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든 내 손에 쥐고 나면 별것 아닌 것들이 그것을 가지기 전까지는 그렇게 애가 타게 되는 모양이다.
어릴 적 방바닥에 엎드려서 틈만 나면 그렸던 상상 속의 내 방이 생각이 난다. 작은 네모를 그리고 그 안에 방문과 창문, 그리고 침대와 책상, 장롱까지 그려 넣고는 그것만으로도 마냥 즐거워했었다. 물론 실제의 방이었다면 더할 나위 없이 행복했겠지? 아니다. 원래부터 내방이 있었다면 그 간절함과 애틋함을 몰랐을 테다.
옥탑방에서도 그 마음은 여전했다. 크지 않아도 좋고 예쁘지 않아도 좋으니 그냥 내 방이라고 할 수 있는 공간만이라도 생겼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다. 그깟 방이 뭐라고 나는 왜 29년 동안 미련을 버리지 못한 걸까?
결국에는 간절히 원하면 이루어진다는 말은 틀리지 않았다. 아직은 겨울 냄새가 남아있던 2011년 2월의 어느 날, 결혼을 3개월 앞두고내 소망은 이루어졌다. 그동안 우리 가족이 김밥집에서 모았던 돈으로 작은 아파트를 계약하고 이사를 하게 되었다. 방이 세 개나 있었고 언제 씻어도 따뜻할 것만 같은 욕실과 네모 반듯한 거실, 그리고 깨끗한 주방이 있었는데, 베란다의 커다란 창문에 비친 햇빛마저도 아름다워 보였다. 무엇보다도 내 방이 생겼다는 것이 가장 중요하고도 특별했던 순간이었다.
우리는 이 모든 일들을 역전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또한 우연이라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가 잘살고 싶어 하는 마음은 항상 같았다. 배고픔이 싫었고 추위에 벌벌 떠는 것이 싫었다. 내리막은 쉬워도 오르막은 언제나 힘든 법이다. 아무리 애를 쓰고 발버둥을 쳐봐도 한 발짝 딛기가 힘들고 무거운 것은 틀림이 없었다.
누구에게나 삶은 오르막과 내리막의 연속이다. 오르지 않으면 내리막인 줄도 모른다. 아무리 힘든 오르막이라고 할지라도 누군가 함께 걸어주는 사람이 옆에 있고, 가끔 지쳐서 주저앉을 때도 손을 내밀어 잡아주며 목이 마를 땐 내 몫의 물이라도 함께 나눠 먹을 수만 있다면 그 힘만으로도 얼마든지 오르막을 오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지나온 길을 되돌아보면 가난한 만큼 많이 외롭고 힘들었다. 배고픈 사람이 배고픔을 알고 아파본 사람이 그 아픔을 알 수 있는 것처럼 우리는 서로의 고통을 누구보다도 더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함께여야 했고 더더욱 열심히 살아내야만 했다.
나는 감히 말한다. 내 삶의 재산은 '가난'이었노라고..
이제는 가난이 만들어준 굳은살 덕분에 시각장애인으로서 살아가는데 웬만한 자극과 아픔은 나에게 고통으로 다가오지 않는다.
물론 매일매일을 작별하며 아쉬움으로 보내는 날이 점점 더 많아질지는 모르겠다. 희미한 불빛마저도 허락되지 않을 순간은 오겠지? 그때마저도 나는 절망하지 않을 것이다. 나에게는 지나온 흔적과 추억이 남아있고 여전히 이 아름다운 세상을 들을 수 있고 느낄 수도 있으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