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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월 Jan 02. 2023

꼬인 스텝

질문의 물음에 걸려

친구와의 술자리에 문득 그의 딸이 동참을 원한다는 문자가 왔다. 여지가 있나. 승낙이다.

이십 대 초의 젊은이들의 생각이나 고민들을 물어볼 참이었다. 나름 똘똘하고 자기주장이 강한 그의 딸은 어릴 때 가끔씩 봐온 터라 어떻게 성장했을까 궁금하기도 했다. 또는 나는 그에게 어떤 얘기를 하고, 아빠 친구로서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얘기할까 등등으로 관심과 궁금증이 일었다. 


삼겹살이 구워지고, 소주가 한두 잔 오간다. 친구 딸은 이제 대학 4학년이 되고, 졸업 후 대충 몇 가지의 가능성 있는 진로를 얘기하기도 했다. 그런데 그녀와의 대화가 좀 겉도는 느낌이었다. 주변 친구나 동료 얘기 또는 대체적인 분위기 정도를 언급하는 선에서 멈춘다. 뭐 그 정도쯤이라는 언급에서 그친다. 


그래서 너는? 그녀는 고개를 갸우뚱거린다. 구체적으로 뭘 하겠느냐는 질문이 아니라 어떻게 살고 싶으냐는 질문이라고 다시 물었다. 고기가 맛있단다. 나는 술잔을 비우고 다시 바라봤다. 무슨 면접 보는 것 같은 질문이냐란다.


20대 초반에 혼자 쓴 습작 단편이 생각났다. 제목이 '키와 노'. 어려서부터 이런 부질없는 생각들이 난 무척이나 중요하게 생각됐다. 내용은 대충 이렇다. 양손으로 노를 저어 바다를 건너는데, 손에서 미끄러져 그만 왼쪽 노를 물에 빠뜨려버리 말았다. 남은 오른쪽 노를 양손으로 잡고 열심히 저어갔다. 바람이 강하게 불어 내가 아무리 노를 열심히 저어도 앞으로 나아가지 않는다고 느껴졌다. 좌우 번갈아가며 노를 저어도 균형 있게 노를 저을 수도 없었지만, 그렇게 열심히 땀나게 노를 저어도 자칫 큰 원을 그리며 제자리를 맴도는 과정일 수 있었다. 바람은 불고, 파도는 높고, 점점 어두워져 앞이 보이지 않는 먼 길을 가야 하는데 가만 키만 잡고 있자니 답답하고, 그렇다고 열심히 노를 저어도 그게 앞쪽인지에 대한 확신이 없다면, 나는 과연 뭘 어쩔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었다. 하나 남은 노를 키 삼아 방향이라도 놓치지 않으려는 것이 나름의 결론이었다.


이런 얘기를 하며 너는 어떻게 살고 싶으며, 어디를 향해 삶을 살고 싶은지 묻는 물음이었다. 열심히 술과 고기를 먹던 친구 딸은 허기가 가셨는지 의자 등에 몸을 잔뜩 기대고 내게 묻는다. 아저씨는 키를 잘 잡고 계시냐고. 그러니 내가 네게 너의 키를 묻는 것 아니겠냐고 하니, 그럼 아저씨의 키를 먼저 말해달란다. 왜냐고 물으니, 본인에 참고 삼겠다는 것이다. 얼릉~요라며 애교까지 부린다.


들으러 갔다가 오히려 내 말이 더 많았으니, 술값에 주머니까지 털린 기분이다. 헤어지는 길에 친구 딸은 다음에 자신의 키를 구해오겠단다. 이젠 미끼까지 던지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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