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수천 가지 페르소나
‘일과 나를 동일시하지 말자’ 몇 년 동안의 길고 깊은 암흑기에서 나를 정신 승리하게 도와준 최고의 이론이다. 일이 곧 나인 경험은 직업인들이 겪은 혹은 겪고 있을 내용이다. 일을 잘해야만 내가 쓸모 있는 사람인 것 같고 일이 안되면 안 된 것만큼 나의 존재의 가치는 하락한다. 나도 나를 판단하는 데에 일이 그 지표가 되고 대부분의 사람들도 누군가를 판단할 때 일과 직업을 지표로 삼는다. 누가 봐도 공부를 잘해야 할 수 있는 직업을 가졌거나 누군가가 일이 잘돼서 유명해졌거나 하면 이면에 대해서 생각하기보단 우선 가산점을 부여하고 본다. 당연한 일이고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타인의 과정을 궁금해하는 사람은 많지 않고 눈에 보이는 결과로 우리는 타인을 판단한다. 여기서 나는 어쩔 수 없는 제3자의 눈은 그대로 두고 어쩔 수 있는 나의 눈을 바꾸기 시작했다. 왜냐면 그때 나의 일이 잘 안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새로운 관점인 듯 궤변 하지만 실은 생존하기 위해 그럴싸한 핑계를 찾았을 수도 있다. 하루에 2개씩 스케줄을 소화하고 12시간, 20시간도 일을 했던 20대의 막바지에서 갑자기 내가 세상에서 삭제된 것처럼 일이 줄었다. 집에는 큰 병을 앓고 있는 가족이 있고 상당히 진심이었던 연애도 끝나고 좁은 집으로 이사를 하고 그냥 운대가 좋지 않았다고 하기엔 안팎으로 모든 게 너무 시끄러웠다. “ 아 이런 게 삼재인가” 농담처럼 별일 아닌 듯 중얼거렸지만 속에서는 천불이 났다. 미래에 대한 불안감에 일을 더 벌려 이번엔 유튜브를 시작했고 결과는 처참했다. 본업 스케줄이 없을 때 촬영과 편집에만 매달려 틈틈이 꼬박 주 4일씩은 투자했지만 눈에 보이는 결과를 얻기엔 역부족이었다. 흥미를 잃은 채 기계적으로 하다 보니 당연히 스트레스만 쌓여갔고 아이디어도 고갈이 되었다. 처음 겪는 실패는 아니었더라도 자존심이 너무 상했다.
다 포기하고 어딘가에 소속이 되어야 하나 진지한 고민이 시작되었다. 프리랜서로 일을 한지 햇수로 7년 차고 경력은 10년이 되었다. 누군가는 한심하다고 이야기할 수 있다. 그 경력이나 되었는데 안정적인 수입구조가 없냐고 나도 그것이 나의 가장 큰 약점이라고 생각해 알게 모르게 피해의식과 자기혐오가 심했었다. 심지어 자존심까지 세다 보니 진한 패배감은 말로 다 할 수가 없었다. 학원에서 학교에서 항상 칭찬만을 받았었고 많은 교수님들이 나의 재능을 칭찬했다. 나는 꿈이 원대한 사람이었고 내가 뭐가 될 놈이라고도 생각했었다.
하지만 실력과 사회생활은 별개였고 운과 판단마저 역시나 별개의 이야기였다. 빈말을 못하는 성격은 선배들의 비위를 맞추기엔 역부족이었고 스물네 살엔 잘못된 판단으로 사기꾼과 동업을 해 당시 큰 금액의 빚을 져 갚는 데에만 수년이 걸렸다. 투잡을 뛰기도 하면서 버텨냈고 어느 순간 다행히 프리랜서로서 일이 그럭저럭 들어오기 시작해서 이십 대의 중후반에는 여러 현장을 다니며 여러 경험을 하고 먹고사는데 큰 무리가 없는 정도는 되었지만 통장잔고도 에너지도 남은 것이 있을 리가 없었다. 이젠 더 이상 도망갈 곳이 없어진 나는 자아를 분열시켰다.
" 일이 망했다고 내가 망한 건 아니지 "
나를 구원해줄 건 나밖에 없다고 느낀 어느 날, 그 막다른 곳에서 나의 가능성을 다시 보기 시작했다. 나는 나의 최악의 모습과 나의 바닥을 보았다. 일이 잘될 때의 나도 보았고 여러 가지 일을 해내는 나도 보았다. 새로운 일을 도전하고 모르면 알려고 노력하는 나를 나는 안다. 더 깊은 나락이 있었지만 동업했었던 사기꾼을 떠올리며 나는 나의 바닥이 여기까지라고 정하기로 했다. 그리고는 일이 좀 안돼도 쫄지말자고 다짐했다. 누군가가 어떻게 말을 하던 나의 노력은 나만 안다. 나 자신에게 떳떳할 만큼의 노력, 혼자의 힘으로 해결해왔던 일들, 나만 알고 나만 알면 된다. 나를 내가 알아주기 시작하며 천천히 일과 나를 분리하는 연습을 시작했다.
일을 열심히 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일이 주어졌을 땐 최선을 다해 일을 하고 더 잘하려고 고민한다. 그리고 개인적인 시간도 최선을 다해하고 싶어 하는 일을 한다. 물론 프리랜서기 때문에 그 비율을 맞추는 것 또한 나의 일이지만, 모든 것들을 분리해서 대하다 보니 오히려 모든 것들이 나다워졌다. 일을 할 때는 내 경력에 맞게 전문적으로 일을 하려고 노력하고, 쉬어도 되는 날은 일할 땐 입지 않는 불편하고 예쁜 옷을 차려입고 전시회에 간다. 춤을 추고 싶으면 연습실을 빌려 춤을 추고, 운동을 할 때는 더 단단한 몸을 가지기 위해 노력한다. 전에는 일과 한 몸이 되어버린 나에게 눈치가 보여 일을 하지 않는 시간은 항상 마음이 편하지 않았지만 지금은 일을 조금 덜해도 좋아하거나 흥미가 생기는 것들을 열심히 하며 나의 새로운 가능성에 대해 발견한다. 이곳에 글을 쓸 때도 본업의 이름은 배제하고 가능한 프리랜서라고만 표현하는 것도 같은 이치이다. 나에게 매 순간 가면을 바꿔 쓴다는 건 매 순간 충실하게 되는 일이 된 것 같다.
사람은 누구나 보이지 않는 수천 개의 가면을 가지고 있다. 나의 그 각각의 페르소나를 충실히 대하고 먼지가 쌓이지 않게 갈고닦았더니 오히려 모든 페르소나들이 셀프와 가까워진 느낌이다. 가끔은 요즘 유행하는 일명 '부캐릭터'를 여러 개 가진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하고 그 부캐릭터들의 성장이 어느 한 곳으로 치우치지 않는 것 같기도 하는 나르시시즘적인 기분도 든다. 결과적으로 조금 더 준비되어 있고 여유 있는 사람이 되었고 가끔은 기대도 한다. 지금은 삶을 더 다채롭게만 도와주는 나의 여러 가지 부캐릭터 중 하나가 갑자기 극적인 레벨업을 해서 본업을 뛰어넘어 나를 먹여 살릴 수도 있다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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