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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영 Sep 27. 2024

기꺼이 지고 싶은 삶의 무게

Day 24. 폰세바돈 → 뽄페라다

목성과 함께 뜬 초승달


초승달 아래 목성이 뜬 새벽에 길을 나섰다. 산길이라 그런지 평소보다 쌀쌀한 날이었다. 엄마와 나는 프란체스카의 헤드 렌턴에 의지해 얼마간 길을 걸다가 더 이상 그 빛이 필요 없을 즈음 철 십자가 앞에 설 수 있게 되었다. 나는 이곳에서 12년 전에 두고 온 돌을 보고 싶었지만, 멀리서 보아도 그때와 사뭇 달라진 철 십자가 터의 모습에 쉽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폰세바돈에서 2km 정도 떨어진 지점에 있는 이 철 십자가는 순례자들이 고향에서 가져온 돌을 올려는 곳으로 알려져 있다. 돌을 내려놓는 행위는 곧 순례자가 자신이 지고 있는 인생의 무게를 내려놓는 것을 의미한다. 처음 철 십자가 앞에 섰을 때는 정말 그 의미대로 정말 많은 것을 내려놓고 싶었다. 고향에서 챙겨 온 돌이 없었던 나는 그 대신 만시야 데 라스 물라스에서 묵었던 호텔의 주인인 하비에르가 챙겨준 돌에 '감사합니다'라는 문장을 적어 철 십자가를 지탱하는 나무 기둥에 난 틈에 끼워두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철 십자가 앞에 선 내 마음이 그때와 많이 달랐다. 마냥 덜어내고 싶기만 했던 인생의 무게를 내가 질 수 있는 정도는 기꺼이 지고 싶었다. 엄마가 해발 1400m의 고지에서 내려가는 길이 걱정된다며 배낭을 부치겠다고 한 날이었다. 평소라면 엄마의 배낭보다 큰 내 배낭에 무거운 것을 다 옮겨 담아 보내고 한결 가벼워진 엄마의 배낭을 메고 걸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날만큼은 내 배낭의 무게를 오롯이 지고 싶었다. 엄마의 배낭을 있는 그대로 보내고 나는 내 배낭의 무게를 고스란히 느끼며 걸었다. 다른 날도 아닌 철 십자가 앞에 서는 날이니까. 무게를 덜기보다 스스로 질 수 있는 무게를 생각해 보기로 했다.


2013년 1월 철 십자가에 두고 온 돌
(좌) 순례자가 고향에서 가져온 돌을 내려 놓는 철 십자가, (우) 2024년 7월 철 십자가에 두고 온 돌


엄마의 고향은 낙동강이 가로지르며 흐르는 곳이다. 엄마는 까미노를 준비하며 그 강변을 따라 운동삼아 걸어 다녔다. 그리고 내가 해준 철 십자가에 대한 이야기를 떠올리며 돌을 주웠다.


철 십자가를 찾는 순례자들

"이건 내 돌이고, 이건 네 거."


유럽으로 떠나는 비행기를 타는 하루 전 날 서울에 온 엄마는 내게 돌 두 개를 꺼내 보여주며 말했다. 내 돌은 집에 꾸려놓은 텃밭에서 이미 하나를 챙겨 둔 터라 당황했다. 엄마가 내 돌까지 챙겨줄 거라고 생각하지 못해서였다. 나는 엄마에게 돌을 준비했다는 이야기는 하지 않은 채 퉁명스럽게 말했다.


"왜 이렇게 커? 작은 돌을 챙겨 오지 그랬어. 이거 다 지고 다녀야 하는데."


툴툴대면서도 내가 골라 둔 돌에 대한 이야기는 꺼내지 않았다. 엄마가 낙동강에서 주워 온 돌을 까미노에 가져가야겠다고 생각하며 미리 챙겨둔 돌을 고스란히 텃밭에 돌려놓았다. 


