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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구팔구 팔레트 Sep 29. 2023

배송 사고를 기대하며 전하는 편지

페리에서 맞이한 아침, 창 밖으로 크레타가 나를 반겼다.


카잔차키스를 생각하기 좋은 섬, 크레타에 닿았다. 아침 일곱 시가 조금 넘은 시간에 도착한 터라 마땅히 갈 곳이 없었다. 일단 호스텔에 짐을 맡기러 가자는 생각에 발걸음을 옮겼다. 다행히 이른 시간부터 영업을 시작한 카페를 발견했고 고민할 것도 없이 그곳에 자리 잡았다. 시원한 음료를 하나 주문해 놓고 스마트폰으로 메일함에 들어갔다. 문학동네에서 연재하는 〈우리는 시를 사랑해〉에서 황인찬 시인이 보낸 메일이 와 있었다. 제목은 '배송 사고를 기대하며 전하는 편지'였다. 시인은 이현호 시인의 「ㅁㅇ」를 보내주었다. 시는 새벽에 달랑 'ㅁㅇ'이라는 자음만 쓰인 메시지를 받은 화자의 이야기였다. ㅁㅇ」의 의미와 사라진 모음에 대한 궁금증 그리고 갖은 해석이 펼쳐지는 시를 읽어 내려갔다. 


「ㅁㅇ」을 읽으며 재미있는 생각이 떠올랐다. 아무리 정제된 문장이라도 의미를 온전히 전달할 수 없는 법이다. 왜곡과 오해를 피할 수 없다면, 의도적으로 의미가 오배송되도록 판을 짜보는 건 어떨까? 때마침 나는 해외여행 중이니, 편지가 유실되는 경우도 가능했다. 그야말로 배송사고가 나기 아주 적절한 조건인 셈이다. 나는 바로 인스타그램에 들어가 엽서를 받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주소를 알려달라는 게시글을 썼다. 단, 배송사고가 나더라도 이를 즐겁게 받아들일 수 있는 이들만 참여하라는 당부를 더했다. 답변이 오기를 기다리며, 나는 시 「ㅁㅇ」와 동봉되어 온 이소라의 〈나를 사랑하지 않는 그대에게〉를 들었다. 그것은 여행 중 유일하게 끝까지 듣게 된 노래가 되었다.

 



과거에 나는 이미 두 차례의 배송 사고를 경험한 적이 있다. 하나는 핀란드의 로바니에미에서 나에게 보낸 편지였고, 다른 하나는 러시아의 무르만스크에서 엄마에게 보낸 편지였다. 둘 다 편지가 유실된 사고였다.


대학생이었던 시절, 우연히 페이스북에서 로바니에미를 알게 되었다. 산타의 고향으로 가장 유력하게 추정되는 곳이라는 설명에 낚여 마음 한 편에 로바니에미를 저장해 두었다. 막상 여행은 한참 후에 실행되었는데, 서른 맞이 여행으로 계획한 아이슬란드에 가기 위해 비행기 편을 검색하다가 핀에어를 발견한 것이 발단이었다. 산타가 사는 로바니에미를 기억났다. 핀란드에서 스탑오버를 할까? 때마침 연말이니 크리스마스 연휴까지 여행을 연장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그렇게 한 순간의 결심으로 로바니에미에서 크리스마스를 보내게 되었다.


