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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아들만 둘

봄이니까 한강 라이딩2

날이 흐린날엔 산이 아닌 강으로...

by Hello Earth

참 변덕스러운 5월 날씨입니다.

봄인듯 봄이 아닌 것 같은 요상한 날씨 말이죠.

영어단어 무지하게 외우기 싫어하는 아드님, 어젯밤 못 외우곤 오늘로 넘기면서 많다고 투덜대더니, 산에 간다하니까 급 태세를 전환해서 재빠르게 외우기 시작합니다.(큰 아이의 밀린 숙제를 시키는 강력한 무기, 바로 등산, 라이딩입니다. 숙제는 끝내야 출발한다는 사실을 깨닫기까지 무려 6년이 걸렸는데요. 한번 깨달은 이후로는 두 말 않고 잘 따르니 다행이지요.)


온가족이 늦잠이라 호다닥 서둘러 밥 먹고 영어 단어 테스트를 보고 나니 벌써 정오가 다 되어 갑니다. 원래는 등산을 가자고 했는데 좀전까지 햇빛 쨍쨍하던 하늘에 먹구름이 그득해지네요. 이렇게 되면 산 위에서 비를 옴팡 맞을 수도 있으니, 안되겠다 싶어 한강 라이딩 가는 걸로 바꿔버렸죠.


큰 아이는 아쉽고, 작은 아이는 환호하지만, 그래도 뭐 머리 좀 컸다고 예전처럼 "엄마는 약속을 해놓고 지키지도 않는다."며 떼를 쓰진 않습니다. 그냥 아쉽군. 하고 입맛만 쩝. 다시면 끝이지요. ( 어쩔 수 없는 상황을 얘기해도 그저 약속을 '안' 지켰다는 사실 하나에 초점을 두고, 아이가 떼를 써서 결국 다툼으로 번지곤 했던 시절도 있었다보니 지금의 상황이 참...뿌듯합니다.)


쏘쿨하게 상황을 인정하고 따라와주는 두 아드님 덕에 빠르게 루트를 변경하고 한강 라이딩에 나섰습니다.

이번엔 63빌딩보다 조금 더 멀리 가보기로 했지요.

거의 쉬지 않고 달렸더니 한 시간을 조금 넘겨 여의도에 입성합니다. 한강에서 빠져나와 여의도 인도 위의 자전거도로를 달리다보니 저 멀리 여의도공원이 보이네요.


공원 안을 달리고 있는데 직박구리 한 마리가 눈에 띕니다. 흔하디 흔하지만 이렇게 가까이서 찍은 건 처음입니다. 곤줄박이와 달리 큰아이가 다가가니 재빠르게 옆 가지로 옮겨갑니다.

여의도공원의 잘 조성된 자전거길은 샛강생태공원으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도심이지만 잘 조성된 생태공원인데요. (조성형인지 보존형인지는 잘 모르겠네요.)

작년 6월 중순 경 이곳에 왔을 땐 오디가 한창이었는데요. 이번엔 너무 이르게 왔는지 아직 오디가 익지 않았더라구요. 아쉬운 마음에 잠시 쉬면서 구경하고는 다시 공원을 빠져나와 국회의사당으로 향합니다. 가까이서 보는 국회의사당은 엄마인 저도 처음인데요. 마침 행사가 있는지 의사당 안이 버글버글합니다.


문득 12.3 내란을 국회에서 막지 못했다면 지금처럼 자유로이 시민들이 국회 안을 돌아다닐 수 있었을까. 싶은 생각이 들더라구요.

깔깔거리며 뛰어노는 아이들 사이로 불과 몇 달 전 한밤중의 대치상황이 오버랩되는 듯했습니다.

영화 변호인에서 들은 무시무시한 음악도 들리는 것 같았구요.


다시 시민의 지킴이로 역할을 다하는 중인 국회 앞 경찰들을 바라보며 결국 경찰이나 군인이 국민 지킴이로서의 본연의 역할을 잘 하려면 국민도 그들이 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감시와 격려를 아끼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피로써 만들어진 민주주의를 잘 지켜나가야겠다는 다짐도 함께 말이죠.


바람이 꽤 거세지고 하늘은 금방이라도 비를 쏟아낼 듯 잔뜩 찌뿌려집니다.

바람을 맞으며 갑자기 추워진 날씨에 덜덜 떨며 공원 앞 편의점에서 컵라면 한 그릇씩 먹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한 두 방울씩 떨어지던 빗방울은 집으로 아슬아슬 세이프 함과 동시에 쏟아지기 시작합니다.


휴...자전거 타고 돌아왔으면 어땠을지. 아찔하면서도, 세 시간 여의 라이딩을 무사히 마치고 비 오기 직전 집에 도착한 게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비 오기 직전까지 밖에서 알차게 시간을 보낸 게 뿌듯하기도 하고 말이죠.

(아들만 둘이다보니 두 아드님의 넘치는 에너지 발산을 위해 도저히 못 나갈 정도의 폭우가 쏟아지지 않는 한, 집에 있기보다 밖으로 도는 게 익숙한 저희 가족입니다.)

라이딩을 마치고 돌아온 아이들이 아직 에너지를 덜 발산하셨는지 바둑판을 펼칩니다.


늘 형님의 일방적인 승리로 끝나긴 하지만 바둑 가르쳐주는 형이 있어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무뚝뚝한 형님이지만 바둑을 둘 때 만큼은 친절하게 가르쳐주면서 두기도 하구요. 작은 아이 스스로 부지런히 바둑 서적도 탐독하다보니, 방과후 바둑반에서는 대적할 사람이 많지 않거든요. 바둑 입문 2개월차 치고는 꽤 괜찮은 솜씨라 유심히 지켜보고 있답니다.


바둑이 끝나고 큰 아이가 20여분을 치대며 쫄깃하게(!) 반죽해서 만들어내는 난과 커리로 저녁을 먹고 나니 오늘도 사춘기 아이와의 평화로운 하루가 또 흘러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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