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 생활기] #13- 일본 맥주 이야기

by John


토리아에즈 나마! (우선 생맥주세요!)


메이지유신(明治維新_1868년 시작) 이후 일본의 외교 사절단(이와쿠라 사절단)은 1871년부터 1873년까지 약 2년 동안 미국·영국·프랑스·벨기에·네덜란드·독일·러시아·덴마크·스웨덴·이탈리아·오스트리아·스위스 등 구미 선진 국가를 공식적으로 방문하였으며 각국의 제도와 문물을 적극적으로 조사했다. 그중에서도 일본은 독일(프로이센)을 가장 강하게 모방하게 되었다는 역사적 기록이 남아 있는데, 그 이유에는 몇 가지 역사적·정치적 이유가 있다.


당시 프랑스는 나폴레옹 몰락 이후 영향력이 감소, 영국은 입헌군주제와 의회 중심이라 일본이 제도를 채택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었고, 이에 따라 독일(프로이센)식 입헌군주제가 일본의 사정에 더 어울린다는 결론을 내리게 된다. 동시에 일본은 메이지 헌법을 만들기 위해 독일(프로이센)을 더욱 집중적으로 시찰했고, 특히 독일 법학자 루돌프 폰 괴네(Rudolf von Gneist) 등에게 헌법 자문을 받아 참고했으며 독일(프로이센) 군제를 모델로 일본군을 창설했다.


일본이 독일(프로이센)을 동경하고 따라한 이유는 단순히 강해서가 아니라, 당시의 일본이 바라보길 '강력한 국가'와 '근대적인 제도'를 절충할 수 있는 이상적인 모델이었기 때문이다. 특히 천황 중심의 국가 정체성을 유지하면서도, 서구식 법률과 군대를 도입하고 싶었던 일본에게 독일(프로이센)은 가장 현실적인 모범이었던 것이다. 뿐만 아니라 도시계획, 현대 문화의 전반, 섬세한 기술력 등 모든 국가 재건에 필요한 모티브와 영감을 독일로부터 받고 있었다고 한다.


글 제목은 맥주인데 갑자기 왜 독일과의 관계를 이야기 하나 싶겠지만, 이후부터 나올 맥주 이야기에 이런 역사적 배경과 '일본인들의 독일에 대한 동경'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제부터는 맥주이야기다.

일본 맥주가 맛있는 이유는 독일 맥주의 전통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다고 전해진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앞서 언급한 메이지유신을 통한 문화 수용의 단계에서, 일본의 주요 맥주 회사들이 독일 맥주 문화와 기술의 영향을 크게 받았기 때문이고, 현재도 일본을 대표하는 맥주 브랜드(아사히, 기린, 삿포로 등)의 초창기 역사를 살펴보면 독일 출신 양조사를 통한 독일식 맥주 제조 기술의 도입이 지금의 일본 맥주 시장에 큰 영향을 주었기 때문이다. 참고로 일본은 특히 독일식 라거(Pilsner/Pils) 스타일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였다. 독일은 1516년에 제정된 맥주순수령(맥주는 물, 보리, 홉, 효모만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법)에 따라 맥주만큼은 원료와 제조과정에서 어떠한 부정도 없이 만들어야 한다는 '장인정신'을 고수해왔다고 한다.


당연히 일본도 이 전통에 영향을 받아 부속 첨가물보다는 정통 원재료 중심의 제조법을 선호하고 유지해 왔다. 물론 최근에는 일본에도 다양한 스타일의 맥주가 나오고 있고, 저렴한 가격의 유사 맥주인 발포주(発泡酒)의 시장도 점점 커지고 있지만, 기본적인 품질 중심 철학의 맥주 생산은 독일에서 배운 것이라 할 수 있다.

요약하자면, 지금의 일본 맥주가 맛있는 건 단순히 '일본의 기술력' 때문만이 아니라, 메이지유신 이후 독일에서 배운 맥주 제조 기술과 철학이 뿌리 깊게 전해졌기 때문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일본의 이자카야에 가면 메뉴판을 훑어보기도 전에 대부분의 손님들이 마스터에게 요청하는 말이 있다.

'토리아에즈 나마! (우선 생맥주세요!)'

이렇게나 일본인들의 맥주 사랑은 참 대단하다.


맥주와 발포주


위에 앞서 잠시 언급했지만, 일본은 맥주와 발포주(発泡酒) 시장을 구분한다.

일본은 '발포주 시장'이 맥주와는 별개로 따로 존재할 정도로 그 수요층이 두터우며, 종류 또한 무척 방대하다.

물론 아무리 일본에서 만든 발포주지만 일본인들도 맛있어서 먹는 게 아니라, 막상 입에 넣으면 맥주와 비슷하게 맛이 나고 비슷한 수준으로 취하면서도 가격이 맥주보다는 상대적으로 저렴하기 때문에 찾는 것이다.


맥주와 발포주의 주요 차이점

맥주와 발포주는 겉보기에는 유사하지만, 법적 정의와 원재료 구성, 제조 방식, 세금 체계 등 여러 측면에서 본질적인 차이를 가진다.

맥주 - 맥주는 일반적으로 맥아(몰트), 홉, 물, 효모를 기반으로 한 전통적 제조방식을 따르며, 대부분 국가에서 맥아 함량이 일정 기준 이상일 때에만 맥주로 분류된다. 예를 들어 일본에서는 맥아 함량이 25% 이상이어야 맥주로 인정되며, 한국에서는 이 기준이 10%로 상대적으로 낮다.


