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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구팔구 팔레트 Sep 29. 2023

비밀에 부처진 바람

죽은 신들. 망각된. 없어져 버린. 과거

노출된 층의 먼지를 털어내고

깊은

그 밑의 우물을 드러내라. 죽은 시간. 죽은 신(神)들. 침전. 

돌이 된 것. diseuse인 사람으로 하여금

먼지를 털고 우물의 거리(距離)를 불어 없애도록 하라.

diseuse인 그녀로 하여금 돌 위에 9일 낮과 9일 밤을 앉아 있도록 하라.

그럼으로써. 다시 일어 서게 하라. 엘레우시스.


- 테레사 학경 차의 『딕테』, 엘리테레 서정시 중에서

 



다시 돌아온 아테네에서 지하철을 타고 버스를 갈아타 근교의 엘레우시스 유적지까지 오게 된 것은 『딕테』의 서정시 때문이었다. 엘레우시스를 향해 명하는 목소리에 어떤 감정과 기억이 깃들어 있는지 나는 두 눈으로 보아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고대 그리스의 종교 중심지였던 엘레우시스가 섬겼던 신은 데메테르와 페르세포네이다. 명계의 여왕으로 알려진 페르세포네의 본래 이름은 코레이다. 코레는 처녀라는 뜻을 지닌다. 더는 그 이름으로 불리지 못하는 것은 코레가 페르세포네가 된 이유와 맞닿아 있다. 코레에게 반한 하데스가 그를 납치해 명계로 데려갔기 때문이다. 그 순간 코레의 비명을 들은 데메테르는 사라진 딸을 찾아 9일 낮과 9일 밤을 헤맨다. 열흘이 되던 날, 딸이 사라진 원인을 알게 된 데메테르는 올림포스를 등지고 찾아간 곳이 바로 켈레오스 왕이 있던 엘레우시스이다. 딸을 잃은 슬픔에 모든 일을 손에서 놓은 데메테르를 그냥 두고 볼 수 없었던 제우스는 하데스에게 코레를 돌려주라고 한다. 그러나, 더 이상 코레가 아닌 페르세포네는 명계의 음식을 먹은 이상 영원히 하데스 곁을 떠날 수 없었다. 일 년의 반을 지하에서 나머지 반은 지상에서 사는 것으로 모든 신들은 타협을 해야 했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신들의 일을 매우 중요하게 여겼다. 그중 하나가 바로 이 엘레우시스에서 가을이 되면 거행했던 비밀종교의식(이하 비의)이다. 나는 과거 비의가 진행되었던 엘레우시스 유적지에 발을 들였다. 가장 눈에 먼저 들어온 것은 다름 아닌 플루토니온, 명계의 입구였다. 이곳에서 데메테르와 페르세포네가 가을마다 헤어짐을 반복하는 것이다. 나는 데메테르 신전이 있던 터로 향했다. 누가 일러주지 않으면 신전이 있었던 자리라는 것을 알 수 없을 정도로 알아보기 어려웠다. 엘레우시스 비의라 불리는 이유는 그 종교의식에서 행하는 모든 것이 비밀로 부쳐졌기 때문이다. 발설하는 순간 엄벌에 처해지기에 현재까지 남아있는 기록이 아무것도 없다고 알려져 있다. 비의를 두고 그리스어로 미스테리아라고 말한다고 하니, 지금의 우리는 이 의식을 우리의 관점으로 이해하고 알려고 하기보다 미스테리로 두는 편도 좋을 것 같다.


내가 주목했던 것은 페르세포네를 맞이하는 제의보다 지하로 보내는 제의를 더욱 중요하게 여겼다는 과거 기록이다. 아테네에서는 매해 봄이 되면 페르세포네를 맞이하는 제의가 있었음에도 엘레우시스에서 거행하는 가을의 제의를 자신들의 것으로 삼고 싶어 했다는 것이다. 어떤 마음에서였을까? 페르세포네가 떠나면 다시 혹독한 추위의 겨울이 온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다. 그 계절의 변화에 앞서 사람들은 단순히 신에게 자신을 돌봐줄 것을 바랐을까? 다시 올 풍요에 대한 확신이 필요했던 걸까?


