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년후견인이 뭐길래
생각지도 못했던 편지 한 통
잊고 살았다. 결혼하기 전까지는 엄마와 오빠만이 내 가족이었고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없었다. 우리 셋은 그렇게 잘 살아냈고 앞으로도 그 굳은살로 잘 살아가면 되는 것이었다. 아빠라는 존재는 이미 내 마음속 깊은 곳에 무덤처럼 단단히 굳어져있었다. 더 이상 애타게 기다리거나 궁금하지도 않았다.
어찌 보면 차라리 잘된 것일지도 모르겠다. 아빠랍시고 수시로 들락거려서 모아놓은 돈을 홀랑홀랑 가져가 버렸다면.. 지금의 우리는 없을 테니 말이다. 아니면 반대로 우리가 자기의 돈을 파먹는다고 생각해서 혼자 벌고 혼자 쓰고 살았는지도 모르겠다. 이제는 돌아온다고 해도 겁이 날 정도다. 어떤 모습일지.. 상상하고 싶지도 않다. 그를 위해 흘린 내 눈물이 억울할 뿐이다.
4년 전쯤이었나? 아이들을 유치원에 데려다주고 오는 길이었다. 아파트 입구에 있는 편의점에서는 곧 다가올 빼빼로데이를 맞아 예쁘게 포장된 빼빼로 과자들을 진열해 놓은 작업이 한창이었다. 흐뭇하게 바라보며 아이들에게 하나씩 사줘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집으로 들어섰다.
평소와 다름없이 빨래를 세탁기에 안에 넣고 있는데 갑자기 누군가 문을 두드렸다.
"본인 맞으신가요? 싸인 부탁합니다."
하얀 봉투의 등기가 왔다. 발송인은 수원의 주민센터였다. 수원은 나와는 아무 상관이 없는 곳인데 도대체 무슨 일인가 싶어서 봉투를 뜯어보았다. 집중해서 천천히 한 글자씩 읽어보았다.
'성.. 년... 후.. 견.. 인.. 개.. 시..?'
어쩌고 저쩌고 글이 너무 길었다. 눈이 아파왔다. 심지어 여러 장이라 읽는 것을 포기했다. 나중에 남편이 오면 읽어달라고 해야겠다며 봉투에 다시 넣어서 식탁에 무심히 올려두었다.
식탁에 앉아 점심을 먹을 때도 내 눈은 봉투에 가 있었다. '성년이 뭐 어쨌다는 거지? 도대체 뭐지?' 결국 네이버에 검색을 해보았다. '성년후견인'이라고 치자 곧바로 '금치산자'라는 글자가 눈에 띄었다.
'어? 금치산자라 하면.. 학교에서 수업시간에 배웠던 그 금치산자란 말인가? 의사결정이 불가능 한 사람.. 그리고 그 사람을 대신할 가족이 있어야 한다는?'
설마 하며 다시 봉투를 꺼내보았다. 중간 즈음에 그 사람의 이름이 보였다. 아빠라는 이름이 불려도 아무렇지 않을 만큼 단단히 굳은 줄 알았는데.. 갑자기 심장이 쿵쾅쿵쾅 뛰기 시작했다. 손도 벌벌 떨렸다. 얼음처럼 차가워진 손으로 오빠에게 전화를 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