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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주 Aug 26. 2022

어웨이크

익숙함을 버리고 불편함을 선택하라


불편함에 대한 두번째 책 이야기입니다. 이 책은 검색을 통해 도서관에서 빌린 것인데 저자 이력을 보니 제가 봤던 책에 저자였답니다. 바로 <혼자있고 싶은데 외로운 건 싫어>라는 책입니다. 이 책은 내향성에 대한 공부를 할때 읽었던 책인데 기존 학자들과 사뭇 다른 젊은 감각이 느껴져서 신선했답니다. 역시나 저자 이력에 미국에서 가장 주목받는 신세대 심리학자라고 되어 있네요. 심리서 치고 살짝 가벼운듯 하지만 통통 튀는 매력이 있던 책인데 신세대 심리학자라서 그랬나봅니다. <어웨이크> 역시 비슷한 느낌이었구요. 가벼운듯 하지만 어쩌면 실생활에 있어서 접근이 쉬운 심리서라고 할까요? 


이 책 덕분에 저는 운전을 못하는 물리적 불편함을 제거해 보려 노력중입니다. 아이러니하게도 물리적으로 이동의 제약이 있는 운전의 불편함은 그동안 큰 저항없이 참아내고 살았는데 제 안전지대를 벗어나려고 하는 요소중 운전이 꼭 필요한 가교 역할이 되는지라 운전에 대한 불편함을 새삼 크게 느끼고 있다는 것입니다. 운전을 하지 못하는 것 보다는 사고의 위험이나 무지에서 비롯된 실수에 대한 염려로 스스로를 '운전을 하면 안돼', '운전을 안하는게 이로운거야'라며 자기암시를 했는지도 모릅니다. 


저는 면허를 따자마자 바로 운전은 시작했는데 운전 상식이 미흡함으로 사고를 두번 낼뻔 하고 운전대를 놓아버렸지요. 가장 큰 사고가 될 뻔 한 것이 언덕에서 주차를 하다 도저히 불가능 할거 같아서 도움을 받으려고 차키를 그냥 빼버린 것입니다. 기어변동을 하지 않을 채로 말이지요. 결론은? 차가 갑자기 구릅니다. 엄마와 마트를 다녀오는 길이라 엄마와 저는 당황하는 마음에 차를 부여잡았지요. 천만다행으로 바퀴가 계단에 딱 걸려서 차는 움직임을 멈추었답니다. 이웃 아저씨께 주차를 부탁드리고 저는 왜 차가 굴렀는지, 계속 굴러갔으면 어떤 대형사고가 났을지를 생각하며 아찔한 마음에 정신을 못 차렸답니다. 그 뒤로 언덕 트라우마가 생겨 남편차를 타고 이동하는데도 언덕전에 먼저 내려달라고 할 정도로 트라우마에 시달렸죠. 그 트라우마가 10년을 가고서야 다시 운전대를 잡을 생각을 하게 되었답니다. 


사실 아이셋을 키우며 운전을 하지 못하므로 제약이 엄청 많았답니다. 저 스스로도 고생스러웠구요. 아이들 어느정도 키워놓고 사실 운전이 제일 필요한 순간은 이미 지난지라 운전을 하지 못하는 것에 익숙해져 버렸지만 다시금 운전을 하지 못하는 불편함이 올라온건 경험할 수 있는 영역치를 좀 더 넓히고 싶은 마음의 소망때문이었습니다. 이것은 저뿐 아니라 아이들에게도 해당이 되는 것이기에 엄마가 이동이 원활하면 아이들의 경험치도 쌓아지지 않을까 싶습니다. 


어쩌면 익숙한건 정체를 뜻하기도 합니다. 정체되지 않기 위해서는 자꾸만 익숙함을 역으로 불편하게 느껴야지 새로운 도약이 가능합니다. 그런면에서 저에게 운전이라는 요소는 큰 도약인 셈이죠. 기능적인면 뿐만 아니라 심리적으로도 저 자신에게 제동을 거는 기제들을 풀어내야 하니깐요.



