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동규 Mar 27. 2021

통합진보당 광주시당사 (2011~2014)

 2012년 1월 5일, 통합진보당 광주시당 창당대회가 열렸다. 오는 4월에 열릴 제19대 총선을 불과 3개월 남겨둔 시점이었다. 당시 통합진보당 광주시당은 3인 공동위원장 체제였다. 윤난실 전 진보신당 광주시당위원장, 윤민호 전 민주노동당 광주시당위원장, 임택 전 국민참여당 광주시당위원장이 공동위원장을 맡고 있었다. 그러나 총선 당시 광주에 가장 많은 지역구 후보를 낸 세력은 역시 당권을 쥐고 있던 '경기동부연합'이었다.


<통합진보당 광주시당 1기 지도부>

시기 : 2011년 12월 ~ 2012년 7월
공동 시당위원장 : 윤난실, 임택, 윤민호


 1980년 5·18 민중항쟁 이래, 한국사회에는 이 잘못된 세상을 바꾸어 내고야 말겠다는 '변혁'의 움직임이 일었다. 그 중심에 한국사회를 미제국주의에 종속된 식민지로 바라보던 NL 세력이 있었다. 이들 중 다수는 북한의 주체사상을 새로운 세상의 설계도로 받아들였다. 이들의 세계관은 지금의 현실에 조금도 부합하지 않으나, 남한 군부독재에 대한 환멸감이 만연했던 당대에는 정당한 주장으로 여겨졌다. NL 세력에는 3대 정파가 존재한다. 인천연합, 경기동부연합, 울산연합이 그것이다. 이들은 모두 특정 지역에 영향력이 국한되지 않는 '전국 조직'이었다. 예컨대, '수원 왕갈비 통닭'이 수원이 아닌 전국에서 체인점을 운영하고 있는 것과 같다.


 광주지역의 NL 세력은 당초 인천연합의 지도를 받았다. 인천연합이 파견한 하방 간부에 의해 의사결정이 좌우되었고, 해당 간부에게 교육을 받았다. 당시 인천연합은 NL계열 최대 세력이었다. 그러나 일정 시간이 지난 후 인천연합은 광주전남연합에 대한 의사결정권을 경기동부연합에게 내주게 된다. 경기동부연합과 울산연합은 '강철서신'을 통해 남한 사회에 주체사상을 보급한 김영환이 하영옥, 이석기 등과 함께 조직한 '민족민주혁명당'을 모태로 하고 있는데, 민혁당 광주 조직원이었던 장원섭을 필두로 한 경기동부연합 활동가들이 빠르게 광주의 학생운동, 노동운동 등을 장악해나갔고, 이후 그 어떤 세력보다 우선적으로 민주노동당에 입당하여 진보정당 운동에서의 확고한 우위를 점했다.


 이에 반해 광주 지역의 인천연합은 혁신적이었고, 학생운동보다는 시민사회단체를 만들어 활동했다. 이에 대해 "시민사회를 중심으로 한 활동이 당 역량을 약화시킨다"는 비판이 있었다. 시민단체는 각 단체별로 추구하는 이상 혹은 목표가 있다. 이것을 위해 넓은 대중과 소통하며 활동을 전개한다. 이는 훌륭한 활동이나, 당의 역량을 배가시키는 데에는 그다지 좋지 않은 방식이다.


 2012년 통합진보당 광주시당은 사실상 '경기동부연합'에 의해 움직였다. 물론, 정확하게는 김영환, 하영옥 등이 주도하던 민혁당 산하 경기남부위원회 전직 구성원들의 임의조직이 민혁당 광주 조직원 장원섭을 통해 광주전남연합을 움직여, 통합진보당 광주시당을 지도한 것이다. '민혁당 경기남부위원회' 활동가들은 1991년 13개 부문운동 단체와 12개 지역단체가 참여해 결성한 민주주의민족통일전국연합(이하 전국연합) 산하 경기동부위원회에서 활동한 이래 '경기동부'로 불렸다.


 통합진보당 창당과 동시에 광주전남연합 '대장' 장원섭이 당 사무총장으로 내정되었다. 광주전남연합 측 활동가가 민주노동당-통합진보당 사무총장으로 내정된 건 세 번째였다. 김선동, 오병윤이 앞선 사례다. 장원섭은 2012년 4월 총선 당시 한동안 선거의 화두였던 '야권연대' 협상대표를 맡았다. 이후 장원섭이 총선에 출마함에 따라 협상대표는 마찬가지로 경기동부 소속인 이의엽으로 교체되었다.


