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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영 Sep 26. 2024

나에게 행복이란

Day 23. 아스또르가 → 폰세바돈

"은영, 생일 축하해."


어김없이 아침잠에서 일어나 배낭을 정리하던 중이었다. 한 방을 쓴 이탈리아에서 온 순례자 발렌티나가 내게 인사를 건넸다. 아, 맞다. 오늘 내 생일이지! 지난밤에 만나는 사람 모두에게 소문내듯 그렇게 이야기해 놓고선 정작 당일 아침이 되자마자 까먹어버린 생일이었다. 12년 전 까미노에서도 새해를 맞이하며 나이를 먹었던 나는 이번에도 나이를 한 살 먹으며 까미노를 걷게 되었다.


35년 전, 엄마는 나를 낳기 하루 전부터 시작됐을 산고를 되풀이하듯 지난밤에 이어 계속 고통 속에 걸음을 내디뎠다. 길에서 만난 프랑스인 순례자 마리아나는 엄마가 자신만 이렇게 아프고 힘들게 다니는 것 같아 속상해했다는 이야기에 까미노에서 고통 없이 걷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말해줬다.


"정말이에요. 제 걸음도 늘 무거운걸요."


틀린 말이 아니었다. 아무리 잘 걷는 사람이라도 고통의 크기만 다를 뿐 어려움 없이 걷기란 어려운 곳이 바로 까미노이니까. 마리아나는 배낭을 부치고 걷는 엄마에게 버스를 타는 대신 좋은 선택을 한 것 같다며 격려도 잊지 않았다. 그 말이 부디 엄마에게 위로가 되길 바랐다.


핑크빛 아침의 까미노


앞서 가던 스위스에서 온 순례자 마누엘라를 만났다. 마누엘라는 모니카, 클리 아저씨와 함께 어울려 다니던 친구였다. 웬일인지 혼자 걷고 있는 그에게 어느 알베르게에서 머물 것인지 물었다. 아직 계획이 없다는 그에게 모니카와 같이 다니는 게 아니었냐고 다시 물었다.


"글쎄. 종종 혼자 있을 시간이 필요해서."


그렇지, 여기는 까미노이니까! 까미노는 어느 곳보다 저마다 자신의 속도와 시간에 충실할 수 있는 곳이었다. 프란체스카도 그런 이유로 평소 함께 걷던 이들과 떨어져서 자신만의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럼에도 난 이상하게 혼자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좀처럼 들지 않았다. 엄마와 종일 붙어 있는 것이 여행을 떠나 오기 전에 예상한 것 이상으로 편안했다. 그저 밤마다 일기를 쓰는데 필요한 약간의 시간만 나에게 주어진다면 충분했다. 일기를 쓰는 그 순간과 일기장이라는 지면은 오롯이 나 혼자 있을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이 되어주었기 때문이었을까?




"자, 은영. 이거 불어 봐봐."


목적지인 폰세바돈을 앞두고 마지막으로 쉼을 제공해 주는 마을 라바날 델 까미노에서 프란체스카를 만나 함께 걸어가고 있었다. 프란체스카는 길에서 민들레 홀씨를 꺾어서 내게 건네줬다. 프란체스카는 이탈리아에서 함께 사는 동생 이야기를 해줬다. 그의 동생은 생일마다 민들레 홀씨를 불면서 소원을 빈다고 했다. 프란체스카가 건네준 민들레 홀씨는 내 주먹만 했다.


"이렇게 큰 민들레 홀씨는 처음 봐."

"그만큼 큰 소원(Big Wish)을 빌기 좋을 거야."


나는 프란체스카에게 건네받은 민들레 홀씨를 들고 한동안 그걸 물끄러미 바라봤다. 이 길 끝에서 집의 의미를 알게 해 주세요. 그리고 ……. 나는 그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은 나만의 큰 소원을 한 가지 더 빌며 민들레 홀씨를 호, 하고 불었다. 그러나 홀씨는 크기가 큰 만큼 무거웠는지 어지간해서 내 입김으로 날아가지 않고 그 자리에 계속 붙어 있었다.


"더 가까이 가져가서 불어야 해."


프란체스카는 난처해하는 내게 웃으며 말했다. 나는 입에 조금 더 가까이 가져와 민들레 홀씨를 힘껏 불었다. 큰 소원이 이뤄지려면 보통의 노력으로는 되지 않는구나. 한 번이 아닌 여러 차례 시도 끝에 모든 홀씨를 공중으로 날려 보낼 수 있었다.


