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네바에 볼 일이 있어서 간 김에 보타닉 가든에 갔어요. 가는 길은 구글로 찾았지요. 저로 말할 것 같으면 길치 중에 길치로 정말 길을 잘 못 찾는데 요새는 구글지도로 인해 세상 편해졌어요. 버스와 기차 타는 곳과 언제 오는지 정보가 상세히 소개되어 있으니까요.
이제 스위스도 한여름이라 제법 더워요. 삼둥이들과 도란도란 이야기 나누며 식물 온실로 갔어요. 초록초록한 식물들과 꽃이 반기는데 아이들은 무섭다고 하네요. 습기 차고 아무래도 공짜이다 보니 완벽하게 잘 가꾸어져 있진 않았어요. 식물 근처에 조그마한 해골바가지 표시도 있고 말이죠. 근처에 아무도 없어서 물어볼 수도 없었고요. 잎에 가시가 있으니 찔리면 아프다? 혹은 잎에 독이 있다? 혹은 만지지 말라는 경고의 표시가 아닐까 생각했어요. 그래도 나이 들수록 엄마인 저는 초록초록한 풀들이 좋은데 말이죠. 밖에도 볼 것이 많으니 밖을 좀 더 살펴보기로 했어요.
밖에는 조그만 연못 안에 연잎이 무성하게 올라와 있어요. 아참 아까 온실에 보았던 잎 중에 희한한 잎이 있었어요.(오른쪽 아래) 빨간색과 노란색이 섞여 새부리 모양을 한 이 잎은 과연 꽃일까? 잎일까? 아이들과 한참 토론을 했지요. 유럽에서 식물원에 오면 한국에서 흔히 볼 수 없는 색다른 식물들을 볼 수 있어서 좋아요.
걷다 보니 커다랗다기보다는 굵은 나무들이 많아서 더운 여름날 시원하고 아름다운 산책로 그늘을 만들었어요. 나무를 심은지 오래되었는지 정말이지 꽤 굵어서 삼둥이들과 함께 팔을 벌려 둘레를 재어보았어요. 겨우 간신히 서로가 손을 붙들고 설 수 있었지요. 양팔 벌린 길이가 그 사람 키와 비슷하다고 하니 네 사람의 키를 대략 더해 보아도 6m가 족히 넘어요. 얼마나 굵은지 상상이 되시지요.
굵은 나무 바로 앞에 한쪽 구석이 붉은 꽃으로 만발한 온실도 있었어요. 실제로 모델인지 아닌지 모르겠지만 늘씬한 언니 둘이 하이힐을 신고 꽃 앞에서 사진기사로부터 사진 찍히고 있었어요. 바로 그 자리에서 아이들 사진도 찍어 보았죠. 사진 명소인 것 같았어요.
가는 길에 박물관이나 하나 보자고 샛길로 빠졌어요. 구글 지도로 자신감이 붙어 있었는데 결국 가려던 박물관은 못 찾았어요. 대신 호수에 둘러앉아 돌 던지기를 한참 했어요. 아이들은 그새 물 위에 돌이 몇 번 튕기는지 내기를 하네요. 날씨는 끝내주게 좋아요.
그러나 이때부터 핸드폰 배터리가 거의 꺼지기 시작했어요. 구글로 집에 가는 길을 찾는데 큰일이 났다며 해지기 전에 가자며 부랴부랴 돌아가기로 했죠. 그러나 그 사이 핸드폰이 꺼지고 길을 알 수 없는 우리는 결국 왔던 길을 되짚어 다시 식물원으로 갔어요. 식물원에 동물들이 있다고 구글에서 찾았던 것 같은데 온 김에 다시 이정표를 확인해 보니 동물들이 있었어요. 아까 벤치에 앉아 쉬시던 UN에 근무하는 명찰을 갖고 계신 분께 동물을 어디서 볼 수 있냐고 하니 동물원을 찾아가라고 하셨거든요. 포기하고 있었는데 운 좋게 동물도 볼 수 있었어요.
사슴과 플라밍고를 멍하니 바라보며 가져왔던 과자며 과일은 몽땅 먹고 집으로 발을 돌렸어요. 길치인 엄마 대신 길도 척척 찾아주는 아이들이 신기한 요즘이에요. 여태까지 아이들을 늘 도와주는 입장이었는데요. 이제는 아이들이 길을 더 잘 찾아 주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