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모임이 많은 5월이다보니 모여서 아이들 교육 이야기를 할 기회도 자연스레 많아집니다.
제가 쓰는 글들 대부분은 아이들과 산행을 하거나 라이딩을 가거나 운동을 하거나 하는 이야기들입니다. 저희 가족은 그걸 교육의 일부라고 이야기하지만, 우리나라 많은 부모님들이 보시기엔 아이들을 마냥 놀리는 가족이네. 라고 보실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어떤 분들은 오히려 엄마가 아이들을 잡아서 그런 거 아니냐고 반문하시기도 합니다.
엄마가 아들들을 지나치게 통제하다보니 아이들이 게임을 하고 싶은데 못하는 거고, 친구들이랑 놀고 싶은데 엄마 아빠가 핸드폰을 안 사주니 친구들 사이에서 왕따가 되어버려 어쩔수 없이 가족과 놀 수밖에 없는 게 아니냐는 거죠.
이런 말들은 사실 큰아이를 키우며 주변 사람들에게 자주 들어왔습니다.
남자아이들은 게임으로 친구를 사귀는데 엄마가 너무 강하게 게임을 막는 거 아니야?!
라고 말이죠.
(점잖게 "이야기"라고 표현했지만 꽤 질책 섞인 말들이었...습니다. 엄마가 아이들을 지나치게 통제하니 애들이 기를 못 펴는 거 같다는...나중에 사춘기 되면 더 세게 엇나갈 거라는...그런 무시무시한 예언도 포함해서요.)
큰아이의 초등시기에는 그 말에 두렵기도 했었습니다. 가뜩이나 사회성도 떨어지는 아이가 게임 얘기를 하는 친구들 사이에 낄 수도 없었으니까 고민을 안했다면야 거짓말이겠지요. 게다가 코로나 시기를 겪으며 게임에 빠지고, 코로나 우울증에 빠지며 겪은 격한 삼춘기를 회복하는 지난한 과정도 있었잖아요.
게다가 그 당시엔 남의편이었던 남편이었기에 아이에게 게임을 단호히 막으려는 제 결정에 불만이 많았더랬죠.
(물론 지금은 그 때의 제 결정에 전적으로 동의하고, 저와 교육관을 같이 하는 교육 동지가 되었습니다만....)
혼자 외로운 길을 가려니 정말이지 너무 힘들었던 시절입니다. 그래도 버텼던 건, 아이가 왕따가 되는 것보다 가정이 두쪽날 수 있다는 위기감이 더욱 컸던 것 같아요.(그 땐 큰 아이의 삼춘기로 인해 남편과의 관계도 위기였었고, 작은 아이도 불안해했던 그야말로 격랑기였습니다.)
라며 흔들리려는 마음을 애써 혼자 삭이며 마음을 다잡곤 했었습니다.
아이가 중학생이 되고, 남들이 말하는 중2 사춘기 시기를 지나고 있는 지금 생각해보니
는 결론에 이르게 됩니다.
왜냐구요.
큰 아이가 학교 다녀와서 들려주는 이야기를 듣자니, 공부를 곧잘 하는 친구도, 공부를 아예 손에서 놓은 친구들도 꽤나 많은 아이들이 게임이나 핸드폰으로 가족 간 갈등을 겪고 있더라구요.
저희 가정에서도 사춘기 아이와의 갈등이 왜 없을까마는 그래도 게임이나 유튜브 동영상, 핸드폰 등으로 겪는 갈등을 빼고 나니, 다른 문제로 인한 갈등의 깊이는 깊지 않거든요.(물론 사춘기 아이들 특유의 대드는 말투나 태도는 감안하고 말이죠.)
기껏해야 거실에서 라디오를 크게 트는 큰 아이에게 소리를 줄이라거나, 이어폰을 끼라고 하는 걸로 티격태격할 뿐입니다.
(큰아이는 MBC 라디오 이진우의 손에 잡히는 경제(플러스)와 아이러브스포츠의 열혈 애청자입니다. 시험기간에도 어김없이 울려퍼지죠.
엄마는 시그널 음악만 들어도 경기를 일으킬 정도로 소리에 민감하구요. 물론 모든 소리는 아니고 손경제 시그널만요. 왜 그런진 저도 모르겠네요. 아이가 오늘 할 공부도 안 하고 라디오만 듣는게 못마땅해서일 것 같다는 추측만 있을 뿐...그래도 해결은 했습니다. 아이가 이어폰 끼고 듣는 걸로 말이죠. 그렇게 평화는 왔는데 식사 자리가 적막해지긴 하네요. 라디오를 들으며 큰아이가 밥을 먹다보니 대화를 못해서요...휴우)
물론 라디오가 꺼지면 갈등도 종료됩니다.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아이는 아빠와 신나게 손경제 방송 이야기로 토론을 벌이고, 저는 작은 아이의 잠자리 준비도 하고 책을 읽어주면서 시간을 보내니까요.
큰 아이는 게임이 없어도, 핸드폰이 없어도 친구들과 무난하게 지내는 듯 합니다.
어른들 생각엔 남자아이들 대부분이 게임을 할 거라는 편견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게임을 안하는 남자아이들도 꽤 많구요.
핸드폰이 없는 친구는 많지 않지만, 있어도 굳이 하교 후에 친구들과 연락해서 만나지 않는 친구들도 있지요.
