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홍보 연주회

-10년 육아휴직기-

by 키다리쌤

시골로 이사와서 아이를 키우고 싶어하지 않다 보니 첫째가 다니던 초등학교 아이들 수가 급격히 줄고

더불어 학부모회 일을 함께 하던 엄마들도 한두명씩 일하러 나가기 시작했다.

학부모 회장 첫째해에는 그래도 엄마들이 모여서 함께 이야기 나누며 학부모회 일들을 의논했었는데 다들 일하러 나가기 시작하고 일하지 않는 엄마는 거의 없는 현실 앞에 직면했다. 학부모회일을 한다고 돈이 나오는 것도 아니고 일하러 간다는 엄마들도 막을 수 없었다. 그래서 두번째 학부모회 회장을 할 때는 학부모회일을 과감히 줄였다. (이제는 무슨 일을 하든지 항의도 없었다. 무관심 속에서 혼자 일했다. )


그리고 아이들이 줄어드는 것을 막기 위해 홍보를 할 수 있는 방법을 선생님들과 찾기 시작했다. 우선 시간이 날 때마다 아파트에 학교 홍보 전단지 붙였다. 그리고 시골학교지만 고학년 아이들이 오케스트라를 구성해 연주하는 것 뿐만 아니라 엄마들도 플룻과 클라리넷을 배울 수 있었다. (엄마들이 모이던 첫해만 해도 아이들 학예회 때 엄마들도 플룻과 클라리넷 합주 공연을 했었다. 그러나 엄마들이 일하러 간 그 다음해에는 함께 공연할 엄마들도 없었다. 꿋꿋이 거의 혼자서 엄마 오케스트라 자리를 유지하며 자리를 지켰다. )


학교를 위해 혼자서라도 뭔가를 하고 싶었다. 결국 학교 홍보에 이만한 효과도 없다고 생각한 나는 동네연주회에서 클라리넷 독주 제안을 받아들였다. (학교에서 학부모 관악기 수업을 2년 연속 배우고 있었고 이 수업을 통해 배움을 이어나가고 있다는 것을 홍보하기 위해서 학부모회 이름으로 나갔다. )


아이넷 육아에 남편도 어학연수가고 아이들 돌보랴 집안일 하랴 바쁜 와중에 놀이터에서 노는 우리집 삼둥이 돌보며 (둘째, 셋째, 넷째가 유치원생이었다. ) 삑삑거리며 클라리넷을 불기 시작했다.


연주 당일에는 친한 지인이 선물한 "검은색 드레스"를 입고 우리 집 네아이의 격려 속에 동네 엄마, 아이들 응원 속에 동네 연주회에 학부모회 이름으로 '천개의 바람'을 혼자 클라리넷으로 불었다.

(큰아이는 엄마가 역도 선수인줄 알았다며 민소매 검은색 드레스가 우람한 체형을 더욱 돋보이게 했다고 했다. )


그렇게 2년의 학부모회장을 마무리 지었다.

아이 키우며 무료했을 30대 후반을

알차게 성장시켜 주었던

가슴뛰게 했던

학부모회장 2년을 마음 속에 새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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