폰세바돈으로 가는 길 (좌) 2013년 1월, (우) 2024년 7월




커뮤니티 디너 시간이 되자 식탁으로 순례자들이 모여들었다. 프란체스카의 도움으로 예약한 알베르게는 알고 보니 내가 12년 전에도 폰세바돈에서 묵었던 곳이었다. 내가 방문했을 당시에 알베르게를 운영했던 아버지에게 이어받아 지금은 루카가 그의 어머니와 함께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루카는 마지막 접시를 치우며 디저트 주문을 받고 있었다. 비건인 나는 요거트를 제외하고 비건 파이와 리꼬르 데 이에르바스(Licor de hierbas, 스페인에서 식후에 마시는 술) 사이에서 고민을 했다. 비건으로 먹을 수 있는 파이를 평소에는 쉽게 찾을 수 없던 터라 당겼지만, 생일이라 그런지 괜히 독주가 마시고 싶었다. 결국 소주잔 크기의 잔에 나온 술을 마시고 있었는데 프란체스카가 말했다.


"생일인데 파이도 주면 안 되냐고 해 봐. 뭐 어때!"


그럴까? 나는 디저트를 내오느라 정신이 없는 루카에게 프란체스카는 나를 가리키며 파이를 하나 더 달라고 이야기했다. 루카는 잠시 기다리라고 말하고 부엌으로 사라졌다. 그때 갑자기 알베르게 안을 메우던 음악 소리가 바뀌기 시작했다.


"해피 벌-쓰 데이 투 유-"


루카는 흰 접시에 담긴 디저트를 가지고 나왔다. 파이가 아닌 초가 꽂혀 있는 케이크였다. 불은 이미 붙어 있었다. 알고 보니 프란체스카가 그에게 초를 준비해 줄 수 있는지 미리 물어본 것이었다. 알베르게에 도착해 체크인을 할 때, 스페인어를 아주 잘하는 프란체스카가 나는 알아들을 수 없는 스페인어로 루카에게 말을 건네고 있었는데 그때 부탁을 한 거라고 했다. 


커뮤니티 디너에는 얼추 이삼십 명의 순례자들이 식사를 하고 있었다. 여태 걸어오며 보아온 익숙한 얼굴도 있었지만 처음 보는 얼굴도 적잖이 있었다. 그럼에도 낯선 나에게 모두 한 목소리로 생일 축하 노래를 불러주었다. 노래가 끝나자 나는 다시 큰 소원을 생각했다. 그리고 함께 감사의 마음으로 초를 불었다. 환호하는 사람들에게 마치 셀레브리티가 된 것인 양 한 손으로 키스를 날리는 것도 잊지 않았다.


"은영, 이 초 그냥 버리지 말고 부러뜨려야 해."

"응? 이 초를?"

"응. 이탈리아에서는 그렇게 해. 소원을 빌면서."


나는 프란체스카가 말해준 대로 소원을 떠올리며 초를 부러뜨렸다. 그 덕분에 나는 하루에 세 번이나 큰 소원을 빈 생일을 보낼 수 있었다.




식사 자리가 끝난 후 모두 내일을 준비하기 위해 침대가 있는 객실로 자리를 옮겨갔다. 하지만 나는 일기를 쓸 생각에 공용 식탁을 떠나지 않았다. 프란체스카도 그곳에 함께 있었다.


나는 일기장의 종이를 한 장 뜯어냈다. 프란체스카가 며칠 전에 부탁했던 걸 써주기 위해서였다. 아까 폰세바돈으로 함께 올라오는 길 나는 프란체스카의 물음에 대한 답을 준비했다고 일러주었다.


"프란체스카, 나 그거 너한테 써줘야 하는데."

"응? 뭘?"

"네가 나한테 내가 생각하는 행복이 뭔지 써달라고 했잖아. 며칠간 생각해 봤는데 이제 준비가 됐어."

"아, 그거! 좋아, 은영. 그런데 써줘야 하는 게 아니야. 네가 쓰고 싶은 마음이 들 때 해줬으면 좋겠어."


