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필로그 : 서른을 되찾았다.

by 지안


내 나이 서른,

인생이 끝났다고 생각했던 그 지점에서

내 인생은 다시 꽃 폈다.


낙엽이 지는 가을,

부서진 낙엽들을 밟아내고

매서운 추위를 견뎌낼 나의 나무에

옷을 입히는 과정을 지나며


많은 이야기를 써댔지만

사실 조금은 일어선 듯 보여도

솔직히 아직 나는 바닥이고,

처음 그 자리다.


첫사랑에 실패하고,

첫 결혼에 실패했다.

나의 첫 인생에 실패한 것은

소설이 아닌 실제 삶이다.


이 처음 맞이한 감격스러운(?)

서른의 이혼은,

이 가을의 낙엽처럼 밟혀 부스러진

나를 온전히 안아주는 과정이었다.


그럼에도 이혼으로 인한 상처는

깔끔히 지워지지 않아서

사랑에 도전해 부딪히려 할 때마다

온몸을 팔로 끌어안았다.

내 가슴과 팔을 둘러싼

두려움, 방어, 공격, 도망, 외로움들.

쉽사리 해결되지 않을 것만 같다.


하지만


늦었다고 시작할 이 시점이

누군가에겐 늦었다는 말조차 딱하리만큼

시작하기 좋은 나이라는 점.


포기하고 애만 보고 혼자 살겠다는 발언이

누군가에겐 뜨거운 불에 찬물 끼얹는 것처럼

당혹스럽고 의아하기 짝이 없을 수 있다는 점.


다행히도 나는 내가 보는 내 인생보다는

조금 먼발치에서 바라볼 때

내게 한낱 희망을 발견할 수 있다는 걸

늦지 않게 깨달을 수 있었다.


그러나 깨달아도

성급하고 부잡스러운

행동파였던 내 본래 습성을 따라

나, 내 인생, 사랑을 알아내고자 하나

노력이 우습도록 온몸을 콩벌레처럼

웅크려 숨긴 채 여러 우여곡절을

겪어내고 있다.


이런 불안을 가득 쥐고라도

마그마로 뛰어들려는 시도의 이유는

겪지 않아도 될 청춘의 아픔은 없기에,

겪어 내어야만 하는 청춘은 아픔이기에.


조금씩 내게 금이 가도록

그래서 조그만 빛이 보이고

점차 그 빛의 색을 알게 되어

내 하늘은 검은색이 아니라

밝고도 푸르렀구나 깨닫기 위함이다.


마냥 일찍 결혼한 걸 으쓱해했다.

일찍 아이를 낳은 걸 자랑스럽게 여겼다.

어떤 결혼생활이냐보다

남들보다 일찍 이룬 무언가로 결핍을 자위했다.


20대 때 미련하고 무지하고 순진하고 단순한

그냥 자기 파악 못하는 곰 한 마리 같던

극보수의 나는, 이제야 사람다운 생각을 하고

사람다운 행보를 펼치고 있다고 느낀다.


이 남자 저 여자 만나는 친구들을 안 좋게 바라보던 시선, 자기를 옷과 화장, 꾸밈으로 표현하는 친구들을 거북해했던 마음, 술을 마시고 담배를 피우고 클럽도 다니며 자유로운 경험을 하고 여러 도전을 시도하는 사람들과 거리를 두었던 나는,


사실은 그냥 세상 최고의 겁쟁이였다.


피기 싫어 잔뜩 감싸고, 온전히 내 인생을 살아갈 준비가 두려워 용기없이 많은 경험이 줄 상처를 미리 밀어냈다. 모든 어려운 일, 도전적인 일은 저리 치워두고 쉽고 안정적인 걸 추구하였고 조용하고 편안한 것을 선택했다. 피할 수 있다면 모든 걸 피하였던 그 시절의 나. 풀어냈어야 할 내게 있던 나의 문제들.


그런 비겁한 내가 드디어, 비로소, 용케도

이혼이라는 구덩이 덕분에

구덩이 벽을 긁고 짚어내어

나답게 살아내고자 하는

내 인생에 대한 집착을 처음 가졌다.


어렵게, 무겁게 되찾은 나의 서른.

내 빛나는 서른은 2달 남짓 남았지만

이후로도 마흔, 쉰, 예순..

운 좋다면 쭉 펼쳐질 나의 한 해 들은

온전한 나로 살아가야 할 무대이자

오늘부터 내가 만들어가야 할 작품이다.


빈 아빠의 자리를

다행히 바쁜 아빠로 받아들인 이쁜 딸아이,

이혼 후 조금씩 주식과 재테크를 시작했지만

여전히 애잔한 나의 통장.

비로소 정리된 짐과 서류들.

우연히 그리고 정말 다행히

발 디딘 완전히 새로운 업무와

부업과 대학원에 대한 꿈과 도전들.


이혼은 나를 180도 바꾸었다.


나를 절벽으로 내모는 것 같았던 이혼은

오히려 내게 날개를 달아줬다.


울음을 삼키며 살려고 발버둥 쳤던 시간들.

이 순간의 젊음을 움켜내려던 시간들.

오늘의 행복과 즐거움을 찾아내던 시간들.

더 나다운 나를, 사랑을 찾아 헤맬 시간들까지.


결코 포기하지 말라고.

눈물을 흘린 그 자리에는 민들레 꽃이

반드시 피어날 거라고.

당신의 삶은 나보단 더 나을 거라고.

반드시 나처럼 당신도 되찾을 거라고.


우리 여정의 끝은

반드시 눈이 멀도록

부실 것이라 마침표를 찍어본다.






서른에 이혼했다. 마침.







부족하고 안쓰럽기도 하고 다소 무거움을 담아냈던 작은 글을 읽어주신 독자님들. 어리고 무지하고 조금은 다른 길 같은 수 있는 제 생각과 마음을 응원해 주신 독자님들께 사랑과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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