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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 벙커 박물관

스위스 옆 독일 박물관

by 키다리쌤

독일 베를린에 있는 스토리 벙커 박불관에 다녀왔어요. 이 벙커는 핵공격을 대비하기 위해 만들어졌으며, 약 3600명의 사람을 수용할 수 있다고 해요. (히틀러와 그의 아내 그리고 측근의 가족들이 죽었던 곳은 근처 다른 벙커라고 하네요.) 지하로 쑥 들러가서 가기 전에는 좀 무서울 것 같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직접 가보니 생각보다 괜찮았어요. 사실 베를린에 오기 전 지인이 아이들과 볼만하다고 추천한 바 있어서 기왕 온 김에 다녀왔죠.

박물관에 들어가면 오디오 가이드 기기를 줘요. 안타깝게도 한글은 없어서 영어로 들으면서 내려갔어요. 그리고 사진 촬영이 허락되지 않아서 사진은 한 장도 찍지 못했어요. 박물관에 들어가서 오디오 가이드로 들으며 벽면에 전시된 사진과 설명 자료를 보면서 아래로 내려가요. 순서는 히틀러의 탄생부터 시간 순서대로 이어지고요. 세계 1차 대전과 2차 대전 당시 독일이 정복한 곳의 지도와 사진, 설명을 따라가면 결국 히틀러가 죽은 벙커로 연결이 되어요.

벙커 밖 (간단한 히틀러 역사 소개)

벙커에서 본 자료와 이후 유튜브와 인터넷 자료를 종합해서 히틀러의 역사를 되새겨 보았어요. 처음에 히틀러도 귀여운 아기였어요. 성장하면서 그림을 그리며 미술가를 꿈꾸기도 하고요. 히틀러가 그린 그림을 보니 대단히 잘 그리는 솜씨는 아니었지만 꽤 구도를 잘 잡고 도시의 모습을 그리는 것을 즐겼던 것 같아요. 그러다 세계 1차 대전에 참여해요. 많은 군사들이 죽은 전투에서 살아 돌아온 히틀러는 운이 좋은 사람이었죠. 전쟁 패배 후에 독일은 엄청난 혼란과 경제적 어려움을 겪게 되었고 이 당시 히틀러는 정치에 입문하게 돼요. 1921년 나치당의 지도자가 되어 권력을 장악했고 1933년 총리에 오른 후 독재 체제를 구축하고 결국 세계 2차 대전을 일으켜요. 뿐만 아니라 유대인 학살을 자행하며 수백만 명의 희생자를 만들어 내요.


전시실에서도 수많은 희생자들의 사진을 볼 수 있었어요. 유대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옷조차도 입지 못하고 벌거벗은 채로 죽어야 했던 여자들의 사진들, 유대인이 죽기 전 모습을 담은 사진들, 근처에 있는 사람들도 도와줄 수 없는 안타까운 상황들이 클로즈업되어 유대인은 유대인대로 지켜보는 이웃들도 이웃들대로 괴로운 시대를 살았던 것 같아 안타까웠어요.


이번 여행에서 독일과 덴마크, 노르웨이를 방문하며 2차 세계대전에 독일이 정복한 나라들이 동유럽, 프랑스뿐만 아니라 덴마크, 노르웨이까지 뻗어나간 것을 알게 되었죠. 최근에 읽은 '넘버 더 스타' 이야기도 덴마트에 사는 이웃 가족들이 유대인 가족을 독일 군인들 눈을 피해 중립국인 스웨덴으로 보내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줄거리였어요. 이렇게 세계 2차 대전은 유럽 사람들의 마음에 유대인 학살, 전쟁으로 인한 폭격, 그로 인한 공포 등등 커다란 상처를 주었어요.


독일이 유럽 전역을 탱크로 차지하고 있을 때 거의 마지막으로 남은 유럽의 한 나라! 영국이 항복하지 않고 버티기 시작해요. 홀로 남았음에도 용기 있게 연합국과 협력해 반격을 준비한 처칠로 인해 나치의 세상이 오래가지 않았어요. 이때 처질이 미국의 루스벨트 대통령에게 천 통이 넘는 편지를 보냈다고 하는데 이것 때문만은 아니겠지만 결국 미국의 참전으로 인해 일본에 핵폭탄이 터지고 세계 2차 대전은 막을 내려요.


유럽의 대륙을 휩쓸고 간 세계 2차 대전의 상처는 독일에도 진하게 남아 있었어요. 베를린에 이어서 간 드레스덴도 2만 5천 명 이상의 사람이 죽은 폭격의 도시였으니까요. 전쟁을 일으킨 히틀러도 자살도 삶을 마감하고요. 벙커를 나오면서 깊은 여운이 남았어요. 벙커에 이어진 히틀러의 역사를 통해서 세계 2차 대전을 자세히 알게 되고 관련된 영화, 유튜브, 책들을 찾아보기 시작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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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