나는 이 일을 다정한 마음에 기대어 보고 싶었다. 플루토니온에서 느꼈던 감정을 복기했다. 데메테르와 페르세포네의 작별을 말이다. 이별이 아닌 작별인 줄 알지만, 신이라는 존재도 거역할 수 없는 운명으로 모녀는 헤어짐을 감수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은 매년 반복된다. 그리스의 신이 매우 인간적으로 묘사되는 것을 생각했을 때, 숱한 이별에도 좀처럼 익숙해지지 못하는 인간인 나는 그 마음을 너무나 잘 알 것 같았다. 바라만 보아도 사무치는 대상의 떠나는 뒷모습을 보고만 있어야 하는 그 아픔을. 나는 비의가 이들의 작별을 보듬어주기 위함이라고 생각하고 싶다.


고대 그리스인들이 봄의 제의보다 가을의 제의를 더 중요하게 여겼던 것은 작별에 대한 우리의 마음가짐을 어떻게 할 것인가 생각해보게 한다. 만남이 약속된 헤어짐이라 할지라도 헤어짐은 어느 영화의 제목처럼 일종의 '결심'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만남보다 헤어짐은 의지를 바탕으로 그 순간을 소중히 다룰 수 있다. 페르세포네를 봄이 되면 다시 만날 수 있음을 알지만 그럼에도 잘 헤어지려고 했던 것은 그것이 작별 앞에서 유일하게 인간이 할 수 있는 관계에 대한 노력이 반영된 것이지 않을까.


그리스와 헤어짐을 남겨둔 하루. 어쩌면 나는 이 헤어짐을 고귀하게 받아들이고, 다시 만날 수 있기를 기약하고자 하는 간절한 마음으로 이곳을 찾게 된 것인지도 모른다. 여행자에게 반복되는 이별은 숙명임에도 헤어지는 것이 마음 아파 새로운 만남을 피했던 때도 있었다. 얼마나 바보 같았던지. 만남을 피한다고 하여 이별을 잘 대처할 수 있게 되는 것도 아닌데. 마음에도 없는 만남에 대한 외면은 접어두고 언젠가 찾아올 수밖에 없는 헤어짐을 마주할 용기를 내보기로 했다. 궁금하고, 보고 싶고, 계속해서 아껴주고 싶은 그리스를 찾은 것처럼. 그리고 그런 그리스와 헤어지기를 감내하기로 한 것처럼 말이다. 나는 곧 그리스를 떠난다. 떠난다는 사실이 속상하지만, 그만큼 우리는 이 만남에 최선이었음을 안다. 더불어 이 헤어짐 역시 최선이었음을 안다.


엘레우시스 비의가 진행되었던 터

  



"당신이 이쪽으로 걸어 내려오는데 정말 아름다웠어요. 뒤로 내리쬐는 태양을 받으며 걷는 모습이 꼭 신(Goddess) 같았거든요."


엘레우시스 유적지에 있는 고고학 박물관까지 둘러보고 나오는 길에 마주친 어느 방문객이 내게 한 말이었다. 나는 그 말에서 간절함을 느낄 수 있었다. 엘레우시스를 찾는 이들은 대게 마음속 한편에 데메테르와 페르세포네를 품고 있을 것이다. 방금 전, 박물관에서 수세기 동안 대대로 전해졌던 그 마음을 보고 나온 터라 더욱 이해할 수 있었다. 결코 내가 외적으로 여신에 버금갈 만큼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웃음), 그 방문객의 말에는 그저 그들을 만나고 싶다는 소망이 반영되었음을 말이다. 나 역시 소중한 그 마음을 잘 알고 있으니까. 데메테르와 페르세포네를 만나기 위해 이곳까지 온 사람들 중 하나가 바로 나니까. 나는 그와 웃으며 작별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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