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든 복지 업무에 둘째 임신에 발을 동동 구르며 일하던 어느 날 교감선생님을 찾아갔다.
힘들어서 더 이상 이 일을 못하겠다고 게다가 둘째까지 임신했다고 다른 사람과 업무를 좀 나누게 해달라고 부탁드렸다.
그러자 교감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너만 힘드냐?"
할 말 많지만 하지 못하고 돌아섰다.
그리고 며칠이 지났을까? 학부모 상담 기간이어서 더더군다나 그 시절은 저녁까지 이어진 상담에 학교에서 저녁을 먹고 상담하던 때였다. 오전에 수업하고 저녁 상담을 하기 위해 잠깐 시간 나는 틈을 타서 산부인과에 검진을 받으러 갔다. 한참을 보시던 의사 선생님께서 유산이라고 하셨다.
어떻게 학교로 돌아갔는지 모르겠다. 학교로 돌아가 동학년 선생님들과 저녁밥을 먹는데 나도 모르게 뜨거운 눈물이 흘러나왔다. 도저히 참을 수 없는 눈물이었다. 선생님들이 왜 우느냐고 물으셨다.
"산부인과에서 둘째 아이 유산했다고 하셨어요."
선생님들은 내 이야기를 듣자마자 내 가방을 챙기셨다. 그리고 집에 가라고 하셨다.
나이 지긋한 남자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선생님도 사람이야. 우리가 저녁 상담 모두 전화해서 취소할 테니, 집에 가세요."
차분하지만 단호하게 말씀하셨다.
뱃속의 아이를 유산하면서 눈물이 멈추지 않았는데 그 이유는 둘째 아기를 위해서 해준 게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이었다. 오전에는 수업에 오후에는 업무에 앉아서 쉬지도 못하고 헐레벌떡 감옥에서 갇힌 듯한 첫째를 꺼내 돌보느라 태아에게 말을 걸거나 아기를 위해 산모인 엄마가 쉴 틈이 없었던 것이다.
아기에게 해준 것이 없어서! 지켜주지 못해서! 너무나 미안했다.
그렇게 나는 뱃속의 아기를 보내고 기나긴 육아 휴직을 시작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때는 육아 휴직이 이렇게 길어질 줄은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