로바니에미의 산타 마을로 향했다. 사진을 함께 찍을 수 있는 산타 할아버지를 만날 수 있다고 했다. 동영상을 원하면 약간의 돈을 내면 된다고. 이 엄청난 상술에 나는 넘어갈 마음을 단단히 먹었다. 진짜 산타가 아닌 것을 알지만, 오늘은 다른 날도 아니고 크리스마스이니까 모른척하고 넘어가주겠다고. 산타 마을 입구에는 기념품 숍이 자리 잡고 있었다. 여느 가게처럼 그곳에도 엽서를 팔고 있었다. 재미있는 건 일 년 뒤 크리스마스에 맞춰 배송을 해준다는 서비스를 운영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그냥 지나칠 수 없는 마음에 엽서 하나를 구매했다. 누구한테 쓰지? 이번 여행의 목적을 생각했다. 서른 맞이 여행의 주인공, 나에게 쓰기로 마음먹었다. 일 년 뒤 한국에 도착할 편지를 부치고 산타가 있는 집무실로 갔을 때, 나는 당혹감에 휩싸였다. 모두 나 같은 생각으로 온 것일까? 산타를 만나기 위해 온 수많은 사람들로 가득했다. 지금 줄을 선다 하더라도 최소 몇 시간 이상은 걸린다는 말에 포기하는 수밖에 없었다. 몇 시간 뒤면 헬싱키로 넘어가는 기차를 타야 했으니까. 진짜 산타도 아닌데, 이 억울한 마음은 뭐지. 화이트 크리스마스였다. 눈이 한 뼘 이상은 쌓인 로바니에미는 야속하게도 한없이 아름다웠다.


일 년 뒤, 그때 로바니에미를 함께 갔던 친구에게 연락이 왔다. 엽서 받았어? 나 방금 도착해서. 아차, 잊고 있었다. 산타와 맞바꾼 내 엽서! 친구의 말을 듣고 몇 날 며칠을 기다렸지만, 엽서는 좀처럼 도착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여행과 함께 서른이 된 내가 꼬박 일 년을 보내고 마지막 이십 대에 쓴 편지를 볼 수 있었더라면 좋았을 텐데. 다시 억울했다. 일 년 주기로 크리스마스마다 억울함은 내게 찾아오기로 작정한 것인지도 모르겠으나, 이제는 가볍게 웃으며 이야기할 수 있는 에피소드가 되었다.


무르만스크 여행은 예정에 없음, 그 자체였다. 블라디보스토크에서부터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며 사십일 가량 여행을 할 때였다. 기차로 갈 수 있는 곳은 이제 상트페테르부르크가 마지막인 줄 알았던 나는 모스크바에서 출발하는 기차에 오르며 이상하다는 생각을 했다. 플랫폼 전광판에 쓰인 이 기차의 종착역이 상트페테르부르크가 아닌 무르만스크라고 알려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무르만스크? 정말 난생처음 들어본 지명이었다. 기차에 오른 나는 지도 애플리케이션으로 무르만스크의 위치를 찾아봤다. 화면은 순식간에 북쪽으로 이동해 멈췄다. 여기가 바로 무르만스크라고. 그곳은 북극해를 면하고 있었다. 나는 언니 희에게 연락을 했다. 언니 희와 나는 노보시비르스크에서 처음 만났다. 우리는 각자의 템포에 맞춰 여행을 하다가 다시 만나게 되면 종종 같이 식사를 하는 사이였다.


- 언니. 상트페테르부르크가 시베리아 횡단열차의 끝이 아니었어요. 진짜 마지막은 무르만스크예요. 갈 거죠? 안 간다는 소리는 하지 마요. 거기서 북극 바다를 보러 갈 수 있대요!


며칠 후, 나는 정말 무르만스크에서 언니 희를 다시 만났다. 생각해 보니 북극권 여행은 처음이 아니었다. 내 생애 첫 북극권은 다름 아닌 로바니에미(아). 어쨌든 언니 희를 만나자마자 가장 먼저 한 일은 정말 무르만스크의 여름은 밤이 없는지 두 눈으로 확인하는 것이었다.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무르만스크로 오는 기차에서 만난 러시아인 류다 할머니가 무르만스크의 백야는 다른 곳과 다르다고 알려줬기 때문이다. 칠 월에서 팔 월의 무르만스크는 낮만 존재해. 밤이 찾아오지 않거든. 겨울은 그 반대야. 낮이 오지 않는 밤이지. 나는 류다 할머니의 말을 곱씹으며 언니 희와 자정이 넘어가자마자 밖을 나섰다. 정말 밖이 새벽녘처럼 환했다. 좀 걸을까요? 그냥 넋 놓고 하늘만 바라볼 수 없어서 우리는 발길이 이끄는 대로 걸었다. 도시는 여전히 밝았고 시간이 멈춘 도시를 걸었다. 우리는 북극해로 흘러가는 강으로 걸어가 거대한 배 앞에 멈춰 섰다. 거기에는 러시아어를 모르는 내가 읽을 수 있는 글자가 쓰여 있었다. 레닌. 그것은 레닌의 쇄빙선이었다. 


