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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구팔구 팔레트 Sep 29. 2023

이제, 집으로 돌아갈 때

정처 없이 떠도는 내가 여행의 말미에서야 느끼는 감정이 있다. 바로, 돌아갈 곳이 있다는 안도감과 안정감이다. 그리고 생각한다. 이 감정을 만나기 위해 떠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고. 여행을 앞두며 설레는 이들과 달리 나는 매번 쓸쓸한 감정에 매몰된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오는 날에는 아쉬워하는 이들과 다르게 '잘 놀았다'라는 만족과 더불어 해방과 성취로 충만해진다. 아쉬움이란 감정은 찾아오자마자 금세 증발해버리고 마는 것이다. 어쩌면, 나는 떠남에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돌아옴에 목적을 두는 그런 여행을 하는 것이 아닐까?


그렇다. 나는 돌아오기 위해 떠난다.


- 그리스 여행을 시작하며 쓴 일기 중에서




여행 중, 집으로 돌아가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은 잠시 미뤄뒀던 일상을 향해 시선이 관성으로 작용할 때다. 고작 보름이지만, 때로는 보름이 길게 느껴지기도 한다. 일상은 나란 존재와 상관없이 빠르게 흘러가니까.


엘레우시스를 갔던 날, 굳게 잠겨있던 유적지 문 앞에서 나는 어쩔 줄을 몰랐다. 분명 운영 시간을 확인하고 온 것인데 어찌 된 일일까. 알고 보니 낮 기온이 섭씨 사십 도가 넘는 터라 안전상 이유로 잠시 문을 닫은 것이라고 했다. 이따 오후 다섯 시에 오라는 말에 안도했다. 바위로 이뤄진 곳이라 지금 들어가면 뜨겁긴 하겠지. 나는 더위를 피해 인근 카페에서 시원한 자몽 주스를 하나 주문했다.


더위로 인해 쫓겨나듯 엘레우시스 유적지를 떠나오며, 그리스 여행을 시작하기 전에 봤던 한국의 기사가 생각나 다시 찾아보았다. 창고형 대형마트의 노동자가 야외 주차장에서 일을 하다 더위에 숨진 사건이었다. 비슷한 구조로 반복되는 사건 앞에서 일상을 함께 사는 이들에게 매번 던지는 질문을 되뇌어 보았다. 우리는 언제까지 이례적인 폭염이라는 핑계 앞에 서야 할까, 우리는 언제까지 비정상적인 노동과 노동 환경은 노동자의 선택이었다는 주장을 들어야 할까, 우리는 언제까지 노동자의 죽음 앞에 책임을 회피하는 기업의 태도를 지켜만 보아야 할까. 그리고 나에게 묻는다. 너는 이 일을 얼마나 언제까지 기억하고 애도하겠냐고. 타인의 고통과 상처를 쉽게 잊는 것이 덕목처럼 자리 잡은 지금의 일상의 기본 속도는 '빠르게'이다. 나는 그 속도 안에서 허덕이고 있다. 그리고 바란다. 우리의 일상의 속도를 될 수 있는 대로 늦추고 싶다고. 오래 기억하고 오래 애도할 수 있도록 늦추고 싶다고. 세상을 등져 다시 돌아오지 못할 노동자를 헤아려 그가 납득할 수 있는 결과를 이룰 때까지 늦추고 싶다고.


나의 일상은 이곳 그리스가 아닌 노동자가 더위에 사망하는 그곳, 대한민국에 있다. 하루에 두 명이 일터에서 돌아오지 못하는 그 사회에 말이다. 시인 김소연의 『마음사전』은 유일하게 내가 스스로 필사를 한 책이다. 이 책의 수많은 단어의 정의 중 내 마음을 가장 크게 울린 것은 '중요하다'와 '소중하다'의 차이에 대한 것이다. 시인의 말에 따르면 대게 사람들은 중요한 것을 선택하느라 소중한 것을 놓친다고 한다. 나는 이 중요하다는 가치를 사람들이 보통 숫자와 관련된 개념에 사용한다고 생각한다. 돈과 시간 같은 것 말이다. 그로 인해 소중하다고 여겨지는 인간과 인간 사이에 존재하는 가치가 외면받는 것이 사회에 내재되어 버렸다. 사랑, 자유, 평화, 감사, 애도와 같은 것들이 여기에 속한다. 이제, 돈과 시간에 가려졌던 소중한 것을 끄집어낼 때가 되었다. 중요한 것보다 소중한 것을 선택하는 일들이 많아지기를. 우리의 일상이 그럴 수 있기를. 소중한 것들이 쌓여 별안간 사랑하는 이를 이별 인사도 할 틈 없이 떠나보내는 일을 더는 만들지 않기를. 나는 기도했다.


아크로폴리스를 바라보며 모히토를 마시고 있었다. 이 말도 안 되는 낭만적인 순간에 내가 선택한 책은 김영민 교수의 『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였다. 한국의 일상을 예리한 견해로 논하는 책을 읽으며, 얼마 후 마주할 일상으로 돌아가는 감각을 점차 익혔다. 여행자의 신분으로 흐려졌던 대한민국의 시민, 삼십 대 중반, 곧 무직이 될 정규직 노동자, 비혼인 여성이라는 촘촘한 존재로. 또, 미셸 혹은 해나 그리고 코레오라는 이름에서 은영의 이름으로 말이다.

 



공항으로 가기 전 마지막으로 들린 상점은 아테네의 바르바키오스 시장에 있는 곳이었다. 이미 몇 차례 들린 터라 가게 직원인 마리아에게 나라는 존재가 충분히 각인이 됐나 보다. 멀리서부터 나를 알아보고 손을 힘차게 흔들며 반겨주었다. 이방인인 나는 그 미소를 저항 없이 받아들이며 생각했다. 마리아의 미소를 오래 기억해야겠다고. 마지막 코레오 쓰기를 마리아에게 부탁했다. 흔쾌히 적어주며 마리아는 말했다.


"아테네에 다시 와요."

"네, 꼭 그럴게요."

 

마리아의 일상 속 풍경, 바르바키오스 시장

 

아테네에 돌아오는 일이 언제가 될까. 이왕이면 마리아의 기억에 나라는 사람이 지워지기 전이길 바라보았다.


나는 다시 배낭을 단단히 멨다. 그리고 일상이 있는 집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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