 2012년 4월 총선에서 통합진보당 광주시당은 마침내 광주 진보정당 역사상 처음으로 지역구 국회의원 당선자를 배출했다. 서구을 지역구에 출마한 오병윤 후보가 야권연대에 힘입어 새누리당 이정현 후보를 누르고 당선되었다.


<2012년 통합진보당 광주시당 총선 결과>

통합진보당 동구 김관희 5,039표(10.34%)
통합진보당 남구 이민원 18,771표(21.69%)
통합진보당 서구을 오병윤 37,344표(52.36%)/당선
통합진보당 북구갑 이채언 7,314표(11.19%)
통합진보당 북구을 윤민호 20,200표(18.45%)
통합진보당 광산갑 장원섭 17,007표(27.29%)
통합진보당 광산을 황차은 18,022표(25.32%)

- 비례대표 : 윤난실(13번)


 이때의 선거에서 광주 지역구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한 후보자 7명 모두 경기동부연합과 직간접적인 연결점을 가지고 있었다. 동구 김관희 후보는 전국공무원노동조합 광주 동구지부 사무처장을 맡는 등 현재까지 경기동부 계열이 우세를 점하고 있는 '전공노 광주' 출신이었고, 오병윤, 윤민호 후보는 장원섭 다음으로 광주전남연합 핵심으로 꼽혔다. 황차은 후보는 지난 2006년 민주노동당 광주시의원 비례대표 1번으로 출마했던 광주전남연합 활동가였고, 특이하게도 이채언 후보는 전남대 교수 출신이었는데, 사상적으로 광주전남연합 활동가들과 매우 유사한 세계관을 지닌 덕에 간단히 출마자 명단에 이름을 올릴 수 있었다. 여담이지만, 이채언 교수는 2020년 "동성애는 일종의 정신적 장애라고 생각한다"라고 주장하여 구설에 오르기도 했다.


 광주 남구에 출마한 이민원 후보는 노무현 정부에서 국가균형발전위원회 위원장을 맡아 활동했었다. 이후 2010년 광주시교육감 선거 당시 전교조 측의 제안으로 선거에 나섰다. 그러나, 그들이 막판에 장휘국 후보를 지지하면서 뜻을 이루지 못했다. 이민원은 통합진보당 해산 이후 민주당에 입당하여 정치에 나섰지만 뜻을 이루지는 못했다. 진보신당 출신들은 이때의 선거에서 지역구 후보를 내지 않고 윤난실 후보의 의회 입성에 주력했다. 그러나 상당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윤 후보는 비례대표 13번을 받는데 그쳤다. 정리하자면 19대 총선 당시 통합진보당 광주시당이 배출한 총선 후보는 총 8명으로 이중 지역구 후보가 7명(경기동부 7명), 비례대표 후보는 1명(진보신당 탈당파)이었던 것으로 정리해볼 수 있다.


 2012년 4월 총선은 통합진보당에게 국회의원수 13석(지역구 7명, 비례대표 6명)을 안겨주었다. 그러나, 거대한 진전이 될 뻔했던 13석은 통합진보당을 다시 둘로 가르는 역할을 수행하게 된다. 총선 직후부터 선거의 공정성 및 관리에 대한 비판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비례대표 선거 결과를 납득하기 어렵다는 주장이었다. 이에 조준호 공동대표를 위원장으로 하는 진상조사위가 꾸려졌고, 현장 투표에서 선거부정이 있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현장 투표가 진행된 투표소 7곳에서 투표인 수와 용지 수가 일치하지 않았다. 5월 21일에는 현대자동차 전주 공장에서 비례대표 경선 당시 이석기 후보(경기동부연합) 측이 노트북을 들고 다니면서 공개 투표를 시켰다는 폭로까지 나왔다.


 7월 1일 자 검찰 발표에 따르면 당권파 핵심 이석기 의원에게 간 온라인 투표수의 58.8%가 중복 IP에서 투표된 것으로 확인되었다. 대리투표와 관련된 이들은 업무방해죄로 기소되어 대법원에서 유죄를 선고받았다. 결국 2012년 총선 당시 통합진보당 당권파(경기동부)가 동 정파 소속 후보자들을 국회의원으로 당선시키기 위해 총체적 부실·부정 선거를 저질렀다는 사실이 명백해졌다. 그러나 당권파 측은 비례대표 국회의원들의 사퇴를 거부했다.