엄마가 챙겨 준 돌을 손에 쥐고 나는 철 십자가를 향해 천천히 다가갔다. 예상한 대로 과거에 두고 온 돌은 그 흔적도 찾아볼 수 없었다. 괜한 미련은 접어 두기로 했고 나는 손에 있던 돌을 조심스럽게 철 십자가의 아래 쌓인 돌무더기 위에 살포시 얹어두었다. 지난밤, 나는 돌에 이런 문구를 적어 두었다. 집에서, 집으로, 집과 함께. 그리고 함께 적은 날짜는 내 생일이었다. 


"산띠아고가 코 앞에 있는 것 같아."


곁에 있던 프란체스카가 말했다. 철 십자가가 있는 곳까지 왔다는 사실에 마치 자신이 무언가 큰 일을 한 것처럼 느껴진다고 덧붙였다. 눈이라는 용량의 한도를 넘은 눈물은 프란체스카의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그렇게 우린 순례자의 과업을 마치고 프란체스카의 말처럼 얼마 남지 않은 산띠아고 데 꼼뽀스뗄라를 향해 걸어갔다.




시야에서 사라진 엄마를 겨우 따라잡았을 때서야 나는 숨을 고를 수 있었다. 뒤에서 자신을 부르는 날 돌아보며 엄마는 뭘 그렇게까지 쫓아왔냐고 나무랐다. 배낭 없이 걷는 날이면 엄마는 가볍게 걸어 다녔다. 그걸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유난히 이 날따라 엄마는 뒤를 한 번도 돌아보지 않은 채 말도 안 되는 속도로 질주하듯 걸어가 버렸다. 나는 혹시나 엄마를 영영 잃어버릴까, 하는 이상한 생각에 사로잡혀 마음을 졸이며 앞만 보고 내 지르며 걸었는데 정작 엄마는 너무나 태연했다. 앞뒤에 있는 순례자들을 벗하며 노란 화살표를 신뢰하며 걷는 엄마의 모습에 나는 쓸데없는 걱정을 했다는 걸 알았다. 나중에 만난 던은 사라진 엄마를 찾으러 정신없이 걸어가던 내 뒷모습을 보며 아주 오래전 도스를 잃어버릴 뻔했던 일이 떠올랐다고 했다. 


"은영, 거의 아이를 잃어버린 엄마의 심정으로 서둘러 가던걸? 널 보면서 나도 비슷한 일을 겪었던 게 생각나 끔찍했지 뭐야. 그때 감정이 떠올라서."


까미노 데 산띠아고를 걷는 순례자를 상징하는 가리비

내가 엄마를 너무 아이처럼 걱정하는 걸까. 멋쩍어하던 내게 던은 도스와 자신이 피레네를 넘던 날을 이야기해 줬다. 평소에도 걸음이 빨라 늘 던보다 앞에 걷던 도스는 론세스바예스에 일찍 도착해 던을 쭉 기다렸지만 한참이 지나도 보이지 않는 엄마인 던의 모습에 무척 걱정을 했다고 한다. 결국 그는 피레네를 반대로 걸어 올라가 던을 찾아 헤맸다. 하지만 그 사이 던은 론세스바예스에 도착을 했고 그들은 다시 엇갈리고 말았다. 그런 바람에 그날 도스는 피레네를 두 번이나 넘었다고 했다. 이곳은 평소 생활하는 한국이 아니다 보니 눈앞에서 엄마가 사라진 것에 놀랄 법도 했겠다며 던은 나를 다독였다.


다시 만난 엄마는 그 사이에 어디서 주웠는지 내가 빌려준 모자에 날개를 달고 걷고 있었다. 그걸 본 프란체스카는 네 엄마가 이제는 날아갈 생각인가 보다 라며 장난스럽게 말했다. 오늘 당장에라도 산띠아고 데 꼼뽀스뗄라까지 날아갈 기세라고 말이다. 하긴 엄마는 짐만 없으면 정말 날아갈 것처럼 걷곤 하니까. 프란체스카의 말을 엄마에게 고스란히 전해주었고 엄마는 크게 웃었다.


