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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llo Earth Mar 03. 2022

도서관에 갑니다.

꿈꾸던일이 일상이 되었을 때

아이는 도서관을 싫어했다. 정확히는 도서관의 조용히 침묵해야 하는 무거운 분위기를 못 참아했던 것 같다. 구청사 안에 설치된 북까페에는 그나마 갔는데, 코로나로 그 마저도 못 가게 되었고 그 뒤론 도서관에 가는 걸 끔찍이도 싫어했다. 아마 쉴 새 없이 킁 킁 대는 아이의 틱(?) 때문에 엄마에게 몇 번 지적받은 이후인 것 같기도 하다. 책을 좋아하고 난 후에도 엄마에게 도서관 가면 00 책 빌려달라는 말은 해도 도서관에 가자는 말을 먼저 꺼낸 적은 없었다. 



9월을 맞은 어느 날, 둘째를 하원 시키러 나가자니 큰 아이가 자기도 가겠단다. 학교 온라인 수업은 끝났는데 할 일이 없어 심심하단다.(원래 큰 아이는 둘째를 하원 시킬 때 따라나서는 걸 죽기보다 싫어한다. 둘째에 대한 미움도 있을 테고, 그 시간 동안 집에서 엄마 몰래 즐길 수 있는 무언가도 있었지 않았을까 하는 추측도 있다.)

그럼 동생 픽업하고 어디 갈까 물으니 "도서관"이라고 짧게 말하는 큰 아이(헐, 이건 또 무슨 기적입니까...)를 태우고 작은 아이를 픽업하고는 동네의 구립도서관으로 향했다. 

예전엔 2시간씩 도서관 문이 닫힐 때까지도 책을 보던 작은 아이는 4단계로 책 읽어주기가 금지된 이후 도서관을 싫어라 했다. 대놓고 싫어하는 아이는 아니지만 들어갔다가 몇 권 보고는 엄마 이제 가자며 손을 내미는 아이. 

해서 속으로는 얼마나 있으려나 걱정 한 가득 안고 구립도서관에 도착해서 아이들을 풀어놓았다. 큰 아이는 잠시 예전에 집에서 봤던 책들을 뒤적이더니 책 고르기는 익숙하지 않은 듯 결국 학습만화책을 꺼내 들었고, 작은 아이는 유아방으로 풀어두니 읽어달라는 말도 없이 익숙하게 몇 권 골라 읽고는 나가잔다. 허허... 억지로 억지로 재미있을 법한 책을 골라줘도 영 흥미 없는 작은 아이. 큰 아이의 독서에 신경 쓰는 동안 작은 아이는 책에서 멀어지고 있었던 것. 형아 책을 살 때마다 작은 아이 것만 빠뜨리기 미안스러워 숨은 그림 찾기 책을 사주곤 했더랬는데 어느새 이야기 책보다 숨은 그림 찾기 책이 더 익숙해져 버린 듯했다.  큰 아이에게 책 읽고 있으라며 우리는 바로 앞 놀이터에서 놀고 있겠다 하니 그러라 해서 작은 아이를 데리고 나와 마음껏 놀도록 했다. 8개월 여, 집에서도 클래식이나 팝송 음악을 틀어놓고 카페처럼 식탁에 앉아 조용히 몇 시간씩 책 읽는 것이 일상이 된 큰 아이는 이제 도서관에서 조용히 책 보는 게 아무렇지도 않은 듯했다. 

결국 2시간을 꼬박 마음에 드는 책을 골라 읽고 나온 첫째와 둘째는 같이 놀이터에서 뛰어놀기 시작했다. 여름방학 내내 학습은 젖혀두고 작은아이와 사이좋게 지낼 수 있게만 신경 썼던 덕에 큰 아이와 작은 아이는 여느 형제처럼 같이 놀게 되었는데(그 전에는 6살 터울인 두 형제 사이에 대화도 없었거니와 같이 노는 일도 전혀 없었다. 전혀!!) 요즘 학기 시작과 함께 다시 벌어지기 시작한 큰 아이와 작은 아이의 사이가 다시 예전으로 돌아갈까 노심초사해하고 있었던 나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여름방학 때의 화려했던 형제 관계로 돌아갈 수도 있겠구나.' 



휴직의 두 번째 목표, 동생과의 관계 회복.

책으로 마음을 치유하던 큰 아이가 좀처럼 작은아이에게는 마음을 열지 않아 조급해하던 나에게 다시 희망이 보이기 시작했다. 

도서관이 그 매개가 될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감과 함께 늘 꿈꾸던 그 일이 현실이 되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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