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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동규 Feb 03. 2020

오월, 그날이 지난 후

5.18 민주화운동, 그날 이후 ①

 1980년 5월 27일, 5·18 민주화운동이 10일 만에 막을 내렸다. 그러나 전남도청을 마지막까지 지켰던 사람들이 있었기에, 5·18은 결코 그대로 끝날 수는 없는 일이었다. 1980년 5월 30일, 한 청년이 서울 종로 기독교회관 6층으로 올라갔다. 그의 이름은 김의기, 서강대 무역학과 4학년이었다. 그는 경상북도 영주 출신으로, 대학 입학 후 농민운동에 투신하여 각종 단체에서 활동해왔다. 농활에 10회 이상 참여하고 반유신 시위를 준비하는 등 열성적인 활동가였다.


 1980년 5월, 그는 5월 19일에 광주 북동성당에서 열릴 예정이었던 함평 고구마 사건 2주년 기념식 참석차 광주에 왔다. 그러나 비상계엄령 선포와 동시에 특수부대 군인들이 광주를 들이닥쳤다. 거리는 피로 물들었다. 김의기는 수많은 시민들이 계엄군의 총칼에 의해 쓰러지는 광경을 목도하고 전율했다. 훗날 동화작가가 되는 윤기현이 서울로 돌아가 이 사실을 세상에 알려달라고 설득했다. 김의기는 해방광주 기간에 서울로 돌아왔다.


 1980년 5월 30일, 김의기는 기독교회관 6층에서 '동포에게 드리는 글'을 인쇄했다. 예정되어 있던 금요기도회가 취소된 상황이었고, 두 대의 탱크가 건물 입구를 지키고 있었다. 곧 계엄군이 들이닥쳤다. 김의기는 인쇄한 유인물을 뿌리고 창문 밖으로 뛰어내렸다. 그는 탱크 사이로 떨어졌고, 그 자리에서 숨을 거뒀다.


 "피를 부르는 미친 군홧발 소리가 우리가 고요히 잠들려는 우리의 안방까지 스며들어 우리의 가슴팍과 머리를 짓이겨 놓으려고 하는 지금, 동포여 무엇을 하고 있는가? 무참한 살육으로 수많은 선량한 민주시민들의 뜨거운 피를 오월의 하늘 아래 뿌리게 한 남도의 봉기가 유신 잔당들의 왜곡과 거짓에 찬 허위선전으로 분칠해 지고 있는 것을 보는 동포여, 우리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



 1980년 6월 9일에는 이화여대 앞에서 노동자 김종태가 ‘광주시민 학생들을 위로하며’라는 글을 남기고 분신으로써 독재에 항거했다. 외적 저항과 내적 저항이 모두 봉쇄된 상황에서, 자기 파괴를 선택해가며 광주를 외쳤던 이들이 있었다. 그날 이후,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광주의 아픔에 함께했다. 누군가는 광주의 이름으로 싸웠고, 누군가는 스스로 광주가 되었다. 김의기와 김종태 두 사람은 모두 5·18 묘역에 묻혔다.


 그날 이후, 대세를 직감한 언론들은 반란 군인들에게 고개를 숙이기 시작했다. 조선일보는 5·18 직후 발표된 사설에서 “신중에 신중을 거듭했던 군의 노고를 우리는 잊지 않는다. 계엄군은 일반이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극소화한 희생만으로 사태를 진정시키는 데 성공했다”고 평가했다. 1980년 8월 23일 조선일보의 ‘인간 전두환’ 기사는 언론 정신이 완전히 사라졌음을 보여주는 일이었다.



 1980년 8월 6일, 롯데호텔에 모인 기독교 지도자들은 “전두환 사령관이 성경에 나오는 여호수아 장군과 같은 위대한 지도자가 되게 해달라”고 자신들이 믿는 하나님께 기도했다. 그해 오월 광주에 있던 수많은 기독교인들이 10일간의 항쟁 기간 동안 피를 흘리며 쓰러져갔음을 생각할 때, 너무나 부끄러운 행위였다. 1993년, 이선교 목사 등 일부 기독교인들이 '전두환을 위한 기도회'에 참석한 한경직 목사 등 23명을 반란 방조 혐의로 고발했다. 물론 실제 처벌을 받지는 않았지만, 이들의 행위는 분명 인간의 양심에 대한 반란이었다. 그리고 자신들이 믿어왔다는, 하나님에 대한 배신이었다.


 1980년 8월 27일, 전두환은 최규하 대통령 하야 직후 체육관 선거를 실시하여 제11대 대통령에 선출되었다. 투표율과 득표율 모두 99%였다. 1980년 10월 27일, 신군부는 유신헌법을 폐지하고, 7년 단임제로 헌법을 개정했다. 1981년 2월 11일, 전두환은 다시 한번 체육관 선거를 실시하여 제12대 대통령이 되었다. 그는 헌정사상 유일하게, 단 한 번도 국민을 대상으로 한 선거를 거치지 않고 대통령이 된 인물이자, 군사반란을 일으키고 시민들을 학살하여 권력을 손에 쥔 '학살자'라는 오명을 남기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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