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을 앞두고 엄마에게 불효를 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아빠가 원망스럽던 날
우리 세 식구는 단 한 번도 떨어진 적이 없었지만 이렇게 하루종일 함께 많은 시간을 보낸 적도 없었다. 그만큼 마찰도 많았고 추억도 많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의 시간이 우리 세 사람에게는 가장 애틋했고 소중했던 시간이 아니었을까 생각이 든다.
가게를 오픈한 지도 어느덧 2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그만큼 꽤나 많은 돈도 벌어서 먹고 싶으면 먹을 수 있고 사고 싶으면 살 수 있을 정도가 되었지만 평생을 아끼며 살았던 것이 몸에 베여서인지 우리는 돈을 쓸 줄도 몰랐다. 아니 너무 힘들게 번 돈이라 쓰지 못했는지도 모르겠다. 11시에 퇴근을 하고 오는 길에 치킨을 한 마리를 시켜놓고 집에 도착해서 맥주 한잔과 그 치킨을 하나 들고 뜯는 낙으로 하루를 버티고 또 힘을 냈다.
이제 김밥집도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았으니 미루었던 결혼준비가 시작되었다. 스물여덟의 어느 초 여름날, 남자친구의 집에 인사를 다녀왔다. 나와는 다른 세상에서 살던 사람인 듯이 으리으리하게 큰 집과 교양이 넘치는 부모님 두 분이셨다. 그 아우라에 이미 기가 죽고 쪼그라들었던 나였다.
사실 결혼 이야기가 오가기 훨씬 전부터 그의 부모님은 내 학벌과 집안 환경까지 모든 게 마음에 들지 않으셨다. 아마도 헤어지길 바라셨을 것이다. 이해한다. 어느 부모가 좋아하겠는가. 아들이 좋다고 하니 어쩔 수 없이 허락한 듯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만약 내 눈의 상태까지 말씀을 드린다면.. 아마도 모든 것이 물거품이 될 것이 뻔했다. 그것을 예상한 남자친구는 눈만큼은 비밀로 하자고 했다.
가난해도 숨길줄 모르고 고졸이라는 학력마저도 떳떳했던 나도 눈에 관해서는 자신이 없었다. 그 누구에게도 절대 들키고 싶지 않았고 아무도 모르는 곳에 깊숙이 꽁꽁 싸 메어 놓고 싶었다. 한편으로는 어차피 알게 될 거라면 차라리 처음부터 말씀드려야 하는 게 맞지 않냐고 생각을 하면서도 이내 자신감을 잃고서는 이 모든 고민마저도 나중으로 미루곤 했다.
그러던 중 시간이 흘러 어느덧 상견례날짜가 되었다. 아빠의 빈자리는 오빠가 채워주었지만 식사를 하는 내내 죄인처럼 앉아 계시던 엄마의 모습이 아직도 마음이 쓰라린다.
"외람된 말씀이지만 이혼은 왜 하셨나요?"
"아.. 그게.."
아버님의 뜻밖의 질문이었다. 당황한 엄마는 아무 말도 잇지 못하셨다.
그동안의 삶의 고통과 시련, 그리고 피나는 노력을 '이혼'이라는 단어 하나로 그 모든 것을 짓밟히는 듯했다.
"제가 말씀드릴 꼐요. 두 분의 성격 차이도 있었고 여러 가지 사정이 있어서 이혼하셨습니다."
엄마를 대신해서 오빠가 말을 이었다.
순식간에 분위기는 더 엄숙해졌다. 남자친구도 당황을 했고, 나 역시 마음이 아팠다.
집에 돌아온 오빠는 화도 나고 속상했지만 동생의 결혼을 앞두고 어찌할 줄을 몰랐던 것 같다. 불같은 성격임에도 꾹 참았던 모양이다.
나는 살면서 단 한 번도 아빠라는 사람을 원망해 본 적이 없다. 아빠가 집을 나갔을 때도 그렇고 공락금을 내지 못할 때도, 대학을 가지 못했을 때도 원망 같은 건 하지 않았다. 모든 것이 내 운명이라 받아들이고 열심히만 살면 그러면 되는 거라 생각했었다.
하지만 상견례자리에서 엄마가 한없이 작아지는 모습을 보니, 아빠라는 사람이 너무 원망스러웠다. 평생을 아들과 딸을 위해 열심히 일만 했고 자식만을 바라보며 살았던 엄마의 삶에 대한 대가가 이런 걸까? 왜 엄마가 죄인처럼 추궁을 받아야 하는 거지? 왜 저분은 우리 엄마에게 그런 질문을 하시는 걸까? 도대체 왜?
나에게 아빠라는 존재보다 엄마에게 남편이라는 존재가 있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이렇게 혼자서 외나무다리에 서 있는 사람처럼 위태롭지는 않았을 텐데.. 얼마나 불편하고 도망가고 싶으셨을지.. 마음이 너무 아팠다. 이렇게 엄마에게 상처를 주면서까지 이 결혼을 계속하는 게 맞는 건지 죄책감마저 들었다.
사실은 질문부터가 잘못되었던 것이다. 그런 자리에서 할 질문이 아니지 않나? 그때만 해도 바보같이 모든 걸 당연하다고만 생각하고 단 한마디도 하지 못했던 나에게 실망스럽기도 하다. 좀 더 당당했더라면.. 가난과 이혼, 학벌, 그리고 시력마저도 모든 것이 그 누구의 잘못도 아닌데.. 왜 우리는 그렇게 죄인같이 앉아있었는지.. 그때로 다시 돌아간다면 훨씬 당당해질 것 같다. 누구보다 열심히 살았노라며 우리 엄마에게 더 이상 상처 주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나는 그렇게 결혼을 앞두고 엄마에게 불효를 해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