큰아이의 경우 공부는 조금 못 미칠지 몰라도(그래도 에미의 기대치에 못 미친다는 것일 뿐, 아주 바닥은 아닙니다. 물론 시험이 쉽게 나오니 아직 속단할 수는 없지만요.) 스포츠에는 일가견이 있는 아이다보니, 스포츠나 취미생활, 정치나 역사 이야기를 화젯거리 삼았을 때 호응해주는 선비같은 친구들도 있답니다.
얼마전 학교에서 수련회를 갔을 때도 그 곳에 마침 바둑판이 있어서 선비같은 한 친구와 바둑을 두며 신선놀음을 했다는 전설같은 에피소드도 있고요.
공부도 그럭저럭 잘 따라갑니다.
가족모임 때 누가 묻더라구요. 문제집은 어떻게 하냐면서 사교육비가 얼마 드냐고 말이죠..
큰 아이는 흔한 온라인 수업조차 안 듣다보니 사교육비는 그야말로 0(zero)입니다. 학교 수업 아니면 혼자 공부하는 거죠.
그렇다고 자기주도가 되지는 않습니다.
어렸을 때의 공부 공백으로 인해 공부 습관이 잡혀 있질 않다보니, 머리가 커서 자기주도 습관을 잡는 건 정말 열 배 아니 몇 십 배 어렵더라구요. (이래서 어렸을 땐 주도적 공부습관, 커서는 엉덩이 힘이라고 말하나 봅니다.)
여전히 혼자 계획해서 공부습관을 잡는 건 어렵습니다. 그러니 아직은 엄마주도일 수밖에 없어요.
그러니 당연히 한계가 있지요.
그래서 방학 때는 학원에 갑니다.(수학만요)
하지만, 수학만 문제집 공부를 하고 나머지 과목은 문제집 공부를 하고 있지 않습니다.(영어도요.)
이 무슨 황당한 교육관이냐고요?
결국 수능 준비하려면 문제집을 풀어야 할 거라고요?
맞습니다.
언젠가는 수능 준비를 위해 문제집을 풀어야 할 때가 오겠죠.
그런데요.
아이가 역사를 공부하는 방법을 보니 문제집이라곤 한국사 기출문제 몇 번 풀어보고 자격 시험 본 거 빼곤 공부를 위한 문제집은 푼 적이 없어도 반에서 탑 찍더라구요. 아직 역사 시험을 본 적은 없으니 시험 결과는 아니구요.
수업 때마다 눈 반짝거리며 선생님과 다양한 지식으로 토론 같은 수업도 자유롭게 할 수 있는 수준? 또래 아이들이 알 법한 역사지식 수준은 가볍게 넘기고 어른들과 토론도 자유로운 수준 말이죠.
꽤나 많은 역사책, 지리책, 인문사회 서적들을 읽다보니 문제집을 풀지 않고도 역사 스토리텔링과 의미를 줄줄줄 읊을 수 있을 정도인 듯합니다.
(물론 시험만을 목적으로 하자면 충분한 지식일 수는 있습니다만 기왕 하는 공부 배경 지식까지 품어야 오래 기억될 거라는 게 에미의 신념입니다.)
그래서 수학을 제외한 나머지 과목은(국어는 문학을 싫어해서 시도조차 못하고 있고, 영어는 선행 개념이랄게 없으니 차치하구요. 결국 과학 사회 두 과목이 전부이긴 하네요.) 책을 읽는 게 선행 아닌 선행, 예습 아닌 예습의 전부입니다.
책을 읽으니 참 좋더라구요.
일단 아이가 읽기에도 부담이 덜하죠. (시험 공부가 아니니 공부라는 생각이 안들잖아요.) 부모가 읽어도 재미있으니 억지로 읽을 필요가 없더라구요.
자연스럽게 아이와 대화의 주제도 생겨나구요.
약간은 오버스럽더라도 신나게 아이 말을 들어주고, 가끔은 흥분해서 아이와 토론도 하게 되구요.
아이가 아는 걸 부모가 모르면
라면서 추켜세워주기도 합니다.
가끔은요.
가끔 기분 좋을 땐, 흥분한 척 남편과 저만의 셀프 디스 만담과 버럭 회담을 하곤 하는데, 그럴 때면 어김없이 아이들이 깔깔대면서 뒤로 넘어가기도 하지요.
그래서 그런지 격식없이 라디오뉴스를 들으며 정치와 국제 정세에 대한 토론도 하구요.
스포츠 뉴스를 들으며 통계 이야기도 합니다.
시험 공부는 아니어도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대화와 토론을 통해 절로 공부가 되니 학교에서의 자존감도 올라가더라구요.
(참고로, 자연을 가까이 하는 아이는 자존감이 높다고 하네요. -지구를 살리는 생태감수성 수업
평일에 도서관에 가다보니 사서 선생님들도 아이를 알아보고 늘 반갑게 인사해주시는데요.
사서 쌤의 자녀도 저희 큰 아이와 같은 나이라면서 늘 관심있게 보시더니, 시험기간이 끝났을 무렵 결과를 물어본 모양입니다.
잘 본 것 같아요.
라는 아이 말에 사서 쌤이 엄청 부러운 눈으로 좋겠다며 칭찬을 해주셨다는데요.
(쉬워서 학년 아이들 대부분이 잘 본 건 당연히 말을 안 했겠지만요...)
잘 본 건 아닌 것 같은데 허풍 가득한 아드님의 높은 자존감에 웃어야 할 지 울어야 할 지 에미는 헷갈리지만...
오늘도 사춘기 아이와의 일상이 무사히 흘러가는 것만으로도 감사한 하루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