장연주, 윤민호 후보


 2012년 5월 12일에 열린 통합진보당 중앙위원회는 당권파(경기동부) 측에 의해 '폭력'으로 물들었다. 6월 말, 통합진보당은 제1차 전국 동시 당직선거를 치렀다. 선거 당시 광주시당위원장 후보로 윤민호, 장연주 후보가 출마했다. 역대 광주 진보정당의 시당위원장 선거는 대부분 사전 정리를 거친 후 '찬반 선거'로 마무리되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달랐다. 주로 시민단체에서 유연하게 활동해오던 인천연합 측이 혁신을 꺼내 들었다. 장연주 후보는 "당원과 국민의 진보정치에 대한 희망을 되살리겠다. 강기갑 혁신 당대표를 지지하며 광주시당을 혁신과 통합의 모범으로 만들어가겠다"라고 포부를 밝혔다.


 그러나 이미 당은 경기동부연합에 의해 장악되어 있었다. 선거 결과 총 유권자수 3,767명 중 68.86%가 투표에 참여하였으며, 2071표(80.4%)를 득표한 윤민호 후보가 503표(19.5%)를 득표한 장연주 후보를 누르고 시당위원장으로 선출되었다. 참으로 부끄러운 패권이 어김없이 발휘된 정파선거가 아닐 수 없었다. 7월 26일 통합진보당 의총에서는 이석기, 김재연 의원에 대한 제명안이 부결되었다. 결국 통합진보당은 분당 수순에 접어든다.


<통합진보당 광주시당 2기 지도부>

시기 : 2012년 7월 ~ 2013년 2월
집행부 : 윤민호(위원장), 김미화, 서유미, 이영선-탈당-, 류정수, 박병옥, 이갑성, 정형택(부위원장), 주태석(동구위원장), 이주용(서구갑위원장), 조재옥(남구위원장), 이봉훈(북구갑위원장), 소재섭(북구을위원장), 이미옥(광산갑위원장), 김도훈(광산을위원장)


 2012년 10월 18일 통합진보당을 탈당한 NL계(인천연합), 국민참여당계(유시민), 구 진보신당 탈당파(노회찬, 심상정)가 진보정의당을 창당했다. 한국의 진보정당은 다시금 '통합진보당'과 '진보정의당'으로 양분되었다. 인천연합은 진보정의당 창당 과정에서 상당한 타격을 입었다. 인천연합은 통합진보당에 잔류한 극히 소수 인원, 진보정의당에 합류한 다수 인원, 진보정의당에 합류하지 않은 상당수 인원으로 나누어졌다. 인천연합의 '대부' 오종렬 전 민주주의민족통일전국연합 의장 역시 진보정의당에 합류하지 않았다. 그러나 반대로 통합진보당 주도세력의 패권적 행위에 질려, 통합진보당을 탈당한 이들도 있었다. 이때 광주 유일의 지역구 시의원 강은미 의원이 통합진보당을 탈당, 진보정의당에 합류했다.


 2013년 2월 통합진보당이 제2차 전국 동시 당직선거를 실시했다. 분당 사태로 인해 각 시도당의 주요 간부가 탈당한데 따른 조치였다. 이때의 선거에서는 윤민호 광주시당위원장이 단독 후보로 출마해 지지율 98.7%를 얻어 다시금 시당위원장으로 당선되었다. 임기는 2년이었다.


<통합진보당 광주시당 3기 지도부>

시기 : 2013년 2월 ~ 2014년 12월 19일
집행부 : 윤민호(위원장), 김선미, 한연임, 김현성, 이갑성, 이주용(부위원장), 이미옥(사무처장), 문홍(동구위원장), 조동옥(서구위원장), 허윤성(남구위원장), 이봉훈(북구갑위원장), 소재섭(북구을위원장), 이미옥(광산갑위원장), 김도훈(광산을위원장)


 2013년 6월 29일 통합진보당이 '2013 정책 당대회'를 광주 김대중컨벤션센터에서 개최했다. 이 행사에는 당원 5천여 명이 참석했다. 진보정당의 당대회가 광주광역시에서 진행된 건, 처음 있는 일이었다. 통합진보당은 2년에 한 번씩 정책 당대회를 진행하기로 결의하고 강령, 정책, 노선, 정치전략 등을 당 지도부 및 당원들과 함께 논의하기로 했다. 나는 당시 경기동부연합의 청소년 조직화 사업장이었던 21세기 청소년공동체 희망 광주지부 소속으로 이 행사에 참여했다. 희망에는 경기동부 활동가들의 자녀들이 다수 소속되어 있었다. 나는 이들 세력의 세계관에 동의하지 않으나, 정책 당대회를 지역에서 개최하고 각 부문(장애인, 여성, 청년, 농민, 노동자)별 정책에 대해 논의한 것 자체에 대해서는 높이 평가하지 않을 길이 없다. 당시 통합진보당은 2020년 총선에서 교섭단체(20석)를 구성할 것을 목표로 했다. 