발포주 - 발포주는 맥아 함량이 기준치에 못 미치거나, 맥아 외에 옥수수 전분, 쌀, 당류 등 값싼 대체 원료를 포함한 알코올음료를 말한다. 일본과 한국 모두 발포주는 맥주에 비해 낮은 세율이 적용되어 가격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 이러한 가격 차이는 곧 소비자 선택에 실질적인 영향을 미친다. 발포주는 맛과 향에서 정통 맥주에 비해 다소 가볍고 탄산감 위주로 구성되는 경향이 있으며, 풍미의 깊이나 홉 특유의 쌉쌀한 맛은 상대적으로 약하다. (우리나라에는 최근에 등장한 필라이트가 한국 발포주 시장에서 혼자 활약하고 있다.)

다시 말하면, 한국맥주는 한국에서나 맥주로 인정받지, 일본에 간다면 맥주로 인정받지 못하고 발포주 시장에서 경쟁해야 하는 수준이라는 것이다.


일본 맥주 시장에서 발포주의 포지션

일본은 1980년대 후반까지 맥주가 주류 시장의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했으나, 1990년대 중반 이후 주세 인하 목적의 상품 개발이 본격화되면서 발포주의 비중이 급격히 증가했다. 1994년 산토리가 맥아 함량을 줄인 ‘발포주’를 출시하면서부터, 일본 정부의 주세 체계에 대응하는 ‘세금 전략형’ 제품들이 줄줄이 등장하게 되었고, 시장에서는 가격 대비 만족도를 내세운 제2, 제3의 맥주 카테고리가 빠르게 성장했다.

이러한 배경에는 일본의 높은 맥주 주세율이 자리 잡고 있다. 일본에서는 알코올 도수와 원재료 구성에 따라 주세가 정해지며, 맥아 함량이 높을수록 높은 세율이 부과된다. 이에 따라 제조사들은 맥아 함량을 25% 미만으로 낮추거나, 맥아를 아예 제외하고 콩단백, 전분, 스피릿 등을 사용해 새로운 카테고리를 만들어냈다.


현재 일본 맥주 시장은 세 가지 층으로 구성되어 있다.

전통적인 ‘제1의 맥주’(25% 이상 맥아 사용), 발포주에 해당하는 ‘제2의 맥주’, 그리고 맥아를 완전히 배제한 ‘제3의 맥주’(신장르)가 그것이다. 대표적으로 기린의 ‘淡麗(탄레이)’, 산토리의 ‘金麦(킨무기)’, 아사히의 ‘クリアアサヒ(클리어 아사히)’는 제2·3의 맥주를 대표하는 브랜드다. 이러한 제품들은 전통 맥주에 비해 평균 30~40% 저렴한 가격을 유지하며, 대중성 중심의 마케팅 전략과 함께 현재까지도 일정한 소비자층을 확보하고 있다.


한국 맥주 시장에서 맥주와 발포주의 종류

한국의 맥주 시장 역시 일본과 유사하게 발포주가 존재하지만, 분류 및 소비 방식에서는 차이를 보인다. 한국의 주세법상 맥주는 맥아 함량이 10% 이상인 제품을 의미하며, 그 미만일 경우 ‘기타 주류’로 분류된다. 즉, 한국에서는 맥아 함량 10~25%의 발포주도 일반 맥주와 동일한 맥주로 분류되므로, 일본처럼 법적으로 발포주를 별도로 엄격히 구분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실질적으로는 제조 원가와 사용 원료의 차이에 따라 소비자들은 맥주와 발포주를 구별해 인식하고 있다.


한국의 발포주는 ‘가볍고 저렴한 대안’으로서 기능한다. 피츠, 필굿은 제조 원가 절감과 소비자 접근성 강화를 위해 맥아 함량을 낮추거나 부재료를 적극 활용한 상품이다. 이러한 제품들은 대체로 맥주보다 탄산감이 강하고, 깊은 풍미보다는 청량감과 경쾌한 목 넘김에 초점을 맞춘다.


현재 한국 맥주 시장은 대형 라거 계열이 주를 이루며, 대표 브랜드로는 카스, 테라, 클라우드, 하이트 등이 있다. 이 중 클라우드는 다른 국산 맥주보다 풍미가 깊고 진하다는 평을 받는다. 이는 클라우드가 100% 맥아를 사용하고, 무여과 방식으로 제조된다는 점에서 기인한다. 대부분의 국산 맥주가 전분, 옥수수, 쌀 등 부재료를 혼합하고 여과 과정을 통해 깔끔하고 가벼운 맛을 추구하는 반면, 클라우드는 독일식 맥주순수령을 참고한 전통 방식으로 ‘진한 맛’을 강조하며 다른 제품들과 차별화를 시도했다.


클라우드는 기분 탓이 아니라, 실제로 제조 과정에서 '맛있게 만들어진 맥주'이다.

이상한 주세법의 구조 탓에 클라우드가 다른 맥주들보다 단가가 조금이라도 더 높기 때문에 술집에서는 잘 보기 어렵지만 클라우드는 정말 맛있는 맥주이며, 한국 맥주 시장에서 유일하게 맥주라고 부르기에 창피하지 않은 '진짜 맥주'라 생각된다.


한국의 모든 맥주 팬들이 클라우드의 진가를 알아주길 바라며 이 글을 마쳐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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