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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주 Sep 13. 2021

단순한 진심

소설 <단순한 진심>을 읽었다. 제목만으로는 내용이 전혀 짐작이 되지 않았다. 작가의 이력을 보니 꽤 전도유망한 작가인 듯 하다. 작가의 이력만으로도 읽어볼 만 하지 싶다. 전체적인 문체는 담담한 듯 다큐를 한편 보는 느낌이었다. 주제가 입양이기에 다큐라는 느낌에 가까웠을 지도 모른다. 한창 이슈가 되던 ‘정인이 사건’과 겹치며 입양에 대해서 진진하게 고민하게 되는 계기도 되었다.


입양은 나에게 다른 세계의 이야기였고 타인의 알지 않아도 되는 영역이었다. 사실 작은아버지네가 오랜 시간 아이가 생기지 않아 결혼한지 15년이 넘어서야 갓 태어난 아이를 혈액형을 맞춰 입양을 했었다. 그 아이가 스무 살이 되었을 때 작은아버지네 내외께서 이혼하셨다. 작은엄마가 입양한 아들을 만나지도 않는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으며 키운 정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은 있다. 키운 정과 낳은 정이 이렇게 쉽게 구분될 수 있는 건 핏줄 탓일까? 그 아이는 작은 엄마가 그립지 않을까? 보고 싶지 않을까? 괜스레 질문이 떠오른다. 이혼 후 그 아이와 같이 살던 작은 아버지는 지병으로 일찍 돌아가시며 전 재산을 그 아이에게 물려주었다고 한다. 그 아이 생각을 하면 참 다행이다 싶다.


‘정인이 사건’도 이야기를 안할 수가 없다. 입양이라는 제도가 가진 가장 치명적인 파국이 아닌가 싶다. 남의 아이를 키운다는 건 가장 어려울 수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가장 쉬울 수도 있음을 이 사건을 통해 알 수 있다. 인간이 가질 수 있는 모든 감정을 쏟아내도 어떠한 죄의식도 느끼지 않을, 내가 낳지 않은 아무런 연고도 없는 아이는 그저 소유물에 불과하다는 걸 여실히 보여준 사건이 아닐 수 없다. 인간의 가장 극악함을 아이를 키우는 엄마라는 사람이 보여준 사건.


다행히 소설 속 주인공은 버려졌는지 잃어버렸는지 끝까지 알 수는 없지만 잃어버린 아이를 데려다 키운 기관사 아저씨 덕에 따뜻함의 정체성은 얻을 수 있었다. 소설에서 그려진 기관사 아저씨에 대한 서운함이나 아쉬움이 독자로서는 내심 아쉽기는 하지만 주인공 입장에서 충분히 가질 수 있는 감정이라 생각한다.


입양 소설을 읽고 나니 한 사람의 정체성이 무엇인지 새삼 궁금해졌다. 정상적인 가정에서 태어나 부모님 아래에서 자연스레 얻게 되는 한 인간으로서의 정체성이 얼마나 큰 안정감을 주는지도 알게 되었다. 그런 의미에서 주인공은 그 정체성의 혼란으로 삶이 안전하지는 못했겠구나 싶다. 아마 홀몸이 아닌 채로 자신의 뿌리를 찾기 위해 주인공에게는 타국일 수 있는 한국에 온 것은 자신의 정체성을 찾고 싶어서 일거다. 한 아이를 잉태할 예정인 주인공에게 자신의 정체성을 찾는 것은 곧 태어날 아이의 정체성이 확립되는 기초가 될 수도 있으니 말이다.


버려지고 키워지고 기관에서 보호를 받고 외국으로 입양되는 그 과정 속에 입양아에 대한 배려나 존중은 기관사 아저씨 말고는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독자로서 기관사 아저씨에 대한 부분이 이 소설의 핵심이라 여긴다. 마지막 기관사의 딸 마저 그 따뜻함을 주인공에게 전해주고 있으니 말이다.

단순한 진심

역시 사람에게는 따뜻함 이라는 사랑만 전해주고 받을 수 있다면 입양이라는 꼬리표가 붙을 지 언정 살만하고 살아가지는 이유가 아닐까 싶다.


마지막까지 제목이 왜 단순한 진심인지 알 수 없었는데 이렇게 서평을 쓰다 보니 알겠다. 결국은 사랑인 거다. 사랑이라는 가장 단순한 진심 말이다. 주인공 문주가 문주일 수 있고 살아갈 수 있었던 건 문주라는 이름을 붙여주고 사랑으로 키워준 기관사 아저씨 덕인 거다. 그 이상 다른 건 없다.




*글쓰기 강좌에서 서평 쓰기 과제로 써 본 글 올린거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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