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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lum Jul 16. 2021

넘겨짚다가 넘어져요



남의 노력 , 그 쉬운 것은 말이야



 “ 원래 말랐지?” 근 몇 년간 내가 최악의 워딩으로 꼽는 대사 중 하나다. 이전에는 “술 잘 먹죠?” 와 “에이 안 어울리게 왜 그래” 가 있었다. 셋 다 우열을 가릴 수 없게 싫은 문장들이다. 원래 날씬하고 살이 안 찌는 체질이냐는 말은 이젠 “하루에 운동 두 시간씩 해요”라고 대충 디펜스 한다. 다만 그들은 한마디 나는 백 마디를 해야 하는 게 가끔은 지겹긴 하다. 이 말이 처음부터 싫었던 건 아니다. 당연히 칭찬으로 들을 수 있은 이야기이기 때문에 처음엔 별생각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4년간 꾸준한 식단과 운동을 하면서 여러 유형의 사람들에게 비슷한 이야기를 듣다 보니 꼭 저렇게 ‘원래’라는 말을 붙이는 사람들은 어딘가 내가 불편해할 만한 사람인 것을 깨달았다. 의도 없는 칭찬을 하는 사람들은 말끝에 물음표를 붙이지 않는다.



 아무 생각이 없는 유형이 가장 무난하고 관리를 하는 것이냐고 묻는 사람이 베스트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원래라는 단어를 붙여서 묻는 사람 중 순수한

질문을 하는 사람은 없었다. 보통은 내가 원래 그렇기를 바란다. 그러니까 내가 원래 날씬하기를, 원래 신체적인 조건이 타고났기를 바란다. 넘겨짚는 걸 좋아하고 아는척하는 걸 좋아하는 사람들이 보통 그런다. “거봐, 딱 보면 알지. 그럴 줄 알았다니까”라는 대사를 하기 위해 원래를 사용하는 것이다. 그런 사람들은 안타깝지만 내가 아니라고 이야기해도 듣지 않는다. “아니, 원래 엄청 뚱뚱하진 않았을 거잖아요” 라며 자신의 넘겨짚음이 사실이 되기 위해 끼워 맞춘다. 초면인 사람은 잘 모르니까 백번양보해 그럴 수 있다고 쳐도 아는 사람도 어느 순간에는 마찬가지가 되었다. 이들은 다른 유형이었다.





 “나는 노력하기 싫으니 너는 원래 그런 사람이여야 해. 뭐든 타고났다고 말해. 내가 자괴감 들지 않게”



 를 돌려서 돌려서 표현했다. 사람들과 같이 있는 자리에서, 특히 남편이나 남자 친구가 있으니 더했다. 그들이 겉치레 칭찬이라도 하기라도 하면 득달같이 “쟤는 원래 저런 거 하는 애고” “쟤는 원래 저래” 라며 10년이나 봐온 나를 원래 타고난 운동 신동이나 마치 직업이 요가강사인 것처럼 이야기했다. 말을 꺼낸 남편이나 남자 친구가 원망스러워지고 둘 다 제발 입을 다물어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허공을 본다. 어차피 그들은 나의 한의사가 표현하길 반에서 공부를 제일 열심히 하지만 꼴등인 친구 같은 근질을 가진 것은 관심이 없다. 가만 생각해보면 근래에는 내가 운동을 열심히 해서 이슈가 몸으로 쏠렸지만 그 전에는 얼굴이었다. 내가 그렇게 스트레스받았던 파트의 화두만 바뀌었을 뿐 결국 같은 얘기 라는걸 알았다.



 나는 무표정으로 있으면 냉한 인상이다. 얼굴은 마음의 거울이라고 그늘진걸 티 내고 싶지 않아 운동을 시작하면서부터 표정 연습도 많이 했다. 예쁘고 안 예쁘고 웃고 안 웃고의 문제가 아니다. 사람에게서 느껴지는 기운의 이야기이다. 뾰족한 마음의 그늘을 감추기 위해 더 자주 웃었다. 눈물이 날 것 같으면 웃고 기분이 상해도 인상을 쓰기보단 실없는 농담을 하기 시작했다. 마음에 화가 쌓이면 운동을 더 했다. 얼굴도 근육이기 때문에 예쁜 근육을 연습하면 예뻐진다. 덕분에 전보다는 인상이 많이 좋아졌지만 좀 더 뾰족하고 메이크업을 더 진하게 하고 다녔던 때에는 “술 잘 먹죠?”를 정말 질리게도 들었다. 나는 흔히 말해 ‘알코올 쓰레기’다. 뭐든 한잔만 먹어도 얼굴이 빨개진다. 사실과 달라 억울한 것도 있지만 그냥 외모에 대해 아무런 언급과 평가를 하지 않길 바랬다. 직업이나 생김새 옷차림 등으로 받는 평가는 어차피 전부 내가 아니기 때문이다.



 귀여운 것을 좋아하는 나에게 의외라며 이상한 표정을 짓거나 막말을 해놓고 서운한티를 내면 안 어울리게 왜 그러냐고 한다던가 모르면 알 때까지 설명서를 읽고 안되면 될 때까지 다리를 찢는 나에게는 관심이 없는 모든 사람들은 다 같은 부류의 사람들이었고 모두에게 그런 식으로 행동하는 사람들이었다. 겉모습을 보고 판단하고 남의 노력에는 관심이 없는 사람들. 한참 티브이에서 유행했던 오디션 프로에 열심히 연습하는 연습생들을 방구석에 앉아 멋대로 가능성을 평가하고 운동 유튜버를 보며 운동을 해서 그나마 저 정도네 하며 비웃는다. 뭐 하나라도 혼을 불태워 열심히 해본 적 없는 사람들이 남의 노력은 뭐가 그렇게 우습고 쉬운지 모르겠다.





 안 해봐서, 몰라서, 생판 남이라서, 안 하고 싶은가 보지 라고 이해하기엔 생각보다 그들이 뱉는 말들은 꽤나 폭력적이다. 그 폭력성마저 모르는 무지함을 갖춘 사람들을 이제는 가까이 두지 않는다. 덕분에 나도 가끔 오만을 억누른다. 어딘가 오만한 생각이 머리를 들면 남이 하는 일이 쉬워 보이면 그 일이 쉬운 게 아니라 그 사람이 잘하는 것이라는 이야기를 떠올리며 생각을 멈춘다. 만나고 싶은 사람들은 이제 4인 이상 집합 금지에도 해당하지 않는 친구의 숫자지만 마음속의 인구밀도가 낮아져서 마음이 쾌적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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