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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lum Jul 04. 2021

잘 먹어야, 울어도 예쁘지


일단 먹고 살자

 



 내가 스스로를 구원하기 위해 가장 먼저 했던 일은 ‘나를 위해 요리하기’였다. 모든걸 포기하고 싶은데 그럴수가 없었을때, 오늘의 나를 살려서 내일의 나를 만나기위해 나를 조금씩 달래주기 시작했다. 가장 근본적인 질문을 했다. 내일을 만나고 싶지 않은 나에게 물었다.



 “ 내일이 오면 넌 뭘 하고싶어?



 그때의 나는 딱히 하고 싶은것도 없었고 현실적으로 할수 있는것들도 없었다. 가장 실현 가능한 답은 ‘맛있는것먹기’ 였다. 아무리 지갑에 구멍이 났다고 한들 당장 굶어 죽을 처지는 아니었기에 마트로 향했다. 그때도 채식을 지향하는 식단을 하고 있었고 나는 과일을 아주 좋아한다. 혼자 사는 1인 가구에게 사치라며 잘 사지 않았던 과일들을 샀다. 하얀 백도 일때도 있었고, 수박이나 메론일때도 있었다. 가끔은 파인애플을 통채로 사오기도 했다. 좋아하는 과일과 식재료로 냉장고를 가득 채웠다. 마음의 구멍이 조금은 채워진것같았다. 그렇게 냉장고를 채우고 침대에 누워서 스스로에게 주문을 건다.



 “ 냉장고에 니가 좋아하는 과일이 잔뜩있어. 지금 눈을 감고 뜨면 내일을 만나고 내일의 너는 그 과일을 먹을수 있어. 그러니까 잘자자”



 그리고는 어렵게 잠을 청했다. 뒤척이더라도 어쨌든 잠은 잤다. 그렇게 아침이 오면 사두었던 식재료로 간단하게 아침을 해먹고 간식이나 점심으로 과일을 먹었다. 반복하다 보니 깨달았다. 나는 나를 위한 식탁을 차린적이 없다는것을. 어릴적부터 요리 하는걸 좋아해서 참 많이도 했었는데 주로 연애중일때가 가장 많았고 친구나 가족을 위할때도 있었다. 그러고 보니 내가 먹고 싶은, 나를 위한 요리는 해본적이 없었다. 갑자기 묘한 짜증이 밀려왔다. 특히 연애를 위해서 였다는 지점에서 진한 박탈감과 회의감을 느꼈다.



 “ 아니, 끝나면 다신 보지도 않을 놈들 한테 뭘 그리 해다 바친거야”



 속으로 지나간 인연과 그때의 나를 욕하며 정말로 먹고,자고,사는것에만 집중하기 시작했다.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삶의 요건, 그것이 가장 시급했다. 매일밤 나에게 물었다. 너 내일 뭐가 먹고싶어? 라고 물으면 채소가 듬뿍 들어간 샌드위치 일때도 있었고, 일본식 전골이었을때도 있었다. 가끔은 인도식커리나 태국음식을 말하기도 했다. 답을 듣고 나면 나는 “그래. 내일 우리 그거 먹자 그러니까 우리 내일을 기다리자” 라며 나를 달랬다. 이 방법은 유치하고 단순하지만 꽤나 효과가 있었다. 그렇게 하루하루들이 모여서 2년을 버텨냈고 지금은 일상이 되었다.






 어느날 일을 하다가 심리학을 전공하는 선생님을 고객으로 만난 적이 있다. 우리는 가벼운 대화로 시작해서 어느덧 서로의 이런저런 사는이야기까지 나누게 되었다.



 “ 저는 요즘 저를 위해 식탁을 차려요. 생각해보니 그랬던 적이 없더라고요.”



 내 이야기를 들은 선생님의 대답은 너무 좋았겠다며 정말 좋은 시간을 보냈다고 나를 칭찬했다. 처음보는 반응이었다. 그녀는 나의 발버둥을 유난스러움이나 안쓰러움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나의 이야기를 듣고 생각해보니 자신은 40년 가까이 그래본적이 없다고 했다. 부모님과 살다가 서른 즈음엔 결혼을 했고 후엔 남편과 아이를 위한 요리만을 했다고 나에게 너무 잘하고 있다고 칭찬해주었다. 그리고 보통의 엄마 라는 존재들은 아마 그럴것이라고.



 그 이야기를 듣고 나니 살려고 했던 발버둥이 갑자기 꽤나 가치 있는 일이라고 느껴졌다. 나에게는 최후의 방법중 하나 였지만 누군가에게는 누려본 적 없는 사치였다. 건강한 음식과 간식들로 냉장고는 항상 가득차 있었고, 덕분에 가벼운 몸과 밝은 안색을 가지게 되었다. 그 대화 이후로 아버지의 투병 내내 날씬하고 건강해보인다며 칭찬을 들으면 잘먹고 잘 사는중이라며 웃어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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