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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영 Oct 10. 2024

다시 시작될 세 번째 까미노

Day 33+2. 산띠아고 데 꼼뽀스뗄라

산띠아고 데 꼼뽀스뗄라에서 새로 장만한 옷을 입고 보낸 하루


마음이 이상했다. 몸이 어디에 있던지 간에 툭하면 광장에 나가고 싶어졌다. 이제 막 도착한 순례자들이 모여드는 산띠아고 데 꼼뽀스뗄라 대성당의 광장으로. 나는 결국 그리운 마음을 이기지 못하고 광장으로 향했다.


긴 여정을 마치고 산띠아고 데 꼼뽀스뗄라에 도착한 순례자들의 얼굴에는 자신을 향한 자랑스러움이 묻어났다. 오로지 두 발로 이곳까지 왔다는 감격을 너 나 할 것 없이 누리고 있었다. 나는 그들 중 길에서 본 누군가를 만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종종 생장 피드 포르에서 함께 시작한 이들 중 누군가가 아프거나 다쳐서 혹은 개인적인 이유로 엄마와 나보다 뒤에서 걷게 되었다는 소식을 들을 때가 있었다. 그들이 무사히 여기까지 걸어오는 것을 보고 싶은 소망에 하릴없이 광장에 마냥 서서 대성당을 바라보았다. 아는 얼굴을 보지 못하면 누구라도 붙잡고 잘 걸어왔다고 기꺼이 축하해주고 싶은 마음이 일었다. 때마침 누군가 내게 사진을 부탁했다. 나는 최선을 다해 대성당을 배경으로 그들의 모습을 사진으로 담았다. 그리고 축하한다며 인사를 건네는 것도 잊지 않았다. 


내 어깨를 톡톡 건드리는 기척에 나는 그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던이 웃으며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꼭 공항 같지 않니? 여기 말이야. 즐거워하는 사람들의 에너지를 오롯이 느낄 수 있는 곳이야."


던은 이 광장이 좋다고 했다. 나 역시 이곳이 좋았다. 그러나 그저 좋다는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왠지 모를 쓸쓸함도 동시에 느끼고 있었다.


나는 별안간 나초가 생각났다. 지난 첫 번째 까미노 가족 중 유일하게 다시 연락이 닿지 않는 나초. 같은 스페인에 살고 있지만 베드로 역시 더 이상 그와 연락이 되지 않는다고 했다. 나초는 까미노 북의 길이 지나는 산딴데르에 살고 있다고 했다. 그 덕분에 나초는 어렵지 않게 순례를 시작하곤 했다. 


그래서였을까. 헛된 희망을 품었다. 이렇게 기다리고 있으면 내가 서 있는 이곳, 산띠아고 데 꼼뽀스뗄라에 그가 오리라는 이뤄지지 않을 소망을. 나초와 나를 이어주는 운이 작용하길 간절히 바랐다. 나는 나초와 비슷한 뒷모습을 볼 때마다 눈으로 그를 쫓아다녔다.


던과 나는 각자 자신이 아는 길 위에 있는 이들의 이름을 서로 공유했다. 가이따 가예가 소리가 들려오는 곳을 향해 바라보며 우리는 그들을 기다렸다. 때마침 누군가 우리에게 말을 붙였다. 미국인 순례자 세라였다. 세라와 우리는 오르니요스 델 까미노에서 처음 만났다. 그는 부르고스에서 순례를 시작했던 친구이다. 이제 막 산띠아고에 도착했다는 세라는 광장 뒤편에 있다가 우리를 발견하고 인사를 하러 온 것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누군가 만나기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고마워, 알아봐 주고 인사하러 와줘서."


그리고 슬며시 누군가 우리 곁으로 다가왔다. 다름 아닌 김이었다. 김은 지난밤 산띠아고에 도착했다는 메시지를 내게 보낸 터였다. 그 사실을 방금에서야 안 던은 김을 몹시 반가워했다. 


세라와 김은 가던 길로 돌아갔고 던 역시 박물관을 둘러본다며 광장을 떠났다. 나는 여전히 남아 있었다. 아직 마음이 허전했다. 모두가 떠난 그 자리에서 나는 지미를 만났다. 오전에 엄마와 갈리시아 현대미술관에 가던 길에 나는 그의 뒷모습을 보았다. 배낭을 메고 있던 그가 가던 방향에는 산띠아고 데 꼼뽀스뗄라 대성당이 있었다. 순례를 마치기 일보 직전이었던 그를 광장에서 다시 만난 것이었다.


"지미, 그렇지 않아도 네게 메시지를 했었는데. 아까 널 봤거든. 순례를 마친 걸 축하해."


