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외] 사랑에 대한 탐구. 3

편지

by 지안


사랑.


사랑은 성급해선 안되었다. 급히 발길을 서둘렀다가는 가느다란 풀잎 위에 가벼이 앉아있던 상태를 버리고 화들짝 놀라 도망가버리는 나비와 같은 것이었다.


사랑은 배우는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배워도 배울 수 없기도 한 것이 사랑이었다. 어쩌면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것이 사랑이었으며, 같은 실수를 다르게 받아들여보는 것이 사랑이었다.


사랑은 이성적일 수 없었다. 빠져서는 안 되는 걸 알면서도 바다가 머금은 파도가 몰고 오는 시원한 짜릿함과 바다 뭍 모래에게 감겨보는 까슬거리는 불편함을 품은 재미를 감수하고 신발을 벗고 결국엔 발을 넣게 되듯이 어느샌가 빠져있는 것이었다.


사랑은, 한 톨의 바람에 물러섰다가 한 줄기 빛에 머물기도 했다. 그처럼 작은 일들에 좌지우지되었다. 그 바람과 빛에 감정이 실리고, 각자 다른 색을 마주하는 사랑.


결국 사랑은 나를 알아가야만 가능했지만, 상대 또한 자신을 알아야 했다. 그러나 그 이상으로 서로의 욕구와 요구가 일치되거나 조율되어야 했고, 대화방식과 가치관이 서로의 진심에 닿아야 했으며 그와 함께 방어기제를 감수한 용기와 진짜 사랑이 발견되어야 색을 지닌 사랑이 가능했다.


사랑에 대한 탐구는 나름의 의문들을 주었으며, 그에 대한 명쾌한 대답들을 적당히 주었다. 하지만 그와 함께 아픔도 끼어들어왔다. 예상한 아픔이었지만 상처 나지 않기를 바랄 수는 없었다. 작은 상처들이 비로소 단단한 나무를 만드는 것이라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작은 것에 작은 마음을, 큰 것에 큰 마음을 줄 줄 알게 되어야 사랑이 가능했다. 작은 것에도 진심을 다하는 일은 다정하고 자상한 일이 맞았다. 용기 있고 따뜻한 일이었다. 하지만 조절해야 진심이 유지되었다. 너무 다하다가는 금세 소진되어 버려 사라지고 말 것 같았다.


정신과 영수증이라는 책을 쓰신 정신 작가님은 홀연 미국으로 떠나셨다. 짝을 찾기 위해. 그리고 수많은 사람들의 서류(?)를 검토하고, 데이트하며 지금의 남편을 찾으셨다. 내가 보는 시각은 너무 현명한 방법이었다는 것이다.


또 함께 일하는 선생님이 오늘 해준 얘기다. 친한 친구 분의 얘기다. 결혼한 분인데 20대 때 남자친구를 그렇게 여러 번 바뀐 전적이 있으셨다는 것이다. 안 맞으면 헤어지고, 아닌 것 같으면 헤어지고. 그리고 맞는 사람을 찾아다녔다고. 그리고 짝을 만나셨다고.


지금 와서야 너무 와닿는다. 그러면 되는 일이었다. 연애는 나를 찾는 과정이다. 내가 뭘 좋아하는지, 나는 어떤 부분과 맞는지, 또는 맞지 않는지. 그런 고민을 할 수 있는 확인의 장. 여러 사람을 대하며 진짜 '상대'를 찾아 헤매었어야 될 일. 그리고 정말 열과 성을 다했어야 될 일이었던 것 같다.


한 번의 만남에는 한 번의 마음을 주면서, 그리고 숱한 만남에도 나에게 집중하면서 나를 아끼며 차분하게 똑 부러지게 서로를 받아들일 사람을 찾는다는 건 대단한 지혜라고 여겨진다. 여전히 아픔을 딛고 일어서려는 노력이 꺾이고 깎이기도 한다. 하루에도 변덕이 끓고 이런 생각 저런 생각 사이에서 아슬한 외줄 타기를 한다.


하지만 늦었을 땐 막차를 타고라도 가야 한다. 나를 찾기와 붙은 사랑 찾기. 여전히 두렵고 감정 조절이 어렵고 표현이 서툰 나지만, 찾아보고 싶다. 진정한 나, 그런 나를 사랑하고 내가 사랑할 수 있는 그런 사람.


탐구의 길은 이제 막 시작되었고 어떤 학업도 끝에 도달하기 어렵듯, 이 탐구의 길은 더할 수도 있지만 그래도 내 페이스대로 걸어보기로 했다. 부족하고 조금은 삐걱거려 앉기 힘든 의자여도 삐걱이는 발아래 높이를 재 종이를 접어 대주고 힘써 앉으려기보단 힘을 뺀 채로 서로 받아들여 두는 사람을 만나고 싶다.


아, 근 20년 전 사별하신 친정 엄마는 최근에야 드디어 동정하지 않고 동등히 사랑을 나눌 수 있는 사랑을 만나셨다. 누군가를 만날 때마다 그의 안타까움을 먼저 찾곤 하셨던 엄마는 이제야 불쌍하지 않은 사람, 나를 한 인격으로 존중해주는 사람을 만나셨다고 한다. 언젠가 그처럼 다시 사랑하며 피워낼 나라는 꽃을 기대해 본다. 그를 위해 아래 시를 다시 복기해보며, 글을 마치고자 한다.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 킴벌리 커버거(류시화 역.)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내 가슴이 말하는 것에

더 자주 귀를 기울였으리라.

더 즐겁게 살고, 덜 고민했으리라.

금방 학교를 졸업하고 머지않아 직업을

가져야 한다는 걸 깨달았으리라

아니, 그런 것들을 잊어버렸으리러

다른 사람들이 나에 대해서 말하는 것에

신경 쓰지 않았으리라.

그 대신 내가 가진 생명력과

단단한 피부를 더 가치있게 여겼으리라.


더 많이 놀고 더 초조해 했으리라.

진정한 아름다움은 자신의 인생을 사랑하는 데

있음을 기억했으리라.

부모가 날 얼마나 사랑하는가를 알고

또한 그들이 내게 최선을 다하고 있음을

믿었으리라.


사랑에 더 열중하고

그 결말에 대해선 덜 걱정했으리라.

설령 그것이 실패로 끝난다 해도

더 좋은 것이 기다리고 있음을 믿었으리라.


아, 나는 어린아이처럼 행동하는 걸

두려워하지 않았으리라.

더 많은 용기를 가졌으리라.

많은 사람들에게 좋은 면을 발견하고

그것들을 그들과 함께 나눴으리라.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나는 분명코 춤추는 법을 배웠으리라.

내 몸을 있는 그대로 좋아했으리라.

내가 만나는 사람을 신뢰하고,

나 역시 누군가에게 신뢰할 만한 사람이

되었으리라.


입맞춤을 즐겼으리라.

정말로 자주 입을 맞췄으리라.

분명코 더 감사하고

더 많이 행복해 했으리라.

지금 내가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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