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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구팔구 팔레트 Sep 29. 2023

비건 메뉴 드릴까요?

그리스 여행을 계획하며 처음부터 포기한 것이 하나 있었다. 바로, 그리스 전통 음식 먹기이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그리스 음식 중 대표적인 것이 바로 그릭 요거트와 그릭 치즈. 모두 우유로 만들어진 유제품이다. 나는 유제품도 먹지 않는 비건이기에 주문서에 포함할 수 없는 선택지일 터였다. 그러나, 이것은 철저한 나의 무지로 인한 오해였다. 


그리스는 비건에 대한 이해와 실천이 굉장히 높은 나라 중 하나이다. 두유로 만든 그릭 요거트는 물론, 여행 중 먹은 그리스 전통 음식인 무사카, 스터프드 베지터블스, 파바, 그릭 샐러드 그리고 부유르디까지 모두 비건식으로 맛볼 수 있었다. 비건 식당 옆에 비건 식당 그 옆에 비건 옵션 식당. 뭐, 한국에서는 비건 식당 한 번 가려면 버스나 지하철로 이동이 필수인데 여기는 비건 식당이 보이지 않는 것 같으면 걸어서 옆 골목만 가도 짠! 하고 나타나니 부러운 환경이 아닐 수 없다.

 

"비건 메뉴 드릴까요?"


비건 식당이 아닌 비건 옵션 식당에 들어서면 요청해야 하는 것이 하나 있다. 바로, 비건 메뉴를 달라는 것이다. 비건 옵션 식당은 논 비건 메뉴와 비건 메뉴를 따로 만들어 필요에 따라 손님에게 내어주곤 한다. 그렇다면, 방금 전 그 질문은 비건지향을 하는 나에게 온 것이었을까? 아니, 나는 이미 주문한 비건 피자를 먹고 있었다. 그 질문은 방금 들어온 저 미국에서 온 커플에게 향한 것이었다. 보아하니, 그 미국인 커플은 논 비건인 거 같은데. 그들의 대화가 궁금해 엿듣기 시작했다.


"그래요? 한 번 줘보시겠어요?"

"네, 여기요. 저희는 일부 메뉴를 비건식으로 제공하고 있거든요."

"좋네요. 미국에도 비건 식당이 많은데, 사실 경험은 그리 많지 않거든요. 덕분에 이번 식사는 모두 비건식으로 먹어봐야겠어요. 추천해 주실래요?"


놀랍도록 가벼운 대화였다. 가볍게 제안했고 또 가볍게 받아들였다. 우리나라에서는 비건식을 논 비건인과 함께 먹으려고 하면 한 두 마디 대화로 시작하고 끝을 낼 수 없기에 나에겐 신기한 일이었다. 주문을 받은 그 직원에게 커플은 다시 말을 붙였다. 미국으로 돌아가서도 비건식을 계속 먹어보겠다고. 변화가 이렇게 쉬운 일이었던가.

 



비건 지향을 하면서 나는 외식을 현저히 줄일 수밖에 없었다. 우리나라에 비건 식당이 충분하지 않아서? 물론 그 수는 적을지 몰라도 맛의 질이 높은 식당이 굉장히 많아 집에서 떨어져 있더라도 자주 가고 싶은 곳이 많다. 나에게 있어 가장 큰 불편한 점은 다름 아닌 논 비건인이 비건식에 대해 지닌 편견이다.


식사 때가 되어 자연스럽게 비건임을 밝히면 다들 샐러드만 먹는 것을 연상한다. (아니, 저도 그걸로는 배가 차지 않아요.) 고기가 없는 음식은 상상도 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짓는다. (우리가 고기를 식탁 위에 올린 일상의 역사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비건식이 맛이 없을 거란 의심은 기본이다. (당신이 이미 즐기며 먹는 음식 중에는 식물성 식재료만으로 개발된 음식이 존재한다.) 그리고 나를 안쓰럽게 바라본다. (나 비건지향 하면서 행복하게 사는데 왜 그러세요.) 더불어 수많은 질문이 날아온다. 나는 그것을 피하지 않고 성실히 답한다. 무언가를 지향한다고 이야기한다는 것은 언제나 그 주제로 대화하겠다는 의지도 담겨있으니까. 그러나, 열심히 답한 것에 비해 보람 없는 말들이 돌아온다. 채소만 먹으면 영양 불균형이 오잖아. (그러나, 이 말을 하는 네가 고기를 그냥 맛 때문에 먹는다는 사실을 나는 알고 있다.) 그래도 난 고기가 좋아. (바로, 이 친구처럼!) 결국 대화는 원점으로 돌아온다. 나는 이들의 식탁에 초대될 수 없음을 다시 느낀다. 집에서 요리해 먹는 한 끼의 비건식에 만족하는 날들이 점차 많아졌다.


다행인 것은 나의 이 힘겨움을 알아주는 친구들이 곁에 있다는 것이다. 함께 비건 지향을 실천하는 친구는 두 말할 것도 없지만, 논 비건인 친구에게 의외의 위로를 받기도 한다. 옥상에 텃밭을 가꾸던 행운동 집에 사라와 함께 걸어가는 길이었다. 집이 언덕 위에 있는 탓에 턱 밑까지 숨이 가빠오는데도 서로 끊임없이 대화를 주고받았다. 어떤 맥락에서 그 이야기가 나왔는지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나는 외롭다는 말을 서슴없이 하고야 말았다. 꽁꽁 숨겨둔 감정인데 별안간 튀어나와 황급히 그러지 않은 척 닫아두었다. 그러나 다시 감정이 새어 나오게 된 것은 사라의 말 때문이었다. 사라는 나의 쓸쓸한 마음을 짐작하고 있었다.