텅 빈 마음에 조금 무게가 실리는 듯 그래도 누군가를 만났다는 사실에 위안이 됐다. 




엄마와 저녁 식사를 하러 비건 식당을 찾았다. 나 혼자만 비건인데 논비건 친구들도 함께 식사를 하겠다며 이곳으로 모여들었다. 주문한 음식이 하나 둘 나오기 시작했고 가게 주인은 우리 테이블에 와서 말을 붙였다. 비건인 어머니를 위해 가게를 오픈하게 되었다고 했다.


"이 원피스 산띠아고에서 산 거 맞죠?"


가게의 주인은 내 원피스의 출처를 알아보며 물었다. 내가 순례를 마치고 가장 먼저 한 일은 새 옷을 사 입는 것이었다. 무엇이든 기념하는 걸 좋아하는 나는 까미노가 끝나면 스스로 축하해 주기 위해 뭐든 하고 싶었다. 


"이 조개 모양 귀걸이도 샀어요. 이것도 여기에 와서 산 거예요." 

"정말 중요한 거예요. 나에게 잘해주는 일은! 옷도 귀걸이도 다 멋지네요."


식사가 한창 무르익을 즈음, 프랑스인 순례자 이자벨라와 그의 남편이 찾아왔다. 던이 그들을 초대한 덕분이었다. 산띠아고 데 꼼뽀스뗄라 대성당의 저녁 미사를 다녀오는 길이라고 했다. 이자벨라와 처음으로 대화를 나눈 것은 만시야 데스 물라스에서였지만, 사실 난 그전부터 종종 그를 길 위에서 본 적이 있었다. 이자벨라는 길을 걷다가 마음이 드는 풍경을 만나면 길가에 자리를 펴고 앉아 그림을 그렸다.


"이자벨라, 당신이 그리던 그림이 너무 보고 싶었어요."


이자벨라의 맞은편에 앉아 있던 아멜리아가 말했다. 그에 호응하듯 이자벨라는 노트를 꺼냈고 그것을 펼쳐 우리에게 보여줬다. 그림과 글이 어우러진 여행기가 펼쳐졌다. 그걸 본 나는 갑자기 심장이 마구 두근거리는 것이 느껴졌다. 산띠아고 데 꼼뽀스뗄라에 도착한 금요일부터 계속된 이별에 지쳐있던 나는 다시 이 길을 걷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누군가로부터 다음 세 번째 까미노는 언제가 될 것 같냐는 질문을 받을 때마다 장난스럽게 12년 후라며 답했던 것을 모두 취소하고 싶었다. 가능하다면 가장 빠른 시일 내에, 그땐 처음 이곳을 왔던 것처럼 혼자서, 그리고 그림을 원 없이 그리는 여정으로 꾸려가고 싶다고 답을 바꾸고 싶어졌다.


"이자벨라, 당신이 제게 영감을 줬어요. 고마워요."

"가능하다면 작은 크기의 노트를 채우는 것으로 시작해 봐요. 은영, 나는 당신의 그림이 좋아요."


내가 한국에서 그리는 그림을 본 이자벨라는 내게 용기를 주며 말했다. 그렇게 그가 내 세 번째 까미노의 물꼬를 터주었다.


저녁 비가 내리는 산띠아고 데 꼼뽀스뗄라

엄마와 나는 산띠아고에서 더는 연박을 하지 않고 다음날 피스떼라에 가기로 결정했다. 엄마는 더 이상 걷길 원하지 않았기에 우리 모녀는 당연히 버스로 피스떼라에 가기로 했다. 던은 무시아를 간다고 했다. 던 역시 버스로 이동한다고 했다. 각자 다른 어촌 마을에서 1박을 보낸 후 우리 모녀와 던은 얼마간 포루투에서 머물 예정이었지만, 다시 만날 수 있을지 확실하지는 않았다. 우선 이 자리에서 이별을 고하는 것이 적절했다.


식사를 마치고 길을 나서니 비가 오고 있었다. 첫 번째 순례에서 까미노 아버지인 잭과 헤어지던 날에도 산띠아고에는 비가 왔다. 모두가 떠나고 단둘이 남은 잭과 나는 빗 속에서 하염없이 울었다. 둘 다 워낙 울보인 터라 비가 와서 차라리 다행이라고 생각했던 이별이었다. 나는 엄마의 손을 잡으며 눈물짓는 던을 바라보았다. 나를 돌봐준 길 위의 아버지와 어머니가 겹쳐지는 순간이었다.



Day 33+2. JUL 14, 2024

Santiago de Compostel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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