 두 어린이.

이번엔 걸어서 가겠다고 합니다.

날씨가 풀려서인지 버스가 사람들로 가득가득 차서, 타려면 한참을 기다려야 할 것 같으니, 그 시간에 그냥 걸어가보자 했지요.


쉬지 않고 걷다보니 힘들 법도 한데, 큰 아이도 작은 아이도 힘든 내색 않고 즐겁게 산을 올라갑니다.

중간중간 쉬어 가기도 하구요. 지칠 즈음부터는 끝말 잇기, 가위바위보, 묵찌빠 놀이를 하면서 오르니 아이들은 힘든 줄도 모르고 신나게 올라갑니다.


중간중간 자전거 타고 오르다가 넘어지는 라이더가 보였는데요. 그중에는 중학생? 아니 초등 고학년 정도로 보이는 아이도 있었어요. 경사로를 자전거 타고 올라가는 게 대단해보였는데, 넘어지면서 페달이 망가져 난감해하는 아이를 보니 안타깝기도 했답니다.


묵찌빠와 함께 하하호호 웃으며 올라가다보니 어느새 남산 N타워가 보입니다.

버스에서 우르르 내리는 승객들을 뚫고 올라가서는 아이스크림을 먹으러 편의점으로 향했습니다. 생각보다 훨~씬 더워진 날씨 때문인지 등산을 하고 나니 아이스크림이 땡겼거든요.


그런데 웬걸요.

해는 따스한데 그늘은 서늘~~한 것이 아직은 초봄이 맞긴 합니다. 아이스크림을 문 손이 달달 떨리긴 하지만 꿋꿋하게 끝까지 쪽쪽 다 먹고 나서야 일어나는 아이들.


돌아오는 길에, 작은 아이에게 즐거웠냐 물으니 큰 소리로 "네!" 하고 대답합니다.

다음에 등산 가자 하면 또 "가기 싫어요!"라고 하겠지만,

그래도 큰 아이가 동생과 묵찌빠와 가위바위보 놀이를 열심히 해준다면 또 갈 수 있을 것 같기는 합니다. 하하.


아이들과 함께 한 봄 맞이 등산.

사춘기 아이도, 집돌이 아이도, 그냥 엄마도 모두가 즐거웠던 봄나들이입니다.^^

(위) 좀사마귀 알집. 껍데기 뿐이지만 큰 아이에겐 농촌 유학 시절 키웠던 사마귀의 추억을 떠올리게 합니다. 물론 연가시 때문에 풀어주어야 했다는 슬픈(?) 결말이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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