"미셸은 지키고 싶어 하는 게 있잖아요."


사라에게는 복잡한 설명을 할 필요가 없었다. 어느 날, 인간이 마시는 우유가 비윤리적인 과정으로 만들어진다는 것에 큰 충격을 받은 나는 스스로 유제품 섭취 금지령을 내렸다. 그 사실에 사라는 별 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저, 유제품이 없이 함께 먹을 수 있는 음식이 무엇인지 고민을 할 뿐이었다. 한 번은 쓰레기를 줄여야겠다는 생각에 샴푸나 린스와 같은 생활용품을 모두 고체 제품으로 갈아치운 우리 집을 자주 놀러 오던 사라는 내게 『빌 게이츠, 기후 재앙을 피하는 법』을 읽어보았는지 물었다. 그렇지 않다고 대답하자, 자신이 선물해 줄 테니 아직 읽지 말라고 당부했다. 얼마 후, 사라는 정말 그 책을 들고 내 앞에 나타났다. 나는 사라와 내가 지닌 각자의 가치관이 서로 같지 않음을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서로 다른 둘이 함께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최근 나는 사라와 제주도 여행을 했다. 며칠 먼저 출발해 여행을 하고 있던 나는 사라가 비행기에 오르기 전에 전화를 걸었다. 제주도에서 먹고 싶은 음식이 있냐는 내 질문에 사라는 그냥 나를 따라다니며 비건식을 먹으려고 한다고 답했다. 먹고 싶은 게 있다면, 따로 식사해도 좋다는 말을 준비했던 나는 어쩐지 부끄러웠다. 사라는 자신이 논 비건인이라고 말하지만, 나는 그를 플렉시테리언(Flexiterian: 유연한 채식주의자)이라고 생각한다. 비건 지향의 가치에 공감하며 자신이 선택할 수 있는 논 비건식 대신 비건식을 선택하는 사람. 이를 플렉시테리언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을까.


많은 이들이 비건이라는 말에 '완벽한'이라는 수식어를 덧붙여 이해하는 것 같다. 고기가 먹고 싶지 않아? 고기 없이 어떻게 살아? 하는 질문은 완벽하게 지향하는 바를 해내야 한다는 염려와 걱정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닐까. 그러나, 이들이 생각하는 것과 다르게 나는 완벽한 비건인에서 살짝 벗어나 있다.


얼마 전, 탔던 비행기에서 있었던 일이다. 우리나라에서 그리스까지 직항 편이 없어 예매한 중국국제항공에 비건식을 예약하기 위해 전화를 걸었다. 기내식 변경 요청을 했더니 돌아온 답은 인천에서 베이징으로 가는 항공편은 비건식이 제공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이유를 물었지만, 납득할만한 답이 아니었다. 비행기마다 준비되는 기내식 재료 때문이라고. 어쨌든 짧은 비행 동안 나는 논 비건 기내식을 제공받았다. 고민이 됐다. 먹지 않는 것도 답이겠지만, 먹지 않으면 이것은 버려진다. 자신의 이름을 잃어버린 채, 음식으로 불리게 된 존재의 숭고함을 어떤 방법으로 달래야 할지 몰라 답답했다. 내가 완벽한 비건인이라면 그 답을 완벽하게 내릴 수 있었을까? 나는 여전히 그 일에 대해 적절한 답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게다가 그리스 국내에서 섬 간 이동은 페리로 했다고 쳐도 한국에서 이곳으로 올 때는 비행기로 여행하지 않았는가. 비건이 지속 가능성의 가치와 연결된다는 점을 생각했을 때, 비행기는 대표적으로 피해야 할 탈 것이다. 가장 탄소 배출량이 높은 교통수단이니 말이다. 그뿐이겠는가. 내가 내리는 수많은 선택에는 지향한다는 가치를 온전히 담지 못하는 경우가 너무나 많다. 또, 내가 하는 행위의 영향력을 전혀 모른 채 행하는 것도 분명히 존재한다.


이처럼 완벽한 비건인이 된다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오늘 할 수 있는 최선에 위안을 얻고 안주할 수 없는 노릇이다. 더 나은 최선에 대한 끊임없는 노력이 있어야 이 의지가 무너지지 않고 버텨나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 논 비건인이지만 식당 직원의 제안에 선뜻 비건식을 주문하고, 비건인 친구를 따라 자연스럽게 비건식을 접하는 사라와 같은 사람이 많아질수록 우리는 완벽함보다 완벽하진 않지만 함께 고민하는 비건을 실천할 수 있을 터이다. 일정 틀에서 벗어나면 유별난 사람이 되기 쉽고 제안을 하면 강요하지 말라는 답을 듣는 내가 사는 사회를 위해서라면 더욱 말이다.

 

그리스의 어느 비건 식당에서 축하를 받은 훌쩍 지난 나의 생일

 



다음 날, 포장해 온 남은 피자로 아침을 해결했다. 나는 수영을 할 생각에 아테네에서 샀던 선크림을 꺼내 온몸에 도포했다. 창 안으로 비치는 가게의 아기자기함에 끌려 들어간 곳에서 별생각 없이 집어 들었던 것이 비건 화장품이었다니. 게다가 화장품 용기도 재활용 플라스틱. 바르는 비건도 찾기 쉬운 그리스에 감탄했다. 이 선크림의 성분 역시 바다에 있는 생명을 헤치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이제, 낙소스의 바다에 마음껏 뛰어들 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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