그래도 엄마가 가끔은 뒤에서 걷는 날 돌아봐주길 바랐다. 엄마가 눈앞에서 사라지면 내가 몹시 놀라곤 하니까. 잘 걷고 있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뒤돌아보며 내게 손을 흔들어달라고. 엄마의 얼굴을 보면 내가 안심할 수 있을 테니까.




까미노의 정보통으로 통하는 모니카 덕분에 뽄페라다 성이 수요일마다 무료입장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운이 좋게도 마침 우리가 뽄페라다에 닿은 이 날은 수요일이었다. 


성곽을 따라 걷고 있을 때, 미국에서 온 순례자 아멜리아를 만났다. 나는 그가 모니카, 클리 그리고 마누엘라와 함께 다니던 터라 얼굴을 익히 알고 있었다. 게다가 길에서 만나면 늘 기분 좋게 인사를 해주는 덕에 아멜리아를 보면 꼭 인사를 하고 싶어졌다.


"아멜리아! 오늘 어땠어?"


엄마와 나는 아멜리아와 인사를 나눴다. 하산 길이 쉽지 않았을 텐데 어땠냐며 순례자로서 서로의 안부를 물었다. 아멜리아 역시 말도 못 하게 힘들었다고 했다. 하지만, 폰세바돈에서 여기까지 걸어왔다는 사실에 스스로 자랑스럽다고 했다. 그리고 바람이 산뜻하게 불어오는 성 위에서 아멜리아는 두 팔을 공중으로 번쩍 뻗으며 내가 해냈어!라고 외쳤다. 언제나 그렇듯 아멜리아는 활짝 웃고 있었다. 


엄마와 뽄페라다 성에 오기 전, 알베르게의 정원에서 한가로이 시간을 보내는 내게 프란체스카와 바티스트가 내게 말을 붙였다. 어떻게 지친 기색 하나 없이 멀쩡하냐고. 평소에 한국에서도 등산과 러닝을 꾸준히 하는 터라 순례길을 어렵지 않게 다니는 것은 사실이었다. 그러나, 힘들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마음만은 홀로 이 길을 찾았던 12년 전보다 훨씬 복잡했다.


"은영보다 더 밝은 건 은영의 엄마야. 얘네 엄마 봤어? 항상 웃게 계신다니까?"


한 술 더 떠서 바티스트는 우리 엄마가 짓는 미소를 따라 하며 이야기를 했다. 아휴, 모르는 말씀! 내가 이렇게 괴로운 것은 다름 아닌 바로 엄마 때문인데. 남들이 보기엔 어떨지 모르겠지만 엄마는 이번에도 어김없이 알베르게의 침대에 시트를 씌우자마자 바로 몸져누워서 꼼짝을 하지 않았다. 날마다 그날의 걷기를 마치면 급격히 기분이 처지는 엄마를 바라보며 그때마다 나도 덩달아 기분이 바닥으로 잠겨버렸다. 어째 우리의 그런 기분이 티가 나지 않는 것인지 그들은 그저 우리의 미소만 기억하고 있었다. 


뽄페라다 성


그래서였을까. 나는 아멜리아의 그 미소가 좋았다. 남들에게 어느 정도 거짓으로 웃음을 짓던 엄마와 나의 미소와 다르게 아멜리아의 미소는 진짜였으니까. 방금까지 우리와 함께 있던 아멜리아가 어느새 반대편 성벽까지 걸어가 열심히 사진을 찍고 있었다. 


"정말 씩씩하게 다니네."


엄마는 아멜리아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러게 말이야, 하며 나는 엄마의 노력을 생각했다. 분명 침대에 기어들어갈 때까지만 해도 뽄페라다 성에 오지 않을 것 같았던 엄마였다. 하지만, 가만히 알베르게에 있는 대신 엄마는 기분 전환을 할 겸 나와 함께 뽄페라다 성을 거닐고 있었다. 성 위에서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뽄페라다의 전경을 사진으로 담는 엄마는 웃고 있었다. 그 입가에 걸린 미소는 진짜였다.



Day 24. JUL 3, 2024

Foncebadón → Ponferrada, 26.8k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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