 그러나 2013년 8월 28일 국가정보원이 통합진보당 이석기 의원에 대한 내란음모 사건을 발표하고 공개수사에 착수했다. 이어 대한민국 정부가 통합진보당은 민주적 기본질서에 실질적 위협을 가할 수 있는 '위헌정당'에 해당한다며, 헌법재판소에 통합진보당에 대한 정당해산심판청구를 제기했다.


 이때부터 통합진보당은 전당적 역량을 집중하여 대정부 투쟁에 나섰다. 광주시당 당원들 역시 거의 매주 서울로 올라가서 상경투쟁을 진행했다. 2014년 지방선거는 투쟁 속에서 준비되었다. 당시 통합진보당 광주시당 당원들은 전투적이었다. 탄압과 박해에 직면해 있다는 수세적인 정세인식과 적(박근혜 정권 및 우릴 배신한 진보정의당)에 대한 분노가 가득했다. 2014년 망월동 묘역에서 유시민 전 대표를 본 적이 있다. 그 순간 주변에 있던 통합진보당 당원들이 그에게 쌍욕을 퍼붓기 시작했다. 물병이 던져졌다. 잔인할 정도로 심한 욕설(성, 가족, 인격에 대한 것)을 하는 몇몇 당원들의 이성을 잃은 일그러진 표정에서 어떤 일면성이 느껴졌다. 그것은 아마, 우리는 옳다, 옳아야만 한다, 그러니 너는 틀렸다, 라는 짙은 고립감이었다.


 '적'에 대한 분노는 2014년 지방선거 때에도 어김없이 드러났다. 정의당 광주시당 소속 강은미 시의원이 광주 서구에 시의원 후보로 출마하자 기아차 광주공장에 강은미를 비난하는 내용의 유인물이 배포되었다. 유인물은 기아차 광주공장 노동조합 전직 노조 지회장 5명의 이름으로 배포되었다. 해당 유인물에는 "강은미는 혼자 살겠다고 도망간 세월호 선장처럼 통합진보당을 떠났다"는 어이없는 내용의 비난이 담겼다. 경기동부연합 측 패권에 분노하여 탈당한 강은미 의원의 행보를 고려할 때, 참으로 파렴치한 주장이 아닐 수 없다. 유인물에 이름을 올린 전직 노조 지회장들은 기아차 광주공장 노동조합에 존재하는 여러 정파 중에서 경기동부연합에 가까운 정파에 소속되어 있었다.


광주 진보정당 - 2014년 지방선거 결과

<광주시장>
통합진보당 윤민호 후보 21,200표(3.34%)
노동당 이병훈 후보 6,785표(1.06%)

<구청장>
통합진보당 김미화(동구) 5,711표(11.73%)
통합진보당 정형택(북구) 44,608표(27.02%)
통합진보당 박오열(광산구) 25,426표(16.63%)

<시의원>
통합진보당 권민영(동구) 3,621표(13.75%)
통합진보당 이은주(서구) 14,225표(34.59%)
노동당 강윤희(서구) 1,968표(4.78%)
통합진보당 고기담(서구) 4,291표(10.98%)
정의당 강은미(서구) 14,345표(36.71%)
통합진보당 박정준(남구) 7,692표(19.49%)
통합진보당 최용현(북구) 2,103표(13.98%)
노동당 류창표(북구) 510표(3.39%)
통합진보당 안지섭(북구) 3,386표(14.42%)
통합진보당 심규만(북구) 4,124표(13.48%)
노동당 조기용(북구) 1,272표(4.16%)
통합진보당 정달성(북구) 8,014표(19.67%)
노동당 김승(북구) 2,990표(8.55%)
통합진보당 국강현(광산구) 10,274표(35.19%)
통합진보당 전주연(광산구) 9,798표(26.23%)
통합진보당 최경미(광산구) 10,468표(23.67%)
통합진보당 김도훈(광산구) 10,830표(26.28%)

<시의원 비례>
통합진보당 이미옥 85,010표(13.37%)/당선
통합진보당 김현성 85,010표(13.37%)
정의당 장연주 26,370표(4.15%)
노동당 김영애 15,168표(2.38%)

