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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동규 Apr 03. 2021

진보정의당 광주시당사 (2012~2016)

 2012년 10월 18일 진보정의당이 창당되었다. 진보정의당의 주축은 통합진보당을 탈당한 NL계(인천연합), 국민참여당계(유시민), 구 진보신당 탈당파(노회찬, 심상정)였다. 광주에서도 통합진보당 당권파의 패권에 분노한 당원들의 탈당이 이어졌다. 강은미 광주시의원 역시 이들과 함께 탈당했다. 진보정의당 광주시당은 1기 공동 준비위원장으로 장화동(전 민주주의민족통일광주전남연합 집행위원장), 김상호(전 민주노동당·통합진보당 광주시당 사무처장), 강은미(현 광주시의원)를 선출했다. 사무처장은 이승남(전 민주노동당 광주 광산구청장 후보)이 맡았다.


진보정의당 광주시당 1기 공동준비위원회
시기 : 2012년 10월 ~ 2013년 8월
집행부 : 장화동, 김상호, 강은미(공동위원장), 이승남(사무처장)


 진보정의당은 창당 직후 치러진 제18대 대통령 선거에 심상정 후보를 내세웠으나, 문안심(문재인-안철수-심상정) 단일화를 통해 심 후보는 완주하지 않고 사퇴했다. 이듬해인 2013년 2월에는 진보정의당 노회찬 의원이 삼성 x파일 사건 당시 소위 '떡값 검사'들의 실명을 공개했던 일로 대법원으로부터 유죄를 선고받고 의원직을 상실했다. 이 일로 진보정의당의 의석은 7석에서 6석으로 줄었다. 같은 해 5월에는 강동원 의원이 탈당함에 따라 진보정의당의 의석은 다시 5석으로 쪼그라들었다. 이때부터 외연 확장에 대한 고민이 본격화되었다.


 2013년 5월 23일 진보정의당 최고위원회가 '제2창당' 선언을 7월 26일에 진행하기로 결정하고 '당명 변경'을 의결했다. 당명 개정 투표 당시 초반에는 '사회민주당'이 유력한 후보로 검토되었으나, 결선 투표에서 '정의당'이 새로운 당명으로 결정되었다. 정의당 광주시당 역시 이에 발맞추어 새로운 집행부를 선출하고 창당대회를 준비했다. 2013년 8월 29일 정의당 광주광역시당 창당대회가 CMB 광주방송 2층 문화홀에서 개최되었다. 광주시당은 2기 위원장으로 장화동, 강은미 공동위원장을 선출했다.


정의당 광주시당 2기 집행부
시기 : 2013년 8월 ~ 2015년 8월
집행부 : 강은미, 장화동(공동위원장), 김영수, 이영선, 이상원(운영위원), 이승남(사무처장), 장연주(광산구위원장), 우승관(서구위원장), 김병주(북구위원장)


 2기 집행부의 과제는 지방선거였다. 2014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공직후보자를 몰색 했다. 2014년 4월 1일 당규에 의해 진행된 공직후보자 선출을 위한 대의원대회에서 총 6명의 후보가 지방선거 후보로 선발되었다. 강은미 광주시의원이 지역구 시의원 후보로, 장연주 광산구위원장이 시의원 비례대표 후보로, 김용재, 이승남, 최윤덕 후보가 광산구의원 후보로, 임미숙 후보가 광산구의원 비례대표 후보로 각각 선출되었다. 당시 정의당 광주시당의 조직력은 광산구 지역에서 강했다. 당의 주축이 되는 활동가들이 광산구 지역에서 시민사회 운동을 상당한 기간 동안 전개해왔기 때문이다.


정의당 광주시당 - 2014년 지방선거 결과

<시의원>
정의당 강은미(서구) 14,345표(36.71%)

<시의원 비례>
정의당 장연주 26,370표(4.15%)

<구의원>
정의당 김용재(광산구) 3,270표(7.43%)
정의당 이승남(광산구) 2,084표(7.96%)
정의당 최윤덕(광산구) 1,341표(9.23%)

<구의원 비례>
정의당 임미숙(광산구) 10,283표(6.81%)


 그러나 이때의 선거에서 정의당 광주시당은 당선자를 배출하지 못했다. 지방선거 기간에 제일 큰 논란이 되었던 건 통합진보당-광주전남연합 측의 비열한 네거티브 공세였다. 전직 기아자동차 노조위원장 5명의 명의로 강은미 의원을 비난하는 유인물이 배포되었다. 해당 유인물에는 "강 의원만이 우리 아이들을 버리고 혼자 살겠다고 도망간 세월호 선장처럼 당을 떠났다"는 폐륜적인 주장이 담겼다. 유인물에 이름을 올린 전직 기아차 노조 지회장 5명 중 2명은 민주노동당의 이름으로 구의원 선거에 출마했던 전력이 있었다.