안전지대를 벗어나는 일은
그저 단순한 시도가 아니라
삶을 변화시키는 유일한 방법 
새로운 경험만이 우리를 더 나은 사람으로 성장시키고 
삶에서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손에 쥘 수 있게 하기 때문



인생은 어쩌면 순간순간 들어 닥치는 두려움을 마주하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 두려움에 얼마나 앞설 수 있고 대응할 수 있는지에 따라 인생의 모양이 사람마다 다를거 같습니다. 두려움은 미지의 영역입니다. 자신에게는 근거가 있는 타당성을 내포하고 있는지는 모르지만 실체는 그저 스스로 떠안고 있는 심리기제일 뿐인 영역이 많습니다. 저 역시 제 안전지대를 지켜내는 것이 저를 방어하는 것이었고 저를 지키는 수단이라 여겼습니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입니다. 안전지대를 고수하는 건 더 나아가지 못하게 합니다. 특히나 자녀를 키우는 부모라면 부모 자신뿐 아니라 자녀들 마저도 안전지대에 놓으려 하기 때문에 아이들에게도 제약이 없지 않습니다.



안전지대에서 벗어나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
그리고 그런 인생을 살지 못하게 하는 건 
당신 자신 말고는 아무것도 없다


우리는 스스로 도전하거나 경험하지 못하는 것에 대해 스스로를 탓하기 보다는 외부적인 요인이나 환경, 그리고 주변인을 탓하기 일쑤입니다. 그렇게 자기방어 수단으로 삼는 것이고 전진하지 않을 구실을 떠넘기는 것입니다. 하지만 삶을 이끌어 나가는 건 순전히 그 삶을 살아가는 자신입니다. 자신의 생각으로 비롯된 행동과 말을 하는 것이죠. 자기 삶에 대한 분명한 주인의식이 있다면 삶에 대해서 도전이라는 요소가 두려움이나 불안보다는 색다른 영역의 한 폭이라 여길수도 있지 않나 싶습니다. 


사람은 안정을 원하면서도 그 안정이 지루함을 느끼는 순간 앞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의지를 내기도 합니다.저 역시 3개월전까지만 해도 새로운 무엇을 시도하는 것에 대한 불안으로 할까말까 고민을 했습니다. 그 고민의 본질은 지금껏 지켜온 안정을 깨고 싶지 않음이었죠. 한마디로 구축하고 있던 안전지대를 벗어나는 것이 두렵기도 하고 귀찮기도 했습니다. 어찌됐던 저는 고! 하기로 마음먹고 3개월이 지난 지금 시점에 이미 그 고민하던 요소는 어느새 안전지대로 자리 잡았습니다. 


안전지대는 이렇게 변할 수 있습니다. 지금 순간 고수하는 안전진대를 벗어나면 큰일이 날거 같지만 그 안전지대 역시 시작점은 불안이었을겁니다.  그 불안을 이겨내고 안전지대를 삼았던 것을 이미 우리는 잊어버리고 맙니다. 그렇게 현실에 안주하게 되는 것이지요. 현실에 안주한다는 것은 더 이상 소망이나 기대가 없다는 반증이기도 합니다. 현실의 안주를 벗어나게 하는 건 그 현실안에서 이질감을 느껴야지만 벗어나려는 애를 쓰게 되어 있습니다. 




어웨이크
어웨이크



지난 삶들을 한번 뒤돌아 보세요. 얼마나 많은 변화가 있었나요? 아니면 지난 시절이나 지금이나 크게 달라진 것이 없나요? 저는 개인적으로 코로나 전후로 굉장히 제 삶의 스펙트럼이 다양해졌습니다. 안전지대를 일삼아 적당히 감당할 만한 선에서 해오던 모든 것을 코로나 이후로 스스로 정체기를 맞으며 충족되지 못한 성취감을 다양한 방식으로 풀어내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한마디로 코로나로 발목이 묶인 것이 불편한 요소가 되었던 거지요. 그 불편함은 견딜만한 것이 아니라 저를 옥죄는 정체감이었기에 어떤식으로든지 성취감을 느끼려 온라인상에서 가능한 모든것을 시도하기 시작합니다. 지금 이 블로그 역시 그 결과 중 하나이구요. 만약 코로나라는 불편함을 그저 견디거나 언젠가 끝나겠지 라며 희망고문만 당하고 있었다면 지금 저는 삶에 대한 후회를 일삼으며 또 돌고도는 패턴을 반복했을지도 모릅니다. 