앗, 내 말이 그 말이었는데! 내가 마련한 답에 대해서 프란체스카에게 들려주고 싶었고 그걸 통해 대화를 나누고 싶었다. 단순히 부탁을 받아서 해줘야 한다는 의무감이 아니었다. 분명 그런 마음이었는데도 말이 그렇게 불쑥 나와버린 것이었다. 한국어로 말할 때는 무디게 다가왔던 말의 미묘한 차이가 영어로 말하니 확연히 드러났다. 어쩌면 평소에 한국의 일상에서도 나는 '~을 하고 싶어(I want to~)' 보다 '~을 해야 해(I have to~)'라는 문장으로 내 의사를 더 자주 표현하는 것이 아닌가 싶었다. 그게 말의 습관인지 생각의 습관인지는 정확히 알기 어려웠다.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단어를 한글로 함께 적어 프란체스카에게 행복을 전했다.

"프란체스카, 이게 내가 생각하는 행복이야."


나는 행복에 관해서도 집을 생각했다. 떠나는 것만이 온전히 나로 존재할 수 있는 자유의 방법이라고 생각했던 과거에서 꽤 벗어난 답이었다. 취향대로 꾸며놓은 터라 집이 좋다고 말하고 다니지만, 정말 집이 좋은 이유는 지금은 혼자 지내고 있는 그곳 역시 내가 존재하는 대로 자유롭게 지낼 수 있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더불어 내 취향을 가득 담아놓은 것은 겉에서 보기엔 그저 물건 같아 보이지만 실은 나란 사람을 스스로 아껴주고자 하는 마음이 쌓인 결과이다. 아직은 그 공간을 혼자서 영위하는 것에 한정되어 있고 나를 아끼는 마음이 물건으로 드러났을 뿐이지만, 그곳에는 내가 생각하는 나름의 자유와 사랑이 깃들어 있다. 그런 이유로 나는 내가 사는 집에서 행복을 느낀다. 자유와 사랑, 둘 중 하나라도 존재하지 않는다면 그곳은 내게 집이 아닐 터이다.


어쩌면 같은 이유로 나는 집을 놓지 못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한편으로는 내가 언제든 어디로든 떠날 수 있는 단서를 집이 마련해 준 것이기도 했다. 그저 떠남에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온전히 그 존재로서 살아간다는 감각이 바로 자유라는 것을. 그리고 그 존재를 충실히 아끼는 마음만 있다면 사랑이 쌓인다는 것을. 고로 그것이 행복으로 가는 길이라고 말이다. 그럼, 내가 지금 영위하고 있는 서울에 터를 둔 집이 아니더라도 어디서든 내가 서 있는 곳을 집이라 부를 수 있지 않을까.


사실, 행복에 대해 이야기하며 나는 거창한 자유나 사랑 따위를 말하고 싶지는 않았다. 보다 간결하고 누구나 취할 수 있는 가벼운 행복을 이야기하고 싶었다. 이를테면, 브라이언이 좋아하는 까미노에서 매일 아침 마시는 첫 번째 커피라던지, 프란체스카가 알베르게에 들어섰을 때 발견하면 기분이 좋아하진다고 한 공용 화장실의 핸드 솝이나 일회용이 아닌 진짜 시트를 씌운 침대와 같은 것들 말이다. 나는 내가 앞으로 꾸려갈 집에는 이런 소소함을 더욱 채우고 싶다. 멀리 돌아가지 않게끔 행복으로 가는 지름길이 되어줄 테니까.




잠자리에 들기 위해 프란체스카마저 자리를 떴다. 나는 그곳에 남아 나만의 시간을 보내며 일기를 썼다. 그때 함께 알베르게에 머무는 어느 순례자 어르신께서 나를 뒤뜰로 인도했다. 거기에는 소 머리뼈가 장식품처럼 놓인 정원이 있었다. 거기엔 내가 알 수 없는 영겁의 시간이 깃들어 있었다. 선선한 바람이 귓가에 닿았다. 먼 곳에서 불어온 바람은 지나쳐 온 곳의 소리를 모두 지니고 있었고 그걸 내 귀에 툭 하며 털어놓고 떠났다. 


밤이 찾아오는 폰세바돈에서 나는 한동안 바람이 가져다주는 소리를 들었다. 그 소리는 마치 내가 모르는 언어로 부르는 생일 축하 노래 같았다.


폰세바돈에 내리는 어둠



Day 23. JUL 2, 2024

Astorga → Foncebadón, 25k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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