 이에 정의당 광주시당 장화동 위원장은 성명을 통해 "이번 유인물은 강은미 시의원의 정치적 선택을 마치 수백 명의 인명을 살상하고 무책임하게 혼자 탈출한 세월호 선장과 동일하게 표현한 것"이라며 "의견 차이를 떠나 인간으로서의 예의를 포기한 모리배의 소행"이라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2014년 7월에는 7·30 재보궐선거가 있었다. 노회찬 의원이 서울 동작 을에서 나경원과 맞붙었다. 정의당은 이를 지원하기 위해 대부분의 국회의원 보궐선거구에 후보를 냈다. 이때 광주시장 선거에 출마하기 위해 사퇴했던 이용섭 전 의원의 지역구인 광주 광산 을에서도 보궐선거가 있었다. 정의당은 광산을 재보궐선거에 문정은 부대표를 공천했다. 문정은은 서울에서 출생한 후 유년시절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를 모두 광주에서 나왔다. 이후 성공회대학교에 진학한 문정은은 성공회대학교 총학생회장을 지낸 후 진보정의당 창당 발기인으로 당 창당에 참여했다.


 7·30 재보궐선거에서 문정은의 상대 후보로는 새정치민주연합의 전략공천을 받은 권은희 후보와 통합진보당의 장원섭 후보 등이 있었다. 권은희 후보는 국정원 여론조작 사건과 관련하여 '양심선언'으로 높은 지지를 받고 있었고, 광주전남연합에서 가장 높은 의사결정권을 가진 장원섭 역시 만만하지 않은 상대였다.


2014년 7·30 재보궐선거 - 광주 광산을 개표 결과

새누리당 송환기 2,484표(6.98%)
새정치민주연합 권은희 21,545표(60.61%)/당선
통합진보당 장원섭 9,375표(26.37%)
정의당 문정은 1,343표(3.77%)


 선거 결과 권은희 후보가 60%가 넘는 득표율로 당선되었다. 여전히 광주에서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던 통합진보당의 장원섭 후보는 26.37%를 득표했다. 보궐선거는 이걸로 끝이 아니었다. 2015년에는 4·29 재보궐선거가 있었다. 이때 광주 서구 을에서 국회의원 보궐선거가 치러졌다. 정의당에서는 광주 서구의원 및 광주시의원을 지낸 강은미 후보가 선거에 나섰다. 이때 강은미 후보는 어려운 선거를 치렀다. 평소 강은미 시의원을 지지하던 사람들마저 무소속 후보로 출마한 천정배 후보나 민주당계 후보 편에 섰다. 당시 광주의 정치지형은 2016년 총선을 휩쓰는 국민의당에 가까운 세력과 그에 반대되는 친문 민주당 세력의 충돌로 결집되고 있었다. 결국 강은미 후보는 초반 여론조사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은 득표를 얻었다.


2015년 4·29 재보궐선거 - 광주 서구을 개표 결과

새누리당 정승 5,550표(11.07%)
새정치민주연합 조영택 14,939표(29.8%)
정의당 강은미 3,384표(6.75%)
무소속 천정배 26,256표(52.37%)/당선


 정의당은 2015년 3월부터 외연 확장을 위한 '4자 통합'에 나섰다. 노동당, 국민모임, 노동정치연대와의 통합 논의가 진행되었다. 노동당은 2011년 통합진보당에 합류하지 않은 진보신당 잔류파가 사회당과의 통합을 진행한 후 당명을 개정한 세력이었다. 2015년 1월 광주 출신의 나경채 후보가 노동당 대표로 선출되었다. 국민모임은 '국민의 눈물을 닦아줄 수 있는 새로운 정치 세력의 건설을 촉구하는 국민모임'의 줄임말로 2014년 12월 '새 정치세력 건설을 호소하는 105인 선언'을 통해 출범했다. 서울대 김세균 명예교수가 대표를 맡았으며 이수호, 김영훈 전 민주노총 위원장을 비롯한 인사들이 참여하여 새로운 '정당'을 건설에 나섰다. 노동정치연대는 민주노총 중앙파를 중심으로 한 노동계 인사들이 결성한 단체로 양경규 전 민주노총 부위원장이 대표를 맡고 있었다.


 2015년 6월 28일 노동당 당대회에서 나경채 대표가 추진한 '정의당과의 합당을 중심으로 한 진보정당 재구성' 당원 총투표 발의안이 부결되었다. 결국 이에 반발한 나경채 대표와 권태훈, 김윤희 부대표를 비롯한 노동당 내 통합파가 노동당을 집단 탈당한 후 진보결집플러스를 결성했다.