저에게 코로나는 익숙한 것 과의 결별, 그리고 새로운 것과의 만남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그 이후로 개인적인 성과를 꽤 이루어냈고 눈에 보이는 것 외, 보이지 않는 이면에 정말 큰 변화가 있었습니다. 가장 큰 것은 이렇게 글로 모든 것을 풀어내고 또 그 글을 통해 소통하게 되었다는 점이죠. 저에게 글쓰기는 코로나로 비롯된 불편함을 제거하고 이룩한 성취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더 이상 희망고문에 시달리지 않겠다는 결심이기도 했답니다.  우리는 불편함을 끊어내고 행동하기에 앞서 결심을 먼저 이루어 내야 합니다. '더 이상 스스로에게 발목 잡히지 않겠다'라는 굳은 다짐과 결심은 결국 행동하게 만드니깐요. 





포기는 실패가 아니라 선택사항 중 하나다


우리는 실패에 너무도 연연합니다. 실패를 하고 싶어하지 않고 실패는 곧 패배로 느낍니다. 그렇기에 시작이 더 어려운 것입니다. 그러나 저자의 말처럼 실패가 아닌 포기라고 생각한다면 좀 더 가벼워지지 않을까요? 선택이란 것에는 자유하면서 포기에 대해서는 왜 자유하지 못할까요? 선택과 포기는 동전 양면이나 마찬가지입니다. 무언가 선택을 했다면 무언가 포기를 할 수 있다는 유연함을 가진다면 도전에 대한 마음가짐이 한결 가벼워지지 않을까 싶습니다.  실패는 두려워 할 요소가 아니라 또 다른 선택으로 나아갈 지름길이 된다는 것도 염두해 두면 좋을거 같습니다. 





우리의 삶은 확실성보다는 불확실성을 떠안고 가는 것입니다. 물론 불확실하기에 확실함을 안고자 하는 것이 인간의 욕망이겠지만 그 확실함마저도 시간이 지나고 때가 변하면 불확실로 바뀔수 있는 가변성을 지닌 것이라는 알아야 합니다. 삶에 희노애락이 있는 것 처럼 말입니다. 삶에 희와 락만 있는 것이 아니니깐요. 


중심을 잡기 위해서는 이리저리 중심을 잡으려는 애를 써봐야지 중심잡는 법을 배우기 마련입니다. 불편함 역시 바꿔보려고 노력을 해봐야지 그 불편함에 대해서 배울 수 있고 스스로 그 불편함을 편함으로 바꾸는 방법도 터득하게 됩니다. 이 책에서 저자는 불편한 상황이나 불편함에 자신을 노출을 하라고 합니다. 차라리 안전지대를 고수하느니 그 안전지대를 벗어나는 불편함에 직접 부딪쳐 보라는 것이죠. 무엇이든 부딪혀봐야 깨지는지 안깨지는지 알수있는 법이니깐요. 사실 우리를 가장 불편하게 하는 것은 그 불편함을 고민하는 자신인데 말입니다. 


불가능하다고 증명될 때까지는 모든 것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스스로 불가능하다 여기는 증거를 삼기 전까지 불가능한 것은 없습니다. 불가능하다 느끼는 자신만 있을 뿐이죠. 불가능하다 여기는 것은 자신에게 한계를 긋는 것과 같습니다. 한계를 느끼지 않는 한 인간에게 한계는 없습니다. 역시나 한계가 있다고 여기는 스스로가 있을 뿐이죠. 스스로 한계치를 적용시키면 그 이상 발전하지 않습니다. 스스로 암시를 거는데 뇌라고 별수가 있나요. 주인이 그어준 한계점을 지켜나갈 뿐.



자기 자신을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것에 자신을 노출해야 한다는 것이다


여러분을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에너지는 무엇입니까? 그리고 여러분을 머물게 하는 에너지 역시 무엇입니까? 같은 에너지를 가지고도 내 사고에 따라 천지차이로 삶이 달라집니다. 스스로 한계를 구분짓지 말고 무한계 인간으로 지음 받은 자로서 전진하며 나아가는 여러분의 삶이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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