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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구팔구 팔레트 Sep 29. 2023

호흡하는 낙소스

낙소스의 마지막 일몰을 기다리며 해변으로 나갔다. 그곳에서 며칠 전에도 요가 수업을 이끌어줬던 야나를 다시 만났다. 


"플라카 해변은 어땠어요?"

"정말 멋지던데요? 푸르고 투명한 바다 색이 정말 인상적이었어요. 근데 조금 당황스러웠어요."

"네?"

"누드 비치가 있을 거라곤 상상도 못 했거든요!"


우리는 한참을 깔깔거렸다. 플라카 해변은 야나가 추천해 준 곳이었다. 모래 해변이 끊임없이 펼쳐져 있어 걷기도 좋았다. 나는 발목까지 바닷물이 잠기도록 들어가 한참을 걸었다. 그러다 내 두 눈을 의심할 광경을 마주했다. 누드 비치가 펼쳐져 있었기 때문이다. 분명 그 어떤 사인도 보지 못했는데 예고도 없이 이렇게 훅 들어온다고? 심히 당황했지만, 그렇지 않았던 척할 수 있었던 건 선글라스 덕분이었다. 나는 여유 있는 발재간으로 유턴했다. 놀라운 것은 반대방향으로 쭉 걷다가 또 누드 비치에 닿았다는 것이다. 이쯤 되니 누드 비치라는 것이 어디라고 따로 정해져 있는 게 아니라 사정없이 더운 날씨 탓에 다들 그냥 훌렁훌렁 벗어대는 것 같았다. 이 자유로운 영혼들! 과연 조르바의 나라구나! 나는 유교걸이라는 단어 하나로 설명할 수 있는 당혹감을 아냐에게 풀어서 설명해야 했다. 저는 누드 비치에 익숙하지 않아서요. 어찌나 놀랐던지! 아냐는 웃으며 그럴 수 있다고 했다. 이 섬은 유럽과 미국에서 온 관광객이 많아서 툭하면 벗는다고.


"낙소스에 다시 오면 해보고 싶은 거 있어요?"

"우선, 데메테르 신전을 다음엔 꼭 가보려고요. 이번에 운영 시간이랑 휴일을 제대로 확인하지 않아서 못 갔거든요."

"맞아요. 일찍 닫기도 하고, 매주 화요일은 휴무예요."

"아피란토스를 가면서 제우스 산을 보기만 했는데, 그것도 아쉬웠어요. 저는 사실 바다보다 산을 더 좋아해요."

"그래요? 등산하기 어렵지 않은 곳인데! 다음에 낙소스에 오면 저랑 같이 가요."

"저야 당연히 좋죠! 제우스가 살았다고 신화에."

"맞아요. 제우스가 살았던 곳이에요. 이 섬 낙소스는."


확신으로 제우스가 살았다고 표현하는 야나의 말에 '신화에 기록되어 있는 것을 봤다'는 문장의 끝은 말줄임표로 대체했다. 재미있다고 생각했다. 제우스가 여기 살았다고 전해진다는 것이 아닌 제우스가 여기 살았다고 끝나는 문장이. 그 말 한마디에 정말 그가 존재했던 것처럼 되어버리니까. 그리스 신화는 고대 그리스인에게만 유효한 것이 아닌 현재에도 이어지는 개념일 터였다. 나 역시 그것이 궁금해 그리스에 온 것이기도 했다. 휴버트 드레이퍼스와 숀 도런스 켈리의 『모든 것은 빛난다』가 그 궁금증의 시작이었다.

 



지금의 인류는 허무와 무기력에 빠진 이례적인 시대에 살고 있다. 매 순간 성실하게 삶에 임하는데도 대체 왜 허무는 지워지지 않는 것일까? 『모든 것은 빛난다』에 따르면, 우리가 너무나 많은 선택의 짐을 짊어지고 있기에 그렇다고 말한다.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누구라도 십분 이해하고도 남을 말이다. 우리는 하루에 수없이 많은 선택의 기로에 서곤 하니까. 인생에서 굵직한 전환점마다 오롯이 스스로 결정해야 할 일이 차고 넘친다. 선택에 따라오는 결과 역시 온전히 책임져야 하는 몫을 지니고 있다. 심지어 그 결과가 좋지 않을 때 자신을 책망하는 수밖에 없다. 내가 선택한 일이니 말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이 허무와 무기력에서부터 벗어날 수 있는 것일까? 『모든 것은 빛난다』는 그 답을 찾기 위해 고대 그리스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리고 매 순간에 다양한 신과 공명하는 고대 그리스인이 지녔던 삶의 태도에서 힌트를 얻는다. 다양한 신과 공명한다는 말은 어떤 의미일까? 다신주의가 다양한 가치와 개념을 대변한다고 본다면나는 이것이 인간이라면 마땅히 그래야만 한다고 규정짓는 어느 한 가지의 절대적인 기준에서 자유로울 수 있음을 의미한다고 생각한다. 그 말은 즉, 나의 선택은 옳아야 하며 반드시 좋은 결과를 가져와야 하고 실패는 불허한다는 것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이는 어떤 선택을 하든 어떤 결과이든 모두 다 인정이 되는 유연한 사고를 지닐 수 있게 한다. 더불어 신을 섬긴다는 태도는 훌륭한 결과를 두고 자신의 노력에 자화자찬하기보다 신에 대한 감사와 경이로 채우는 삶을 살았다고 할 수 있다. 이 책에서 등장하는 사례인 지하철 선로에 떨어진 승객을 구한 웨슬리 오트리가 한 말, "제가 대단한 일을 했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단지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보았을 뿐입니다."를 이해할 수 있는 맥락이기도 하다.