 2015년 11월 3일 정의당, 진보결집플러스, 국민모임, 노동정치연대가 '4자 통합'을 공식 선언했다. 심상정(정의당), 김세균(국민모임), 나경채(진보결집플러스) 세 사람이 공동대표로서 통합 선언문을 발표했다. 정의당은 당분간 당명을 그대로 유지하고, 총선 후 6개월 이내에 새로운 당명을 정하기로 했다. 4자 통합을 통해 외연 확장을 마친 정의당의 당면 과제는 총선이었다.


정의당 광주시당 3기 집행부
시기 : 2015년 8월 ~ 2017년 8월
집행부 : 이승남(위원장), 장연주, 문정은, 김호열, 임형석(부위원장), 최윤덕(사무처장), 강은미(서구위원장), 김병주(북구위원장), 문정은(광산구위원장)


 정의당 광주시당은 4자 통합을 앞두고 3기 집행부를 구성했다. 이승남 전 사무처장이 시당위원장을 맡았다. 이때부터 이승남은 위원장 활동보고를 매일 정의당 광주시당 당원게시판에 공유했다. 2016년 4월 총선 당시 정의당은 광주 지역 8개 선거구 중 4개 선거구에 후보를 냈다. 반면 통합진보당 해산 이후 경기동부연합-광주전남연합을 중심으로 재건된 민중연합당은 광주 지역 8개 지역구 전역에 후보를 냈다. 그들 세력은 이미 정치적 생명을 상실한 상황이었으나, 여전히 살아있는 조직이었다.


정의당 광주시당 - 2016년 총선 결과

정의당 장화동(서구갑) - 1,614표(2.23%)
정의당 강은미(서구을) - 4,438표(5.68%)
정의당 나경채(광산구갑) - 2,677표(3.47%)
정의당 문정은(광산구을) - 2,380표(2.35%)


 이때의 선거에서 정의당은 6명의 국회의원을 배출했다. 지역구에서는 유이하게 심상정(고양갑)과 노회찬(창원 성산)이 당선되었고, 비례대표로 이정미, 윤소하, 추혜선, 김종대가 당선되었다. 직전 총선 직후 거대했던 통합진보당이 둘로 쪼개졌으며 그중 과반수가 헌법재판소에 의해 해산되는 풍파를 겪었음에도 정의당은 온전히 스스로 치러낸 선거에서 의석을 한 석 늘리는 데 성공했다.


 정의당 광주시당이 내보낸 4명의 후보는 평균 3.4%의 득표율을 기록했다. 지역구 당선자를 배출하지 못했음에도 평균 10%가 넘는 득표율을 기록했던 과거에 비해 좋지 않은 결과였다. 민주노동당이 광주 지역 7개 지역구 중 6개 지역구에 후보를 냈던 지난 2004년 총선에 비해 광주 지역 진보정당의 역량은 극도로 약해져 있었다. 두 차례의 분당 사태를 비롯한 풍찬노숙의 길에서 수많은 활동가들이 각자의 삶을 찾아 떠났다. 그러나 2016년 4월 광주의 진보정당은 여전히 본연의 가치를 부여잡고 앞으로를 기약하고 있었다.


 <이 글을 쓴 이유>


 이 글은 2021년 4월 3일에 쓰인 글이다. 현재까지 조망할 수 있었던 정의당 광주시당 1기~6기의 역사 중 전반기 절반을 담았다. 그러나, 이 글은 그다지 많은 내용을 담고 있지 않으며 깊이가 없는 글이다. 문제는 이와 같은 지역 정당의 '개요'를 담은 글조차 쉽게 찾을 수 없다는 것이다. 4기 부위원장으로 정의당 광주시당에 참여했으나, 이전의 역사를 전혀 알 수 없었다. 심지어는 역대 집행부 명단조차 알 수 없었다. 이전부터 활동해온 활동가의 메일에 남겨져있는 운영 회의록을 통해서 조금씩 긁어모아야 했다. 흘러가는 대로 이어진 역사 속에서 상당한 당의 기록들이 남겨지지 않고 유실되었다.


 더 큰 문제는 그 시절의 기억을 가진 사람들이 줄어들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내 계획은 우선 간단한 개요를 정리해두고, 추후 당대의 활동에 연관되었던 이들을 세세하게 인터뷰하여 하나의 완성된 인식을 남기는 일이다. 앞으로 당장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는 정의당 광주시당의 역사에 대한 기록도 소홀히 하지 않을 생각이다.


<광주 진보정당사>


1. 민주노동당 광주시당사

2. 진보정당의 분열과 통합

3. 통합진보당 광주시당사

4. 진보정의당 광주시당사

5. 광주 진보정당의 역대 선거 결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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