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젠 정말 안녕.
가여운 그대의 삶을 위로하며..
단단하게 굳은 줄 알았던 심장 속에서도 아빠라는 존재는 조용히 잠을 자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이제 막 잠에서 꺠어난 듯 힘차게 뛰는 심장을 느꼈다. 그 이름 석자에 내 온몸에 숨어있던 유전자가 발버둥을 치는 듯했다.
내 기억 속에는 몇 장 안 되는 장면들로 그가 남아있다. 글씨를 잘 썼고 토끼그림을 그럴듯하게 잘 그렸었다. 내가 사달라고 하면 비비탄총도 자전거도 기어이 사주고 말았다. 시장에서 사 온 양미리 한 두름을 연탄불에 구워서 신문지 위에 펼쳐 놓고 호호~ 불어가며 살을 발라주기도 했다. 무엇을 만드는 건지는 몰라도 모나미 볼펜 하나를 귀뒤에 끼워두고는 합판을 이리저리 톱으로 자르고 대패질을 하던 모습이 내가 기억하는 유일한 아빠의 모습이다.
종이에 적힌 이름 석자가 스위치라도 되는 듯, 두 눈으로 확인하는 순간 이 모든 장면들이 내 머릿속에 펼쳐졌다. 지금껏 힘들게 살아온 억울한 시간은 온데간데 없어지고 어린 시절의 내가 되어 그 가운데에 서 있었다. 정신을 차려야 했다. 눈물만큼은 흘리고 싶지 않았다. 내가 울어야 할 이유가 없었다. 입을 꾹 다물고 참아내려 애를 썼다.
오빠에게도 같은 내용의 등기가 온 상태였다. 서류상으로는 정확한 내용을 알 수가 없었고 결국 오빠는 수원의 주민센터에 문의를 했다.
돌아온 답변은.. '뇌사'와 '식물인간'.. 그러니까 죽은 사람이나 다름없다고 했다. 제주도의 어느 공사현장에서 일을 하다가 낙상을 했다고 했고 그 일로 머리를 다쳐서 깨어날 수 없는 상태라고 했다.
가뜩이나 흐렸던 내 눈앞이 뿌옇게 차올라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뜨거운 눈물이 두 뺨에 닿기도 전에 소매 끝으로 얼른 닦아냈다. 전화 한 통도 없던 사람이 아닌가. 도대체 왜 그동안 우리를 찾지 않았냐고 묻고 싶었다. 하지만 이젠 그런 질문에 답을 해줄 사람이 없었다. 이제 와서 어쩌란 말인가. 우리가 얼마큼 힘들었는지 얼마나 애타게 기다렸는지 조차도 따질 곳이 없어져버렸다.
겨우 이 정도로 살려고 25년을 그렇게 모르는 사람처럼 살았던 것인가? 고작 종이 한 장에 이름석자만 덩그러니 실어서 이제야 아들이라고, 딸이라고 찾아온 것인가? 그럴 거면 잘 살았어야지.
기름보일러에 기름을 채우지 못해 차디찬 냉바닥에서 자야 했던 그 순간에도 그 사람은 우리 곁에 없었다. 내가 결혼을 할 때도, 시각장애인이 되는 그 순간에도 그 사람은 흔적조차 없었다. 그런 그를 앞으로 우연히 만나더라도 차갑게 뒤돌아서겠다고 다짐했었다.
그러니 분명 내 생각대로라면 절대로 슬퍼서는 안 되는 일이다. 울어서도 안되고 아무렇지 않아야 하는 게 맞다. 이미 우리는 남이 아닌가? 피는 물보다 진하다고들 하지만 이미 우린 굳어버린 핏딱지보다도 못한 사이 아닌가
그럼에도 흐르는 눈물은 무엇인가? 우리를 떠났음에도 잘 살지 못한 그 삶이 가여웠다. 혼자서 잘 먹고 잘 살겠다고 집을 나가놓고 아들, 딸에게 당당히 나타나지 못하는 그 삶이 한없이 초라했다. 단 한 번이라도 우리를 위해 찾아와 줬더라면.. 많이 그리워했다며 전화 한 통이라도 해줬더라면... 적어도 혼자는 아니었을 텐데 말이다.
아무리 마지막이라고 할지라도 나는 그 사람 곁에 머물지 않을 것이다. 내가 생각하는 가족은 힘들 때나 즐거울 때나 언제나 함께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어떻게 살았는지. 또 어떻게 이겨냈는지 조차도 모르는 사람이다. 나 역시 그 사람이 어디서 어떻게 살아왔는지 알 수 없다. 내 옆엔 엄마와 오빠가 함께 있었고 여전히 함께 하고 있다. 또 앞으로도 함께 할 것이다. 나는 그런 엄마에게 두 번다신 같은 상처를 주고 싶지 않을 뿐이다. 누군가 나에게 독하다고 욕을 해도 어쩔 수 없다. 독하지 않으면 살아 낼 수도 없었으니까.
미워도 미워할 수 없는 존재.
그렇다고 그리워할 수도 없는 존재로..
그 어떤 이유도 모른 채 아무런 말이 없는 그대여..
당신의 마지막이 가여워 뜨겁게 차오르는 내 눈물 속에서 영원히 잠들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