 

물론 야나가 제우스를 실제로 섬겼는가에 대해 말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그리스인들에게 신이란 존재가 실존했는가를 논하는 것을 넘어서 이 개념이 삶에 어떻게 녹아있는가에 대해 생각해보고 싶은 것이다. 이번 그리스 여행은 그 반짝이는 감사의 순간을 목도하기에 아주 좋은 기회였다. 그리스의 소리를 들으며 에우테르페를, 보름달을 바라보며 아르테미스를, 떠나는 태양 앞에서 아폴론을 감각하며 그 순간을 온전히 누렸다. 그리고 매일 밤마다 찾아오는 히프노스와 함께 잠에 들으며 불면의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히프노스! 불면으로 고통받는 지난 세월 동안, 나는 그를 만나기 위해 얼마나 애를 썼던가. 히프노스는 잠의 신이다. 오비디우스의 『변신 이야기』에 따르면 히프노스는 양귀비가 입구에 피어있는 동굴에 산다. 그 외 다른 책에서도 이렇다 할 히프노스에 대한 흔적을 찾기 어렵다. 게다가 '잠'이라는 개념이 의인화된 신이라 그를 기리는 신전이 있을 리 만무했다. 증거가 불충분하니 그를 만난다는 것은 정말 하늘에 별 따기 수준이었다. 일단 동굴이란 동굴은 다 가봐? 양귀비가 보이면 일단 기웃거려 볼까? 아, 안타깝게도 이미 칠 월이다. 양귀비는 진작에 다 진 후였다. 시작부터 막막했던 히프노스 찾기는 놀랍게도 첫날에 완수했다. 그렇다. 불면에 시달리던 나였음에도 첫날부터 여행 내내 잠을 푹 잤다는 뜻이다. 매번 시차 적응에 애먹던 나를 잊은 채로! 그러니, 이것은 히프노스가 아니었으면 불가능했을 일이다. 보이지 않는 그의 보살핌으로 나의 여행은 순조로웠고, 윤택함도 더 해졌다.


이는 매 순간 찾아오는 신을 만나겠다는 열린 태도가 작용한 결과였다. 책에서 배운 것을 실천하는 나는 꽤나 성실한 여행자인지도 모른다.

 



기다리던 요가 클래스의 다른 수강생이 마저 도착했고 우리는 길게 늘어지는 햇빛을 받으며 야나의 지도에 따라 요가를 시작했다. 인요가였다. 인요가는 처음인 데다가 영어로 들어야 하니 조금 긴장이 됐다. 그러나, 요가의 가장 기본이 되는 호흡에 집중하는 사이, 위축된 마음은 온 데 간 데 없이 사라지고 말았다. 아무런 요동 없이 호흡하는 나만 남을 뿐이었다.


호흡은 에게해의 파도 소리에 맞춰 일정한 간격을 유지했다. 부서지는 파도 소리는 아피란토스의 숲을 떠올리게 했다. 나뭇잎이 서로 부딪혀 나던 그 마찰음이 말이다. 파도 소리와 나뭇잎 소리는 모두 바람의 소리이다. 낙소스라는 이 섬이 지닌 목소리에 호흡은 반응했다. 내 몸에 그 소리가 점차 채워져 갔다.


요가를 마치고 눈을 떴을 때, 태양은 에게해를 만나 하늘을 붉게 물들이고 있었다. 섬을 온전히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다. 그리고 호흡마다 들어오고 나갔을 수많은 신을 생각했다. 나의 존재가 다채로운 색으로 물들고 있었다.


"야나. 낙소스의 마지막을 함께 해줘서 고마워요."

"저야 말로 고마운 걸요. 은영, 안아봐도 될까요?"

"왜 안 되겠어요."


호흡을 함께 나눈 야나와 깊은 포옹을 했다.

 

일몰과 함께 한 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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