다음 날 언니 희와 함께 레닌의 쇄빙선에 올랐다. 실제 북극 탐험에 사용했다는 이 쇄빙선은 가이드 투어만 허락되었다. 미로 같은 쇄빙선 관람을 마치고 떠나려는 찰나, 엽서를 판매하는 곳을 발견했다. 북극에서 보내는 우편 서비스를 그냥 지나칠 수 없는 노릇이었다. 누구에게 쓰면 좋을까? 기차를 타며 종종 연락을 했던 엄마가 생각났다. 시베리아 횡단열차, 나도 타보고 싶네. 엄마는 그렇게 말했다. 같이 가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이 불편함 투성인 여행을 엄마가 할 수 있을까, 염려가 들기도 했다. 그럼에도 동시에 엄마의 바람을 잘 간직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이 편지를 엄마에게 쓰기로 마음먹었다. 이제 막 몇 줄 썼을 뿐인데, 순간 눈물이 왈칵 쏟아지는 걸 겨우 참아냈다. 아직, 언니 희에게 내 눈물을 보이기 어려웠으니까.


이렇게 마음을 담아 썼는데, 엄마는 내가 여행하는 내내 엽서가 오지 않았다는 소식만 전해주었다. 애초에 북극권에서 쓰는 편지는 도착하지 않는 것이 글로벌 룰이었던 걸까. 함께 엽서를 보냈던 언니 희도 받지 못했다고 연락을 해왔다. 이번에는 어쩐지 조금 덜 억울했다.

 



그때의 배송사고를 만회하기 위해 이 이벤트를 신청하지 않은 엄마와 나 자신에게도 편지를 쓰기로 했다. 가장 먼저 편지를 쓴 건 엄마였다. 엽서는 니코스 카잔차키스 박물관에서 산 것이었다. 이번에는 반드시 도착하길 바라는 염원은 접어두기로 했다. 편지가 무사히 도착한다면 당연히 좋은 일이지만, 이미 몇 차례 배송 사고를 겪지 않았는가! 배송 완료 여부에 무게를 싣기보다 편지를 쓰고 있는 지금에 소홀해지지 않도록 의도를 더한 오배송 작전을 짜야했다. 


이현호 시인의 시 ㅁㅇ」을 되뇌며, 엄마에게 쓴 문장에서 한 단어를 골라 의도적으로 초성만 남기기로 했다. 나머지는 모두 삭제. 시에서처럼 'ㅁㅇ'이라는 자음만 도착하는 메시지가 아니라 앞뒤에 온전한 문장이 함께 놓일 터라 맥락을 보고 유추한다면 단어를 완성하는 것은 제법 쉬울 것이다. 난이도가 낮은 퀴즈임에도 굳이 출제를 한 이유는 편지를 받을 엄마가 채워주길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그건 그리스에서 엄마를 생각하면서 떠오른 단어이니까. 엄마가 빈자리만큼 채워준다면, 그리스에 남겨진 의미가 시간 차를 두고 도착할 터였다.


엄마에게 보낸 자음은 'ㅇㅅ'. 엽서를 부친 한 달 뒤, 편지는 유실되지 않고 안동에 있는 엄마에게 닿았다. 그러나, 출제자의 예상과 달리 엄마는 내가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ㅇㅅ'이 뜻하는 바가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고 한다. 그래도 괜찮았다. 그것은 배송 사고를 기대하며 보낸 편지였으니까.


이로써, 배송 사고는 총 세 건으로 집계되었다. 두 건은 편지 유실 사고이며, 한 건은 단어의 의미 분실 사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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