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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동규 Jan 03. 2020

1980년 5월 20일, 민주 기사들의 차량시위

그날 군인들이 시민들에게 총을 쐈다.

 1980년 5월 20일. 더 많은 시민들이 금남로에 모여들기 시작했다. 특전사 군인들은 곳곳에서 곤봉과 대검과 M-16 소총으로 잔인한 살인 행위를 이어나갔다. 시민들은 무장한 특수부대 군인들의 폭력 앞에 무력했다. 전날 택시기사가 대검에 찔리는 등의 일이 일어나자, 광주 지역 운송노동자들도 거리로 나서기 시작했다. 이들은 "우리들이 차를 끌고 와서 방패가 되어주자"며 자동차를 끌고 모이자고 약속했다. 오후 6시, 버스와 택시 200대가 차량시위에 나섰다. 이들은 계엄군의 폭력을 비토 하듯, 무등경기장에서 도청까지 경적을 울리며 차량시위를 했다. 수많은 시민들이 차량들과 함께 걸었다. 감동적인 순간이었다.


 5월 20일은 현재 '민주기사의 날'로 지정되어 기념되고 있다.


 한편, 광주의 저항이 심상치 않자, 언론에도 이 사실이 보도되기 시작했다. 진실을 외면한 언론들은 “불순분자와 폭도들의 난동", "극렬한 폭도들에 의해 사태가 악화되고 있다”는 등의 왜곡보도를 자행했다. 왜곡보도에 분노한 시민들은 광주 MBC를 불태웠다. 그러나 여기에 대해서는 계엄군이 광주 MBC에서 철수한 직후 불이 났다는 증언이 있어 계엄군이 시민들의 폭력성을 부각하기 위해 방화를 했다는 설도 존재한다. 훗날 광주 MBC는 “5.18 왜곡보도 반성문”을 발표하기도 했다.



 이날, 계엄군의 학살에 대해 보도할 수 없다는 사실에 부끄러움을 느낀 전남매일신문 기자들은 반성의 내용을 담은 집단 사직서를 제출했다.


 "우리는 보았다. 사람이 개 끌리듯 끌려가 죽어가는 것을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다. 그러나 신문에는 단 한 줄도 싣지 못했다. 이에 우리는 부끄러워 붓을 놓는다 - 1980년 5월 20일 전남매일신문기자 일동"


 1980년 5월 20일 밤, 시민들이 광주 전역에서 시위를 진행했다. 광주역 앞에서도 시민들의 시위가 진행되었다. 오후 11시경, 계엄군이 광주역 앞에 모인 시민들을 향해 M-16 소총을 발포하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10명의 시민이 총에 맞았고, 4명이 사망했다. 당시 군인들은 광주역으로 집결하고 있었다. 광주의 저항이 심상치 않자 공수특전여단으로도 모자라 양평의 20사단을 광주역으로 급파했기 때문이다. 20사단은 이동 도중 광주역이 아닌 송정역으로 도착지를 변경하게 되었지만, 군인들의 발포는 20사단의 광주역 진주에 있어 시민들의 시위가 방해가 될 것을 우려해서였다는 설이 유력하다. 이날 자행된 계엄군의 집단발포는 5월 19일에 있었던 군 장교의 우발적인 발포와 달리 조직적이고 의도적인 학살이었다. 그들은 비무장 민간인을 향한 발포를 주저하지 않았다.


 1980년 5월 20일, 대한민국 역사는 시민들을 향한 국가권력의 발포를 4·19 혁명 이래 20년 만에 다시 마주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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