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충 최선을 다해 '걷기'를 영업하는 글

아, 걷고 싶은 날이다.

by 김종연

아, 봐버렸다. 좋았던 오늘 날씨를 기억 못 한 채, 창 밖을 보는 무심한 눈을 단속하지 못했다. 낮의 푸른 기운이 가신지 좀 지난, 분홍에서 보라로 펼쳐지는 서편의 하늘. 이 시간대의 창 밖 하늘은 필연히 나를 불러낸다. 날도 좋은데 좀 걷자며. 운명의 부름을 사칭한, 거절이 가능할까 싶은 몸짓과 손짓으로 나를 잘도 불러낸다. 그런 꾐에 백이면 백, 넘어간다. 역시 못 참겠다. 오늘도 좀 걷자. 거리가 멀면 멀수록 좋다. 3만 보가 넘는 거리도 좋다. 거리가 짧으면 몇 바퀴 더 돌면 된다. 눈치챘겠지만 거리가 상관없다. 오롯이 홀로 존재하는 시간이 유의미할 뿐이다.




걷지 못한 귀신 붙은 것도 아니고, 하루에 무슨 3만 보를 걷냐고 궁금해할 수도 있다. 묻고 싶어 미치겠어도 조금만 참고 이야기를 들어보자. 나는 아주 모순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다. 양립할 수 없어 보이는 성향을 백지장 마냥 근사하게 마주 세워놓았는데, 그건 '내향적'과 '활동적'이라는 특성이다. 상식적으로, 내향적인 사람은 홀로 있는 것을 좋아하고, 그러다 보니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고, 따라서 활동량이 적을 거라 예상하게 된다. 하지만 나의 경우 홀로 존재하는 것과 활동적인 삶의 추구는 양립 가능하고, 그것을 완벽하게 실행할 수 있는 활동이 내겐 걷기였다. 필연이었다.




성향과 꼭 맞는 활동이면서도, 걷기는 내게 있어 다분히 정치적인 의미도 지니고 있다. 우리는 바야흐로 생산성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생산적인 업무, 생산적인 대화, 그리고 생산적인 관계까지. '생산적'이라는 수식어가 붙은 것들이 긍정적인 이미지를 선점한다. 하다 못해 핸드폰의 이름에도 '프로'를 붙여 (프로들이 쓸 법한 기능들을 넣지만, 쓰는 동안 해당 기능이 존재하는지 조차 모르는 사용자가 대부분이다.) 생산성을 강조하고, 그 대가로 더 높은 가치를 가져가는 세상이니까.




난 이런 세태에 저항하기로 했다. 드라마 한 편, 유튜브 영상 몇 개(생산성을 추구한 기기들로 보통 행하는 생산적인 일들이다.)를 볼 시간을 내어 비생산적인 시간을 보내는 것이다. 널려있는 생산성에 대한 저항이랄까. 쉴 새 없이 생산성을 추구하는 기계로 전락한 인간의 존엄성을 회복하기 위한 소심한 시위라고 하는 게 좋겠다. 민주 사회에서는 이처럼 바보 같은 시위도 소수의 의견으로 인정하기로 한 것 아닌가.




우스갯소리로 생산에 대한 저항이라는 의미를 부여했지만, 걷기는 역설적으로 생산적인 결과를 가져오기도 한다. 수많은 자극을 겪은 뇌는 둔해진다. 마치 필터에 먼지가 잔뜩 낀 진공청소기처럼 새로운 생각을 빨아들이지 못하게 된다. 대기에 가득 찬 미세먼지와 같이, 하루새 소화한 자극의 부산물들이 떠다니며, 사람을 부스스하게 만든다. 부산물들은, 생각의 대상들을 수도 없이 바꿔가며 혼을 쏙 빼놓는다. 이때 걷기가 멋진 해결책으로 떠오른다.




복잡한 머리를 부여잡고 무작정 걷다 보면, 머릿속을 관조할 수 있게 된다. 신체의 움직임을 가져가며, 그 본연의 목적을 추구한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생각과의 거리감이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한 걸음 뒤떨어져, 생각끼리 충돌하고 깎이며 배출되는 것을 지켜보는 것이다. 이는 보기보다 격렬한 사고의 과정인데, 한 발짝의 거리감이 이를 불편하지 않은 경험으로 느끼도록 한다. 이리도 격렬한 여정을 마무리하면, 다시 새로운 생각을 빨아들일 상태가 된다. 우리의 뇌가 원래의 목적으로 회귀하는, 생산적이면서도 숭고한 목적을 달성하게 되는 것이다.




걷기를 끊을 수 없는 이유가 한 가지 더 있다. 사실 무엇보다 이게 제일 크게 다가온다. 3만 보가 넘는 거리를 걸으면, 신체적인 피로가 몰려온다. 몸을 누이는 순간 몸이 강제로 종료된다. 강제 종료 앞에서, 며칠 밤을 괴롭히던 고민거리는 아무런 힘이 없다. 소프트웨어의 오류로 멈춰 선 컴퓨터의 전원 코드를 뽑아버리는 느낌과 유사하다. 에너지를 차단하면, 소프트웨어적 문제는 살아남을 길이 없다. 수렵채집인들이 이걸 매일 누렸다고 생각하면, 부러워서 눈물이 다 날 정도이다. 어쩌면, 몸과 마음이 둘 다 편할 수 없다는 사회생활의 격언(?)이 괜히 존재하는 게 아닐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어쨌든 나는 오늘도 걷는다. 자신이 따뜻한지 차가운지 헷갈려하는 하늘 아래서 걷다 보면 내 인생도 영화의 한 장면인 것만 같아서. 그럴싸한 이유를 아무리 나열해도 영화 같은 삶을 살고 싶은 내 욕망이 가장 적절한 이유라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걷다가 아름다운 색이 지고 하늘색이 검정인 시간이 되면, 나는 언제나처럼 실망하겠지만. 그럼에도 나는 걸음을 멈출 수 없다. 해는 내일도 뜨고, 영화는 다시 시작되는 법이니까.



P.S. 석간 에세이인데, 적다 보니 저녁이 아닌 시간이 되었다. 오늘은 그냥 석간 걷기를 해버렸네. 유감.



커버 사진 - Yogendra Singh from Pexel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