<구의원>
통합진보당 박현정(동구) 3,017표(13.07%)
통합진보당 문홍(동구) 2,407표(22.16%)
통합진보당 안병강(동구) 2,931표(19.14%)
통합진보당 이대행(서구) 3,487표(14.43%)/당선
통합진보당 김태진(서구) 7,262표(17.77%)/당선
통합진보당 류정수(서구) 7,081표(21.13%)
통합진보당 김은아(서구) 5,689표(14.67%)/당선
통합진보당 조재옥(남구) 2,790표(10.65%)
통합진보당 박미영(남구) 2,803표(17.75%)
통합진보당 허윤성(남구) 1,832표(10.96%)
통합진보당 배진하(남구) 6,077표(15.42%)
통합진보당 고영봉(북구) 2,426표(16.24%)
통합진보당 이봉훈(북구) 2,651표(11.37%)
통합진보당 최유진(북구) 2,864표(20.68%)
통합진보당 마정환(북구) 1,268표(7.66%)
노동당 조양진(북구) 1,252표(7.56%)
통합진보당 소재섭(북구) 7,206표(17.18%)
통합진보당 김현정(북구) 4,446표(12.83%)
통합진보당 손혜진(북구) 2,397표(12.17%)
녹색당 박필순(북구) 3,086표(15.67%)
통합진보당 김선옥(북구) 5,515표(20.52%)
통합진보당 김양지(광산구) 2,174표(13.87%)
통합진보당 정홍채(광산구) 2,455표(18.29%)
통합진보당 김선미(광산구) 7,246표(19.52%)/당선
통합진보당 정진아(광산구) 7,875표(17.9%)/당선
정의당 김용재(광산구) 3,270표(7.43%)
통합진보당 김은정(광산구) 5,393표(20.6%)
정의당 이승남(광산구) 2,084표(7.96%)
통합진보당 엄희영(광산구) 3,241표(22.31%)
정의당 최윤덕(광산구) 1,341표(9.23%)

<구의원 비례>
통합진보당 문선화(서구) 20,632표(14.85%)
통합진보당 김수중(남구) 18,598표(18.97%)
통합진보당 서유미(북구) 31,376표(16.27%)
통합진보당 김명숙(광산구) 31,120표(20.62%)
정의당 임미숙(광산구) 10,283표(6.81%)


 2014년 지방선거 당시 통합진보당은 역대 최다 후보를 내보냈다. 광주시장 후보 1명, 구청장 후보 3명, 지역구 시의원 후보 12명, 시의원 비례대표 후보 2명, 지역구 구의원 후보 25명, 구의원 비례대표 후보 4명 등 47명이 후보로 나섰다. 그러나 후보자 숫자는 지난 2010년도 선거(28명)에 비해 크게 늘었지만, 당선자는 시의원 1명(이전 2명), 구의원 9명(이전 14명)으로 줄었다.


 지방선거 이후에도 투쟁은 계속되었다. 상경투쟁의 반복이었고, 광주에서의 집회도 잦았다. 당 조직은 이미 투쟁조직이 되어있었다. 나는 당시 통합진보당 광주시당 청소년위원회에 소속되어 있었다. 통합진보당 청소년위원회는 경기동부 소속 중년 활동가들의 자녀들과 몇몇 성인 활동가에 의해 의사결정이 좌우됐다. 그 중심에 내가 활동을 시작한 단체, '희망'이 있었다. 그러나 청소년 당원들은 당권을 보장받지 못하고 있었다. 2014년 12월 13일 몇몇 청소년 당원들과 함께 통합진보당 중앙당사에 가서 중앙당 이종문 조직실장을 면담했다. 우리는 이종문 실장에게 청소년 당권 회복을 요구했고, 긍정적인 답변을 들었다. '당 해산' 관련 상황이 어떻냐는 질문에 이종문은 "일심회 사건으로 누명을 쓴 최기영 당원님이 당 산하 연구기관인 진보정책연구소에서 활동하고 있는 걸 그쪽에서 문제 삼고 있다. 하지만 당이 해산될 것 같지는 않다"라고 이야기했다.


 그즈음 통합진보당 당원들이 할 수 있었던 일은 그저 헌법재판소의 판단을 기다리는 것뿐이었다. 2014년 12월 19일 헌법재판소가 정당해산심판을 통해 통합진보당을 해산하고, 당 소속 국회의원들의 직위를 상실시켰다.


<광주 진보정당사>


1. 민주노동당 광주시당사

2. 진보정당의 분열과 통합

3. 통합진보당 광주시당사

4. 진보정의당 광주시당사

5. 광주 진보정당의 역대 선거 결과

매거진의 이전글 광주 진보정당의 분열과 통합 (2008~2011)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