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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고 긴 육아 휴직의 시작 1

by 키다리쌤

이렇게 오랜 휴직을 하게 될 줄 몰랐다. 그리고 이렇게 많은 아이들을 낳게 될 줄도 몰랐다.


나의 운명이 이끄는 대로

나의 삶을 충실하게 살았을 뿐!

10년 전의 그날도 지금처럼 선선한 봄이었다.


첫째가 30개월 넘어 어린이집에 보내고

친정에 들어가 학교에 복직했다.

직장이 먼 남편과 주말부부로 지내고

친정어머니와 언니, 동생의 도움을 받으면

복직이 가능할 것 같았다.


그때만 해도 경력 10년쯤 된 교사이기에

학교일이 어느 정도 주어질 것이라 예상은 했었다.

그 당시 나에게 주어진 업무는 복지 업무!

그때도 첫째를 낳고 2년 정도 쉬고

복직을 해서 일을 한다는 것이 좋았다.

그리고 2학년 아이들도 너무 예뻤다.


그러나 복병은 복지업무!

동사무소에서 자료를 받아 학교에서 복지가 필요한 아이들을 골라내어 방과 후 자유수강권 등 형편이 어려운 아이들을 도와주는 일이었다. 이런 일이 도입되는 처음 시기여서 동사무소에서 넘어오는 자료는 졸업생이 재학생 6학년으로 기록되어 있는 등 믿을 수가 없었다. 일일이 전화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그때 느낀 것이지만 그 당시만 해도 집안 형편이 어려운 아이들은 가정통신문을 아이 편에 보내도 학교로 돌아오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할아버지 혹은 할머니 손에서 자라는 아이들도 많았고 부모님들도 일하시느라 바쁘시고 그로 인해 아이에게 관심을 가질 시간이 없으리라고 예상했었다. 어쨌거나 직접 전화할 수밖에 없었다. 100명이 넘는 아이들을 어떻게 일일이 전화할까? 업무로 인해 고민하던 중에 둘째가 생겼다는 것을 알았다.


오전에 출근해서 수업하고 복지 업무 하느라 바쁘고 집에 돌아오면 하루 종일 엄마를 기다리는 첫째를 돌봐야 했다. 첫째가 다니는 어린이집은 아이들 거의 대부분 4시에 하원했다. 우리집 첫째는 5시부터 청소하시는 선생님을 피해 돌아다니다가 엄마가 올 때쯤이면 어김없이 쇠창살로 된 창문에 매달려 기다리고 있었다. 매번 퇴근해서 6시쯤 헐레벌떡 뛰어올 때마다 '우리 아이는 감옥에 갇힌 건가'이런 생각이 들었다. 마지막으로 홀로 남아 있는 아이를 데리고 올 때마다 딱 한 시간만 그저 딱 한 시간만! 일찍 오면 좋겠다고 생각했었다.


세월이 10년이나 흘러 요새는 만 5세 이하 아동을 양육하는 교사는 2시간 일찍 퇴근할 수 있는 제도가 생겼다. '양육하는 엄마들을 위한 제도도 진화하는구나! 세월 좋아졌구나!' 최근에 복직하면서 3시 이전에 퇴근하는 어린아이 엄마들을 보면서 실감 나게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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