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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사탕 Jan 29. 2023

결혼을 앞두고 엄마에게 불효를 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아빠가 원망스럽던 날

우리 세 식구는 단 한 번도 떨어진 적이 없었지만 이렇게 하루종일 함께 많은 시간을 보낸 적도 없었다. 그만큼 마찰도 많았고 추억도 많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의 시간이 우리 세 사람에게는 가장 애틋했고 소중했던 시간이 아니었을까 생각이 든다.



가게를 오픈한 지도 어느덧 2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그만큼 꽤나 많은 돈도 벌어서 먹고 싶으면 먹을 수 있고 사고 싶으면 살 수 있을 정도가 되었지만 평생을 아끼며 살았던 것이 몸에 베여서인지 우리는 돈을 쓸 줄도 몰랐다. 아니 너무 힘들게 번 돈이라 쓰지 못했는지도 모르겠다. 11시에 퇴근을 하고 오는 길에 치킨을 한 마리 시켜놓고 집에 도착해서 맥주 한잔과 그 치킨을 하나 들고 뜯는 낙으로 하루를 버티고 또 힘을 냈다.




이제 김밥집도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았으니 미루었던 결혼준비가 시작되었다. 스물여덟의 어느 초 여름날, 남자친구의 집에 인사를 다녀왔다. 나와는 다른 세상에서 살던 사람인 듯이 으리으리하게 큰 집과 교양이 넘치는 부모님 두 분이셨다. 그 아우라에 이미 기가 죽고 쪼그라들었던 나였다.



사실 결혼 이야기가 오가기 훨씬 전부터 그의 부모님은 내 학벌과 집안 환경까지 모든 게 마음에 들지 않으셨다. 아마도 헤어지길 바라셨을 것이다. 이해한다. 어느 부모가 좋아하겠는가. 아들이 좋다고 하니 어쩔 수 없이 허락한 듯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만약 내 눈의 상태까지 말씀을 드린다면.. 아마도 모든 것이 물거품이 될 것이 뻔했다. 그것을 예상한 남자친구는 눈만큼은 비밀로 하자고 했다.



가난해도 숨길줄 모르고 고졸이라는 학력마저도 떳떳했던 나도 눈에 관해서는 자신 없었다. 그 누구에게도 절대 들키고 싶지 않았고 아무도 모르는 곳에 깊숙이 꽁꽁 싸 메어 놓고 싶었다. 한편으로는 어차피 알게 될 거라면 차라리 처음부터 말씀드려야 하는 게 맞지 않냐고 생각을 하면서도 이내 자신감을 잃고서는 이 모든 고민마저도 나중으로 미루곤 했다.



러던 중 시간이 흘러 어느덧 상견례날짜가 되었다. 아빠의 빈자리는 오빠가 채워주었지만 식사를 하는 내내 죄인처럼 앉아 계시던 엄마의 모습이 아직도 마음이 라린다.


"외람된 말씀이지만 이혼은 왜 하셨나요?"


"아.. 그게.."


아버님 뜻밖의 질문이었다. 당황한 엄마는 아무 말도 잇지 못하셨다.

그동안의 삶의 고통과 시련, 그리고 피나는 노력을 '이혼'이라는 단어 하나로 그 모든 것을 짓밟히는 듯했다.


"제가 말씀드릴 꼐요. 두 분의 성격 차이도 있었고 여러 가지 사정이 있어서 이혼하셨습니다."


엄마를 대신해서 오빠가 말을 이었다.


순식간에 분위기는 더 엄숙해졌다. 남자친구도 당황을 했고, 나 역시 마음이 아팠다.



집에 돌아온 오빠는 화도 나고 속상했지만 동생의 결혼을 앞두고 어찌할 줄을 몰랐던 것 같다. 불같은 성격임에도 꾹 참았던 모양이다.



나는 살면서 단 한 번도 아빠라는 사람을 원망해 본 적이 없다. 아빠가 집을 나갔을 때도 그렇고 공락금을 내지 못할 때도, 대학을 가지 못했을 때도 원망 같은 건 하지 않았다. 모든 것이 내 운명이라 받아들이고 열심히만 살면 그러면 되는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상견례자리에서 엄마 한없이 작아지는 모습을 보니, 아빠라는 사람이 너무 원망스러웠다. 평생을 아들과 딸을 위해 열심히 일 했고 자식만을 바라보며 살았던 엄마의 삶에 대한 대가가 이런 걸까? 왜 엄마가 죄인처럼 추궁을 받아야 하는 거지? 왜 저분은 우리 엄마에게 그런 질문을 하시는 걸까? 도대체 왜?



나에게 아빠라는 존재보다 엄마에게 남편이라는 존재가 있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이렇게 혼자서 외나무다리에 서 있는 사람처럼 위태롭지는 않았을 텐데.. 얼마나 불편하고 도망가고 싶으셨을지.. 마음이 너무 아. 이렇게 엄마에게 상처를 주면서까지 이 결혼을 계속하는 게 맞는 건지 죄책감마저 들었다.



사실은 질문부터가 잘못되었던 것이다. 그런 자리에서 할 질문이 아니지 않나? 그때만 해도 바보같이 모든 걸 당연하다고만 생각하고 단 한마디도 하지 못했던 나에게 실망스럽기도 하다.  좀 더 당당했더라면.. 가난과 이혼, 학벌, 그리고 시력마저도 모든 것이 그 누구의 잘못도 아닌데.. 왜 우리는 그렇게 죄인같이 앉아있었는지.. 그때로 다시 돌아간다면 훨씬 당당해질 것 같다. 누구보다 열심히 살았노라며 우리 엄마에게 더 이상 상처 주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나는 그렇게 결혼을 앞두고 엄마에게 불효를 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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